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금슬금 걸어나오는 강금실
  • 고제규 · 차형석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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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출마’ 고민 깊어져…이미지 효과 노린 ‘깜짝 출사표’ 가능성

 
지난 2월16일, 강금실 전 장관의 휴대전화에 불이 났다. “정치를 하면 김근태 의원과 하겠다.” 일부 언론이 그가 사석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고 보도하자, 이를 확인하기 위한 기자들의 전화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도 때 아닌 ‘강풍(康風)’ 논란에 휩싸였다. 김근태(GT) 후보측 우원식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강심은 GT 쪽에 있다”라고 했다. 정동영 후보측은 “그럴 리 없다. GT측의 자가발전이다”라며 맞불을 놓았다. 발언의 진위 여부를 떠나, 어느새 그녀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쥐락펴락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있었다.

이날 기자도 그에게 확인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 통화에서 강 전 장관은 서울시장 출마 여부와 자신의 고민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먼저 강 전 장관은 이날 보도된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난 2주 동안 여당 쪽 인사들과 접촉 자체를 피했다고 한다. 오비이락처럼 괜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다. “언제쯤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확정하느냐”라는 질문에 “글세, 여전히 왔다 갔다 한다”라고 대답했다.

확답은 피했지만, 무엇 때문에 주저하는지 그 단초를 내비쳤다. “출마 여부를 놓고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결단의 시점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시점이 아니다. 과연 내가 서울시장으로서 자격이 있느냐, 즉 준비가 되어 있느냐와 내 방식대로 선거를 치를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 고민스럽다. 이 두 가지 고민이 풀리면 과감히 뛰어들겠다. 그렇지 않으면 미련 없이 포기하겠다.”

“내 방식대로 선거 치를 수 있을지가 중요”

올해 초만 해도 출마를 생각해보겠다는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강 전 장관의 고민은 한층 진전해 있었다.  지난 1월9일 그녀는 당시 열린우리당 김혁규 지방선거인재발굴단장을 만난 자리에서  운명론으로 즉답을 피했다.

“인생이라는 게 운명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법무부장관이 될 줄도 몰랐고, 태어날 때부터 로드맵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해보겠다.” ‘정치를 안 한다(지난해 연말)’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다(지난 1월)’는 입장으로 바뀐 것이 불과 한 달 전인데, 이제 그녀는 자기 방식대로 선거를 치를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발언에 대해 여권의 한 인사는 “칠부 능선을 넘어, 이제 강 전 장관이 거의 구부능선까지는 온 것 같다”라고 풀이했다. 그는 “강 전 장관의 발언 가운데 중요한 대목은 자기 색깔의 선거운동 방식을 고민한다는 부분이다. 마음의 정리가 일단락된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요즘 부쩍 강 전 장관은 주변 인사들에게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로부터 출마에 대한 의견 요청을 받았다는 한 측근은 “나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는데, 본인은 이미 출마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 같았다”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측근은 “아침과 저녁 때 생각이 다르더라. 그런데 출마 쪽을 더 염두에 두고 고민하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여권 주변에서는 그녀가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영입을 위한 줄다리기는 끝났다고 본다. 2월18일 전당대회로 새로 뽑힌 당의장이 ‘강(康)의 남자’를 자처하며 총력 구애를 편다면, 강심(康心)이 출마 쪽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한층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외 블루칩’ 강금실 전 장관이 정치 시장에 상장되었을 때 주가 경쟁력은? 여론 전문가나 정치 컨설턴트 사이에서 평가가 엇갈린다.

먼저 강 전 장관의 장점은 단연 인물 경쟁력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중적인 인지도나 선호도가 다른 어느 후보들보다 앞선다. 지난해 12월6일 서울시민 6백명을 상대로 한 리서치앤리서치의 가상 대결 조사에서 강 전 장관(34.7%)은 한나라당 후보 맹형규 의원(34.2%)을 앞섰고, 홍준표 의원과의 가상 대결에서도 그는(39.2%) 홍의원(32.6%)을 앞섰다. 당시만 해도 정치를 하지 않겠다던 생각이 확고했을 때였다. 그런데도 서울시장을 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 한나라당 후보들과 엇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서울시장 후보 가능성이 있다며  언론에 오르내린 뒤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2월1일자 세계일보 조사에서는 강 전 장관(53.0%)이 한나라당 맹형규 후보(34.2%)를 18.8% 포인트 차로 멀찌감치 앞섰고, 홍준표 의원과 가상 대결에서도 강 전 장관(50.4%)은 홍의원(35.6%)을 14.8% 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2월13일자 내일신문 여론 조사에서 강 전 장관은 아파트 분양가 반값 공약을 발표한 홍준표 의원에게 뒤진 적이 있지만, 대체로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폴앤폴 조용휴 대표는 이런 강금실 전 장관의 강점을 ‘플러스 알파의 창조력’이라고 해석했다. 조대표는 현재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20% 수준인 데 반해, 강 전 장관 개인 지지도는 이를 앞서는 30~40% 수준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 지지도보다 개인 선호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인물 경쟁력이 뒷받침된다는 의미이다. 1995년 조 순 후보처럼 강금실 전 장관은 인물 경쟁력을 기반으로 등 돌린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여론조사 기관인 ‘더 피플’의 양순필 이사는 이런 강금실 창조력의 배경으로 ‘세련된 금실씨’만이 가지고 있는 신선한 리더십을 들었다. 법무부장관 재직 때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검찰의 하극상인 ‘검란’을 잠재운 감성적이면서도 세련된 리더십의 잔상이 국민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본부장 역시 강 전 장관의 인기는 단순한 거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신선하고 세련되었다는 장점만이 부각되어 있고, 여성이라는 점도 단점보다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다고 보았다. 김본부장은 지난 2002년 대선을 기점으로 지역 변수에서 세대·이념 변수로 넘어가는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여성 특유의 감성 정치력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런 강점만큼 강 전 장관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인물 경쟁력에서는 그녀가 앞서지만, 선거는 개인 플레이보다는 정당이 뒷받침되는 팀  플레이가 주로 이루어진다. ‘서울시장 강금실 후보’에 ‘열린우리당 후보’가 덧붙여지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본부장은 “선거를 전쟁에 빗대면, 전시에는 적과 아군이 완전히 갈린다. 문제는 강금실 개인보다 열린우리당이다. 평시에는 강금실 효과가 두드러지지만, 전시에 정당 변수가 개입하면 지금 여론조사 격차처럼 크게 앞서지 못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치를 하게 되면 열린우리당에서 할 수밖에 없는 강 전 장관의 제한된 정치적 행보 자체가 그녀에게 약점이 되는 셈이다. 같은 이유로 정치 컨설팅 그룹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강 전 장관이 열린우리당 쪽의 입장에 확실히 서면 지지율 거품은 걷힐 것으로 진단했다.

정창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더 현실적인 이유로 강 전 장관의 파괴력이 약하다고 본다. 그는 현재 한나라당 후보와 10%를 앞선다고 해도, 접전으로 풀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전 장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특성 때문이다. 강 전 장관의 두꺼운 지지층은 20~30대 젊은 층이다. 문제는 지방선거에서 젊은 층의 투표 참여율이 낮다는 데 있다.

지방선거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투표율이 낮다는 점이다. 2002년 지방선거 투표율은 48.8%에 그쳤다. 그래서 단순 지지도에서는 강 전 장관이 높지만, 투표 확실 층이나 잠재적 투표 층만을 대상으로 지지율을 분석해보면  강 전 장관은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론조사에서 강 전 장관을 지지한다고 해도, 실제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강금실 장관의 가장 큰 약점은 콘텐츠 부재이다. 포장된 이미지로는 상품성이 뛰어나지만, 아직까지 내용물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콘텐츠 부재·정당 문제 등이 약점”

그 내용물의 생산성에 대해서도 낮게 보는 평가가 있다.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그의 이슈 주도력을 낮게 본다. 정무직인 법무부장관과 달리 선출직인 서울시장은 정치인이고,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은 이슈 주도력인데, 강 전 장관의 이 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법무부장관 재직 때 그녀는 이슈를 주도하기보다는 검찰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이슈에 대처하는 데 급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 후보들이나 전문가들은 강 전 장관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더라도, 출마 선언 시점을 최대한 늦추리라고 보고 있다. 신비로운 이미지 효과를 최대한 누리면서, 검증 기간을 짧게 두기 위해 마지막 순간에 ‘깜짝 출마’ 선언을 하리라고 점친다. 강 전 장관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도 뒤늦은 출발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견해가 많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가만히만 있어도 서울시장 후보로 언론에 오르내리는데, 미리부터 뭇매를 맞을 이유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강 전 장관의 스타일을 아는 이들은 출마 선언이 예상과 달리 빠를 수도 있다고 점친다. 지난 참여정부 입각을 결정할 때도 강 전 장관이 재빨리 결단을 내리면서 허를 찔렀다고 한다. 청와대는 당시 그녀에게 장관직 입각을 제안했는데, 입각할 부처는 본인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언질을 주었다.

강 전 장관은 자신이 속한 법무법인 지평의 후배 변호사들과 의견을 나누었는데, 후배 변호사들로부터 보건복지부나 환경부 장관 쪽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아는 것은 법밖에 없다”라며 과감하게 법무부장관 직을 택했다. 그 이후는 ‘결심이 서면, 모든 것을 걸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용감한 금실씨’의 모습 그대로였다. 강 전 장관 주변에서는 이번에도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결심이 서는 순간,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선거전에 뛰어들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강하다. “내 방식대로 선거를 치를 수 있는가 고민하고 있다”라는 그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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