깐깐한 가곡의 이유있는 변신
  • 김문성 (국악 칼럼니스트) ()
  • 승인 2005.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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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가곡 ‘봇물’…관객과 소통하려는 전통음악계 ‘활로 찾기’

 
전통음악의 현대화 작업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대표적인 전통 성악곡인 가곡 분야에서도 변신의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국악계 최초로 풍류정가극 <황진이>가 무대에 선보인 데 이어, 올해는 창작 또는 현대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만 여겨졌던 창작가곡 발표공연이 그 어느 해보다도 활발히 열려 ‘가곡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가곡은 시조, 가사와 함께 형식상 정가로 분류되는 우리나라 3대 성악곡 중의 하나이다.  ‘시조시’를 노래한다는 점에서 성악곡 시조와 차이가 없으나 가곡이 16박자 또는 10박자의 장단을 사용하는 반면 시조는 5박자 혹은 8박자의 장단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특히 노래만으로 전체 형식을 구성, 3장으로 이루어진 시조와는 달리 가곡은 관현의 기악 반주와 맞물려 5장의 형식으로 독특한 음악적 구성을 가졌다.

가곡은 그 어느 장르의 성악곡보다 노래하는 법도가 까다로워 5음(황종, 태주, 중려, 임종, 남려) 이외의 소리는 잡음으로 간주하여 사용을 금기시하고 있으며 서도소리에서 보이는 격렬한 음의 떨림이나 주로 경기잡가에서 보이는 폭넓은 음의 꺾임을 사용하지 않는다. 가곡은 화려하고 자유로운 감정표현을 억제하되 절도 있고 청초한 소리로 노래해야 한다. 서양음악 전공자들은 기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전통가곡의 악곡의 형태와 음악적 표현을 일컬어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고 짜임새 있는 음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가곡이 이제는 전통의 영역에 안주하지 않고 현대적인 감각의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세 가지 갈래로 가곡 창작 나타나

최근에 각종 무대에서 발견되는 창작 가곡의 모습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요약된다. 우선, 1960, 1970년대 민요계의 창작이 그러했듯, 가곡 본래의 노래는 그대로 두되 반주 악기를 바꾸는 방식이 있다. 이는 편곡은 있으나 작곡이 없는, 즉 작곡가가 개입될 여지가 없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가창자가 본인의 음악적 영감을 바탕으로 음악의 짜임새와 구성을 주도적으로 가져가기 때문에 비교적 가곡창법을 충실히 반영할 수 있으며 가창자의 능력이 극대화된다. 지난 11월18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정마리의 ‘옛 악기와 함께하는 정마리의 노래’가 이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두 번째는 민요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곡을 새롭게 짠 신민요가 탄생했듯 가곡의 선율을 바탕으로 가곡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새롭게 짠  ‘신가곡’이 그것이다. 작곡의 형태든 편곡의 형태든 작곡가가 주도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에 작곡가의 음악적 역량, 즉 가곡을 제대로 이해하고 곡을 만들었는가가 성공의 관건이 된다. 말붙임이 질서 있고 조화롭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가창자의 음악적 역량을 최대한 고려하여 곡을 썼는지, 가곡 발성법이 적절히 표현될 수 있도록 호흡과 박자를 배려했는지 등이 신가곡의 음악적 완성도를 짚어보는 기준이 된다. 지난 11월13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강권순의 정가인가(正歌人歌)가 이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세 번째는 가곡의 발성이나 선율 등 전통적인 형식은 파괴되지만 가곡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창작곡들로, 이는 주로 서양 작곡가들에 의해 작곡되고 있다.

그렇다면 가곡 분야에서 발견되는 일련의 변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상당수의 실기자들은 창작이 붐을 이루는 ‘현상’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이들은 이러한 일련의 작업이 궁극적으로 전통음악을 보존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발상의 전환을 통해 채택한 방법론적 접근의 산물이라는 데 이구동성으로 동의한다. 전통음악의 현대화 작업이 그러한 현대화를 통해 전통음악과 현대인들 사이의 괴리된 감정의 간극을 메우는 완충지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완벽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변화의 폭이 거의 없는 까닭에 지극히 예스러워서 현대인들과 소통하는 데 한계가 있는 가곡으로 현대를 사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 위해서는 음악적 ‘낯섦’을 상쇄할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환희의 무대를 위해 그들은 스승들의 준엄한 꾸짖음을 각오하면서까지 가곡에 창작의 옷을 입히고 있다.

정가계 거장 김월하 10주기 추모 무대 <월하> 돋보여

 
정가계의 거장 김월하 선생 타계 10주기를 맞아 월하여창가곡보존회(회장 김영기)가 12월13일, 14일 이틀간 한국문화의 집 코우스에서 개최하는 추모공연 ‘월하’는 이러한 가곡계의 최근 모습을 응축하여 선보이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김영기 회장(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보유자)은 “현대와 소통하는 다양한 방법 가운데 창작이라는 방식을 통하는 것이 100%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 가곡이 예술적으로 얼마나 뛰어난 음악인지를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지금 전통음악은 ‘소통’이라는 화두에 노출된 채 변신의 기로에 서 있다. 실기인들 사이에는 전통을 훼손하지 않고 본질을 벗어나지 않은 정도의 창작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공감대가 구축되어 있으며 이러한 음악적 자신감이 가곡 같은 지극히 전통적인 분야까지도 창작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내년에는 또 어떤 분야에서 생존을 위한 변신의 대작업을 벌일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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