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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누리 없는’ 할인점 영토 전쟁

업계 4위 까르푸 매각 초읽기 홈플러스·롯데마트·이마트 ‘빅 3’ 각축

노순동 기자 ㅣ soon@sisapress.com | 승인 2006.03.24(Fri)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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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안희태
세계적인 유통 기업인 까르푸(사진)가 한국에서는 고작 4위에 머물렀다.
 
한동안 잠잠했던 유통 업계에도 기업 매수 및 합병(M&A) 바람이 불고 있다. 매물은 1996년 기세 좋게 한국 땅에 들어왔던 프랑스계 유통 업체인 까르푸. 이제 팔리는 신세가 되었으니 세계 1, 2위를 다투는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까르푸는 현재 국내 할인점 시장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경영 실적도 초라하다. 최근 실적이 호전되었는데도 고작 1백59억원 당기 순이익을 냈다. 최근 몇 년 동안 흑자가 수십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까르푸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덩지를 키워왔다. 점포 수가 32개에 이른다. 매출 규모도 3조3천억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까르푸를 누가 인수하느냐에 따라 할인점 시장은 지각 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까르푸측은 여전히 가타부타 공식 입장을 표하지 않고 있고, 심지어 매각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상자 기사 참조). 하지만 매각은 기정사실로 굳혀지고 있다. 

  4위 업체가 매물로 나오면서 1~3위 업체는 누구도 매물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3위인 롯데쇼핑의 롯데마트. 까르푸의 전체 점포를 인수한다고 가정할 때 중복 점포가 많지 않아 시너지 효과가 크다. 실탄도 넉넉하다. 롯데쇼핑을 상장하면서 끌어들인 자금을 할인점 분야에 쏟아 넣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까르푸를 2위 업체인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에 넘길 경우 만년 3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도 롯데마트가 인수에 적극적일 것이라고 관측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현재 롯데마트는 홈플러스에 비해 점포가 한 개 더 많지만, 매출은 1조원 이상 뒤진다. 

  2위인 홈플러스는 까르푸를 인수할 경우 이마트와 당당히 1위 다툼을 벌일 수 있다. 1위인 신세계 이마트는 까르푸를 통째로 인수할 경우 중복 점포가 많아 인수로 인한 실익이 적다. 하지만 이마트도 마냥 손을 놓고 있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1993년 처음 개점한 이마트는 현재 점포 수가 79개에 달해, 각 지역의 요지를 두루 선점하고 있다. 아직도 성장률이 20% 이상이고, 매출 규모도 8조 원을 넘어서 2위인 홈플러스와 격차가 크다. 하지만 초기에 출점한 곳이 많은 만큼 매장 규모가 작고 건물이 낡은 곳이 적지 않다. 지역에 따라 경쟁에서 밀리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실익 큰 롯데마트, 가장 적극적

  하지만 전점 인수를 가정할 때 시너지 효과가 가장 큰 곳은 2위인 홈플러스와 3위인 롯데마트이다. 유력 후보가 2파전으로 압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홈플러스측은 공식 견해는 아니지만, 이미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며 이달 말에 기자 회견을 갖겠다고 발표했다. 인수를 기정 사실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까르푸측은 “삼성테스코측 입장일 뿐, 결정된 것은 없다”라고 부인했다. 

  주변에서는 테스코 본사측이 까르푸가 제시하는 인수 가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열쇠라고 보고 있다. 한국 시장이 매력적이라고는 해도 최소 1조5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인수 대금을 쏟아붓는 결단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삼성테스코측은 이미 본사에서 인력이 파견되어 밀도 있는 검토 작업을 하고 있다며 성사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삼성테스코처럼 겉으로 ‘침을 발라’놓지 않았지만 롯데마트는 여전히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히고 있다. 롯데쇼핑이 할인점 비중을 높이겠다고 공언한 마당이어서 아무래도 외국 유통 업체보다는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매각이 현실화하면 까르푸는 꼭 10년 만에 한국을 떠나게 된다. 까르푸가 집중 조명을 받는 바람에 수면 위로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월마트도 형편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가장 흑자가 많았을 때가 1백40억원. 진입 초기인 1999년 90억원에 이르던 적자가 곧 흑자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흑자 규모가 수십억원에 불과한 데다가 2004년에는 다시 적자로 돌아서는 등 경영 실적이 들쭉날쭉이다. 월마트 점포는 16개. 투자도 정체 상태이다. 경쟁 업체 네 곳 모두 치열한 출점 경쟁을 벌이고 있으나 월마트는 2년 동안 단 한 곳도 점포를 새로 내지 못했다. 

  왜 세계적인 유통 회사가 한국에서는 힘을 못 쓴 것일까. 해답은 현지화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외국계라고 모두 고전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도 확고한 2위 자리를 누리고 있다(아래 표 2 참조). 삼성테스코는, 삼성이라는 간판 때문에 착시 효과가 있을 뿐 지분 현황으로 보면 까르푸나 월마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물산이 11%의 지분을 갖고 출발했으나 현재 지분은 한자릿수로 떨어진 상태이다. 

까르푸 몰락, 현지화 실패가 최대 원인

  그렇다면 외국계 유통 업체인 홈플러스는 어떻게 까르푸나 월마트와 달리 선전할 수 있었을까. 삼성테스코는, 영국계 유통 업체인 테스코가 삼성물산이 이미 갖고 있던 유통 업체인 홈플러스를 인수하는 형태로 한국에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하드웨어뿐 아니라 홈플러스의 노하우와 인적인 자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삼성테스코 이승한 사장은 삼성물산 출신의 삼성 맨이다. 또 영업을 하면서도 테스코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삼성이라는 간판을 내세움으로써 고객과의 거리감을 줄였다. 

   
   
  유통 전문가인 이정희 교수(중앙대학교·산업경제학)는 삼성테스코의 선전에 대해 “현지 인적 자원을 활용하다 보니 한국 소비자 특성에 맞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고, 또 제조 업체와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에서도 불필요한 마찰을 없앨 수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반면 까르푸나 월마트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자신들의 경영 전략을 지키려는 경향이 강했다는 것이다.  

  까르푸는 경영진을 프랑스 본사에서 파견했다. 하지만 그만큼 한국 시장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제조 업체와 할인점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사례로 보도되는 것 가운데 상당수가 까르푸가 진원지였다. 그 과정에서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도 한국 기업에 비해 미숙했다. 월마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기존 유통 업체인 마크로를 인수하면서 한국 시장에 들어온 월마트 또한 월마트 식 경영 전략을 고수했다. 

  이런 구조적인 특성은 고객을 유인하는 마케팅 전략에서도 큰 차이를 불러왔다. 한국형 할인점은 ‘슈퍼를 잡아먹고, 백화점과 경쟁하는’ 종합 쇼핑 타운이다. 서비스를 줄이는 대신 가격을 낮추는 외국 업체와 달리 한국은 가격도 서비스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발휘했다. 

식료품 코너가 승부 갈라

  한국 할인점의 가장 강력한 유인은 식료품 코너이다. 이른바 ‘분수 효과’가 가장 강력한 것이다. 분수 효과란, 아래에 몰린 손님을 위로 뿜어올리는 효과를 이르는 것으로, 할인점에서는 지하 1층에 자리잡은 식료품 매장에 몰린 손님들이 다른 물건도 함께 사는 구매 패턴이 가장 두드러진다.  

  신선한 식재료를 확보하는 데에서도 현지 유통 업체들은 ‘바잉 파워’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업계 1위인 이마트가 대표적이다. 구매력 뿐이 아니다. 식품 업체 사원들이 직접 매장에 와 시식 코너를 운영하며 호객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홈플러스는 농협 하나로클럽과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고 신선 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반면 까르푸나 월마트는 다양한 나라의 식재료나 음료, 주류 공급에서는 경쟁력이 있지만  현지 상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는 마찰을 빚곤 했다.  

  치열한 경쟁 상황에 직면한 할인점들은 아예 백화점과 맞서는 양상을 보인다. ‘가치점’이라는 표어를 만들어낸 홈플러스는, 이런 경향을 선도하고 있다. 

   2005년 현재 할인점 시장은 무려 23조원. 아직도 10%대의 안정적인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올해 초 유통 분야 전문가들은 올해에도 할인점 시장이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할인점이 블루오션인 것은 아니다. 할인점 내부 경쟁은 이미 전쟁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다. 
 
한편 ‘까르푸나 월마트가 한국 시장에서 실패했다’며 한국 업체의 경쟁력을 과신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정희 교수는 “업체마다 전략이 있다. 현지화가 미흡해 경쟁에 밀리기는 했지만, 까르푸와 월마트는 세계 굴지의 회사들이다. 언제고 시장 상황이 허락하면 다시 들어올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가 보기에 현재 아시아에서 유통 업체들의 각축장으로 떠오른 곳은 중국이다. 까르푸가 지난해 일본에서 빠져나온 데 이어 한국에서도 발을 뺄 가능성이 높지만, 중국에서는 여전히 가장 경쟁력이 높은 유통 업체라는 것이다. 월마트도 최근 2년 동안 한국에서는 출점하지 않았지만, 중국에는 1996년 이후 꾸준히 출점해 점포가 56곳에 이른다. 글로벌 기업이 세계를 놓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과정에서 무게 중심이 다른 나라로 옮겨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할인점도 해외도 눈을 돌리고 있다. 이마트는 이미 중국에 다섯 개 점포를 열었다. 이교수는 “과연 한국 할인점의 경쟁력이 어디에 기반하고 있는지 냉정히 따져보아야 해외 시장에서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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