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량, 얼마나 늘려야 적정한가
  • 편집국 ()
  • 승인 199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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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나라의 경제가 안정된 물가 속에서 건실하게 성장해 나가려면 매년 얼마만한 돈이 더 필요한가. 경제학자들은 이 질문을 “적정 통화증가율이 얼마인가”라고 바꾼다. 경제규모가 커지는 만큼 돈도 늘려야 하는데 너무 많이 풀 때는 물가가 뛰는 필연적인 결과 때문에, 이른바 적정 통화증가율을 두고 시비가 생긴다. 만성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한국의 경제현실에서 적정 통화증가율을 판단하는 일은 경제정책에 매우 중요한 몫을 한다. 연초 정부는 올해 총통화증가율을 18.5%로 잡고 긴축정책을 펴 적정성장과 함께 물가도 안정시키겠다고 밝혔다. 돈이 많을수록 좋은 경제규모로 볼 때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고 볼멘 소리를 내었다.

  적정통화량 논란은 3월26일 趙淳 전 부총리가 한국은행 총재로 취임하면서 다시 일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영악한 도둑은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한다. 지갑 속의 돈가치를 감쪽같이 훔쳐가기 때문이다. 이 도둑을 막기 위해서라도 통화량 논쟁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통화 증가율 더 낮춰야 한다.

  현재의 총통화증가율 목표 18.5%는 정부의 경제 안정화 목표에 비추어 볼 때 긴축이라고 볼 수 없다. 경제학 원론에 등장하는 교환방정식, 즉 ‘통화증가율+화폐유통속도증가율=인플레이션+실질성장률’에서 유통속도증가율을 91년과 같다고 보고 올해 성장목표율을 잠재성장률 수준인 7·8%, 총통화증가율을 18%라고 보면 인플레이션율은 11%가 넘기 때문이다.

  최근 업계는 통화를 더 늘리고 금리를 낮춤으로써 국민총생산(GNP)에 대한 통화량의 비율, 즉 마샬k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단지 긴축반대를 위한 억지논리에 불과하다. 마샬k란 민간의 통화보유 성향, 즉 통화수요를 측정하는 지표로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증감시킬 수는 있지만 민간의 통화수요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통화수요는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감소하기 마련인데, 통화를 늘림으로써 총수요가 확대되어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면 마샬k는 낮아지고 명목금리는 인플레이션을 보상하려고 오히려 증가한다.

  만일 우리가 올해 물가인상률을 7% 수준으로 억제하고자 한다면, 앞의 교환방정식에 따라 총통화증가율도 4%포인트 가량 더 낮춰야 한다. 그러나 급격한 통화량변화는 경제 전체에 교란효과가 크기 때문에 2~3년 이상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통화증가율을 낮춰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좌승희 (한국개발원 연구위원)

 

통화량 4배 확대 필요하다.

  기업이 심각한 자금난과 재고누증 사태를 겪는데도 인플레 억제를 위한 통화긴축이 옳으냐 아니냐 하는 식의 논의만 계속되어 안타깝다.

  적정한 통화공급에 대한 논의는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실물부문에서의 재화 용역 금융자산의 국내거래와 대외거래를 위해 현재의 통화공급량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거시경제 변수와의 연관관계를 고려할 때 국민경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통화흐름이 제대로 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와 재계 간의 첨예한 통화논쟁은 적정통화량문제이다. 이것은 실물부문과 금융부문의 균형에 관한 것으로 집약된다.

  마샬k의 국제간 비교로 보면 한국경제 실물부문의 크기가 금융부문에 비해 적어 절대 통화공급량이 부족하다. 개발초기 단계와 달리 실물부문 공급능력을 갖춘 현재의 상황에서는 통화공급확대가 물가상승에 1 대 1 대응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더욱이 통화량의 절대부족은 자금의 만성적 초과수요를 초래하고 통화정책의 신축성을 상실하여 경기조정기능을 갖지 못한다. 필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현재 통화공급량의 4배가 필요할 정도로 경직적이다. 통화공급량의 4배가 필요할 정도로 경직적이다. 통화공급량의 절대수준을 늘리지 않고서는 통화정책에 의한 경기조정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을 신장시키는 산업관련 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정진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올해 증가율 17% 넘지 않아야

  총통화량을 연간 18%씩 증가시키고 있는 현재의 통화정책은 긴축정책이 아닌 분명한 확대정책이다. 물가상승률이 10%에 이르고 있는데 금리를 7%로 낮추겠다는 통일국민당의 주장은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3%의 이자까지 얹어주겠다는 허황한 주장이다. 물가가 불안한 상태에서 통화공급의 확대가 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은 수백년 동안 확인되어온 경제이론을 부정하는 독단이며 저금리 지원 특혜와 인플레이션을 통해 부당하게 부를 축적한 재벌의 왜곡된 논리이다.

  통화공급을 줄인다고 해서 곧 인플레이션이 수습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통화공급을 적정수준으로 억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정부는 지속적인 금융긴축을 통해 기업에게 인플레이션에 의한 불로소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와 함께 가격기구를 통해 자금의 흐름이 정상화 되도록 하고 재정면에서의 긴축도 동시에 실시해야 한다.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7%, 물가인상률 억제선을 7%로 잡고 여기에 불확실한 요인을 감안하면 15% 수준이 적정 통화증가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급격한 통화축소는 또 다른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올해에는 17%를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윤원배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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