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과 모순 가득한 ‘북한 국가 범죄론’
  • 거번 맥코맥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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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한의 위폐 제조 의혹·인권 문제 등을 거론하며 김정일 정권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왜 억지인지 낱낱이 밝혔다.

 
2006년 북한 문제를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지난해 9월 베이징 6자회담 참가국들은 원칙과 목표 면에서 역사적 합의에 도달했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기존의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비확산 조약(NPT)에 복귀하며, 국제 사찰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대가로 북한은 외교적 승인과 관계 정상화 그리고 ‘적절한 시점에서의’ 경수로 제공을 비롯한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는 것이다.

9월 합의는 이보다 앞서 약 2년 이상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전면 거부하고, 민간 핵 프로그램과 경수로는 물론 안전 보장 문제를 일절 고려하지 않았던 상황에 비추어볼 때 괄목할 만한 성과이다. 그 두 해 동안 미국이 시도했던 당초 대북 압력의 연합 전선은 한국 중국 러시아의 ‘역(逆) 압력’에 의해 진실하고도 다자적인 협상 마당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국무부의 전(前) 최고위급 북한 전문가 잭 프리처드가 일찍이 묘사했던 대로 ‘6자회담의 다른 4개 우방국들의 대세와는 동떨어진 외톨이’가 될 것을 걱정해 한 발짝씩 물러났다. 경수로에 관한 (지난해) 9월의 결정은, 회담 주최국인 중국측이 ‘서명하지 않으면 회담 붕괴에 대한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최후 통첩을 보낸 뒤에야 간신히 나왔다.

하지만 베이징 합의는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북한은 ‘경수로’를 (재차) 요구했으며, 무기 프로그램 폐기와 비확산조약상 안전조항(Safeguards)으로의 복귀 약속은 경수로 제공 약속이 선행되는 데 달린 것이라고 못박았다. 반대로 미국은 북한이 비확산조약으로 복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처가 완료되기 전에는 경수로 제공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1994년 기본 합의의 핵심 사안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즉각 폐기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북한 경수로에 대한 평양측의 ‘적절한 시점(appropriate time)’은 워싱턴측에는 ‘먼 미래(distance future)’였다.

베이징 회담의 실패와 때를 맞추어 미국 부시 행정부 내에서도 힘의 균형이 최고위층의 ‘전략적 결정’에 따라 변동한 듯하다. 딕 체니 부통령이 주도했고 미국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 봅 조지프가 조정하면서 미국의 정책 방향은 국무부와 베이징 협상파로부터 이데올로기에 좀더 경도된 세력으로 넘어갔다. 북한은 모든 가능한 전선에서, 특히 불법 행위와 인권 전력에서 압박당하는 형국이다. 북한이 범죄 국가 또는 범죄 조직의 한 고리라면, ‘존중받을 만한’ 대등한 협상 파트너가 될 수 없다. ‘전략적 결정’의 의도는 협상(negotiation)을 지시(dictation)로 전환시키는 것이며, 그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 정권과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데 있는 듯하다.

미국은 북한 정권 전복을 노린다?

미국은 이같은 방침에 따라 지난해 9월 북한의 마약과 위조 화폐의 돈 세탁을 도와주었을 것으로 알려진 마카오의 한 은행과 거래를 중단시켰으며, 무기 매매와 관련된 혐의가 있는 (북한의) 8개 회사 자산을 동결시키도록 했다. 북한 정권이 대규모 아편 생산에 연루되었다는 탈북자의 증언도 보도되었으며, 북한이 100 달러짜리 위폐 즉 ‘수퍼 노트’를 제조·유통시킨 혐의도 공식 제기되었다. ‘북한 외교관과 관리, 중국인 깡패와 범죄 조직, 유명한 아시아계 은행, 아일랜드 반군과 전직 KGB 요원이 연루된 거대한 범죄망’에 대한 그림도 나왔다.

 
부시 정부의 북한 실무 그룹 조정관은 북한을 이렇게 묘사했다. “(북한은) 현재 범죄를 국가적 경제 전략과 외교 정책의 핵심 부문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간여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정부로 규정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북한은 노동당 수뇌부의 지도 아래 ‘소프라노 국가’, 즉 모든 국가 행위와 태도, 인적 관계가 정상적인 국가라기보다는 (마피아같은-역자 주) 범죄 가문을 닮아가고 있는 국가이다”.

최근 신임 주한 미국대사 알랙산더 버시바우도 비슷한 말을 했다. 실상 워싱턴은 이같은 정권과의 ‘관계 정상화’란 곧 미국 정부와 마피아 간의 관계 개선이나 마찬가지임을 암시하고 나선 것이다.

워싱턴은 범죄나 인권 같은 주제가 쉽게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인권 기록 면에서는 그 누구도 북한을 변호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의 범죄 연루 가능성을 부인할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이 북한 문제를 점점 솔직하게 말하기 힘들어지는 베이징에서 국제 무대로 초점을 옮겨 놓으면 ,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중국·러시아 등 다른 국가들의 노력은 손상될 것이 자명하다. 미국(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나름의 이유를 가진 일본)은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희망하거나 아마도 이를 위해 은밀하게 움직이며, 무역을 차단하고 자금 흐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북한을 죄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북한과) 쌍방향 자금 흐름과 교역을 최대화하면서 협상을 진행하거나 계획해 왔다. 말하자면 미국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온 것이다. 이 나라들은 범죄 또는 인권 이슈 등의 문제 제기에 점점 더 저항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같은 미국 주도의 문제 제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첫째 난점은 문제 제기가 미국 정보 당국에 상당히 의존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보 조작은 지금은 아주 유명하다. 셀리그 해리슨 등 몇몇 논객들은 북한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조작이 가능하다고 지적해 왔다.

둘째, 우리는 지난 2003년 펜타곤(미국 국방부)이 럼스펠드 장관의 지시로 이른바 ‘작전 계획 5030’이라는 대북 전쟁 초기 작전의 수정판을 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내용은 ‘금융망의 붕괴와 허위 정보 유포’를 포함한 (북한의) 동요 유발을 특징으로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오늘날 북한이 100달러 짜리 지폐 위조에 가담하고 있다면, 이는 바로 미국이 (작전 계획에) 써놓은 그대로를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이같은 행동을 그 자신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적(북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범죄적인 흉내내기(모방)와는 달리 정치적 책략으로서 모방 행위의 뿌리는 그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며, 이는 정치 과정에 의해, 특히 적대 상태의 종식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윤리적·도덕적 차원의 문제는 더 복잡하다. 북한에 대해 행해지는 다양한 주장의 진실성을 믿는다면,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도덕성의 기본 원칙은 보편성이다. 북한이 ‘범죄 정권’이라면, 미국 역시 국제법과 국제연합을 북한 이상으로 경멸해 왔다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해 공격적이고 불법적(유엔의 승인이 없었다는 점에서)인 전쟁을, 그것도 그릇된 정보와 정보 조작을 토대로 벌였으며, 전세계에 비밀 고문 시설망을 세웠다는 점에서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다. 더욱이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사안으로서, 미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핵 무기를 사용해 북한(그리고 다른 비핵 국가)을 위협해 왔다. 미국은 북한의 범죄를 강조하려는 운동을 벌일 때 먼저 이같은 도덕적 결점에 대해 답해야 한다.

베이징 합의 존중이 ‘불행’ 막는 길

그럼에도 북한 정권 일부가 범죄 행위를 했을 확률은 높으며, 북한 주민의 고통 또한 명백하다. 도덕성은 바로 이같은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 혼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정권 붕괴의 촉진이나 쿠데타 또는 침공을 통한 정권 교체를 도모하는 압력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면, 어떤 옵션이 남을 것인가. 내 견해로는, 첫 번째 필수 조건은 북한이 심각하게 왜곡된 국가이며, 20세기의 모순과 실패를 온축(encapsulation)한 화석화된 국가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미국의 적대적 태도(hostility)만큼이나 북한의 독재를 지속시키는 요소가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의 노골적인 적대주의가 북한 정권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데 일조하는 것과 달리, 현 대통령과 바로 앞의 전임자 체제의 한국은 대안적인 접근법, 즉 ‘햇볕 정책’을 표명해왔다. 미국 당국은 이같은 접근법을 무기력한 것으로, 또 노무현 대통령의 ‘균형자’ 주장을 주제넘은 것으로 비웃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전략은 현재 북한에 다양한 바람이 불도록 많은 문을 열어주고 있다. 한국은 지난 2004년 필자의 책(<북한 겨냥하기(Target North Korea)·역자 주)에서 강조한 바,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주체를 한국 자신으로, 워싱턴에서 서울로, 그리고 ‘서울 중심’으로 옮기려는 노력과 함께 북한 주민과의 단결도 도모하고 있다.

한국민은 억압적이고 범죄적인 정권들과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해냈다. 이 정권들은 오늘날 자유와 민주주의의 화신으로 자칭하는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만약 민주주의를 굳게 믿는다면, 북한 주민도 자신의 방식으로 적절한 시기에, 남측 동포와 연합해 평화적인 수단으로 똑같은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북한 주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미국의 운동은 이라크 ‘해방’ 운동처럼 불행한 결과를 빚을 수 있다. 2005년 9월의 베이징 합의는 지금까지 합의 가운데 최선이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워싱턴과 평양이 모두 이를 존중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번역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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