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은 프리미엄 도시 세입자는 깊은 한숨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1.01.3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 입주 30평대 1억원선···땅값도 뛰어 “근교 전세도 힘들다”
 ‘고삐풀린 서울의 아파트 시세를 안정시킬 수 있는 극약처방’ ‘서울에서보다 훨씬 싼 가격에 중산층이 아파트 평수를 늘려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89년 정부가 분당 등 5대신도시건설계획을 발표하면서 나온 얘기들이다.

 그러나 오는 9월 분당 시범단지아파트 최초 입주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런 얘기들은 한낱 공허한 메아리로 떠돌고 있다. 애초에 정부는 중산층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지나치게 기대심리를 부추겼고 과열경쟁을 초래함으로써 분당 역시 일찌감치 투기꾼들의 상품시장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모델하우스 개관 당시부터 투기조짐은 나타났다. 부동산중개업자들은 현지에서 단속반의 눈을 피해 명함을 돌리며 청약예금 통장을 사모았으며 웃돈을 주고 성남주민들의 명의를 빌리는 데 주력했다. 이들이 주민 명의 빌리기에 혈안이 됐던 이유는 성남지역에서 9개월 이상 거주했을 경우 통장가입 여부에 관계없이 청약자격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청약자격을 대거 확보한 뒤 몇 개가 당첨될 경우 거액의 프리미엄을 붙여 불법전매를 하게 된다. 물론 당첨자 발표 후에는 당첨자 명단까지 입수, 일일이 접촉을 시도해 당첨권 물량확보에 주력한다. 이 과정에서 ‘꾼’들의 주요 목표가 되는 것은 엄청난 전매차익을 남길 수 있는 48평 이상짜리 중·대형아파트들이다. 이들이 물건을 거머쥐고 있는 바람에 서울 강남아파트보다 훨씬 쌌던 분당 신도시아파트 가격이 급등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이런 추세대로라면 아파트단지가 모두 완공되고 입주할 때쯤엔 분당아프트 시세가 서울 강남아파트값에 버금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을 정도이다.

 현재 음성거래되고 있는 분당 신도시아파트 프리미엄 규모를 알아보면 48평짜리가 입주시기의 순차에 따라 4천~8천만원선. 가장 빨리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의 경우(올 9월)는 이미1억원선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수가 클수록 프리미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60평대 아파트는 93년 7월 입주예정인 경우가 채권가 포함(90만원×평수), 1억6천만원선이다. 인기있는 건설업체의 아파트나 위치가 좋은 로열층의 경우는 이보다 많은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이 바람에 전문투기꾼에게는 큰 물건이 되지 못하는 30평대 아파트에조차 평당 평균1백만원씩의 프리미엄이 분양가에 얹혀 있다고 한다. 그러나 30평대라 하더라도 1차로 입주하게 되는 아파트는 8천만원 이상을 얹어주어야만 살 수 있다는 게 한 부동산중개업자의 귀띔이다.

“빚 얻어 큰 것 사두면 앉아서 돈번다”
 그렇다면 주기꾼들은 어떻게 법망을 피하고 있는가. 성남시 모란장 부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한 업자는 “워낙 단속이 심해 일단 전화로 매물을 찾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없다고 하거나 모른다고 한다”며 ‘확실한 고객들’과만 거래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이렇게 해서 살 사람과 팔 사람이 접선하면 절차는 정식거래와 별반 차이가 없다. 다른점에 있다면 단기매매에 부과되는 세금포탈을 위해 명의이전만 몇 년 뒤로 미뤄놓는 것뿐이다. 이때 소유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 매도인과 매수인은 공증을 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즈을 받을 경우 쌍방 중 일방이 법적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한 불법전매가 외부에 알려질 염려가 없고 그 어느 쪽도 재산상 피해를 입을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매물도 뜸하다고 한다. 특히 큰 평수는 자금난 때문에 당첨자가 어쩔 수 없이 내놓는 경우를 제외하곤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48평 이상 아파트 당첨권을 이미 5개나 사들였다는 김모씨(39·건설업·성남)도 “거액을 주고 사려고 해도 물건이 없어서 못산다”며 “빚을 져서라도 큰 걸 사놓으면 그걸 갚고도 훨씬 많은 금액을 앉아서 벌 수 있기 때문에 큰 평수만 주로 확보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입주시기가 가까워질수록 프리미엄도 더 오를테니 최고로 급등할 때까지 당첨권을 갖고 있다가 그때쯤 팔 생각”이라고 밝혔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김씨처럼 성남유지가 간혹 끼어들긴 하지만 매물을 내놓는 쪽이나 사가는 쪽은 실수요자가 아니고 주로 서울사람이라고 한다. 분당이 이미 본격적인 투기돌풍에 휘말려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투기열풍 외에 분당은 시도시건설계획으로 인한 또다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도 ‘좀더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버티고 있는 세입자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2천7백여가구 중 대부분이 이미 떠니가고 남아 있는 세입자는 약3백세대. 비교적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가옥주나 지주들과는 달리 이들은 분당을 떠날 경우 현실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에서 이들에게 제시한 보상안은 14~18평 임대아파트 입주권과 이사비용 5만4천원(작년 기준). 여건상 아파트 입주능력이 없어 입주권을 포기할 경우엔 생계대책비 2백25만원 정도(4인가족 기준)를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입자들은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반박한다. 그 근거로 이들은 자신들이 방 한두칸과 부엌 한칸을 보증금 40~50만원, 월세 3~5만원에 빌려살던 영세민임을 강조하고 있다. 입주권을 선택하려면 아파트가 완공될 때까지는 다른 곳에 나가살면서 입주에 필요한 자금(14평의 경우 약7백만원 정도)을 모아야하는데 투기바람으로 이미 갑절 이상 올라버린 성남주변에선 거처할 곳도 구하기 힘들뿐더러 생계를 잇기조차 어려워 아파트 비용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입주권을 포기하고 받게 되는 생계대책비도 수도권에 나가 생활터전을 닦기엔 턱없이 모자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남아 있는 세입자 가운데 한사람인 金龍씨(40·노동)는 “강제철거에 밀려 이미
떠나간 세입자 가구 대부분은 결국 아파트입주권 4백~8백만원을 받고 팔 수밖에 없었다“며 ”그러나 그 돈으로도 근교에 전세방 얻기가 힘들자 후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세압자들은 한국토지개발공사 분당 신도시직할사업단측에 집단가이주단지를 요구하고 있다. 아파트입주권을 포기하지도 전매하지도 않고 입에 풀칠하며 완공을 기다릴 동안 거처할 수 있는 빈 땅을 빌려달라는 것이다.

 李-- 분당세입자대책본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가장 늦게 건설될 아프트 터를 2년 정도만 빌려주면 가건물을 우리가 짓고 열심히 일해 아파트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아파트 건설계허?에 차질이 없도록 하면서 세입자에게 실질적인 아파트 입주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방법인데 왜 거부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업단측은 세입자들의 요구가 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인 데다 ‘나쁜 선례’가 될 것을 우려,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날씨가 풀리면 잠시 뜸했던 철거반원과 이들의 실랑이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투기꾼들의 움직임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분당 신도시아파트는 과연 서울 아파트가격을 안정시키고 서울인구를 끌어들여 명실상부한 중산층 도시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 분당에서의 명암이 확연히 엇갈리고 있는 요즘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