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체제의 집단적 갈라먹기
  • 김재일 차장 ()
  • 승인 199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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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최고위원 지분 따라 당직 철저 안배…계보 정치 폐해 드러나

민주당의 계보 정치가 점입가경이다. 최근 민주당 부위원장급 인사 내용을 들여다보면 최고위원들 간에 얼마나 철저하게 ‘갈라먹기’식으로 당직 인선이 이뤄졌는지를 알 수 있다. 부위원장급 당직 43개를 놓고 이기택 대표 최고위원이 먼저 하나를 고르면 최고위원 8명이 전당대회 득표 순위(김원기 유준상 조세형 권노갑 노무현 한광옥 신순범 이부영)대로 당직을 하나씩 골라잡아 자기 사람을 채워 넣었다. 그렇게 한바퀴 돌아 당직 9개가 채워지면 나머지 당직을 놓고 처음 순서와는 반대로 이부영 최고위원으로부터 시작해 이기택 대표까지 당직을 선택했다. 그 다음에는 처음의 순서대로 내려왔다가 다시 거꾸로 올라가고 하면서 43개 당직이 채워졌다.(표 참조).

“아홉 사람의 주식회사와 다를 바 없다”
 43석 중 1석은 연청 몫으로 안영칠씨가 청년특위 부위원장을 맡았다. 김부겸씨는 이부영 최고위원계인데 노무현 최고위원의 지분으로 당무기획실 부실장을 맡았다. 최고위원 9명이 4∼5석씩 차지했는데 1석이 많거나 적은 것은 중요 직책을 차지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양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최고위원들이 자기 사람을 챙기다 보니 엉뚱한 사람이 직책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자기 계보가 아니면 누군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 일에 적합한가 하는 기준이나 당에의 기여도는 뒷전이고 최고위원 각자의 지분에 따라 당직을 철저하게 안배한것이다. 한 당내 인사는 이를 두고 “이런 식이면 인사는 적재적소가 될 수 없다. 이는 아홉 사람이 참여한 주식회사식 운영과 다를 바 없다”라고 비꼬았다. 한 당직자는 최고위원들이 국장⋅부국장⋅부장 인선을 앞두고 인사 규정을 만드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시 나눠먹기를 하겠다는 뜻임은 말 할 것도 없다.

 통합 민주당은 원래 크게 두 계파, 즉 동교동계와 평민연이 합친 신민계, 그리고 이기택계와 이부영씨를 중심으로 한 민연파가 연대한 민주계로 나눠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김대중 전 대표의 정계 은퇴와 지난 3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민주당 계보는 세분됐다. 전당대회 당수 경선에서 김대중 전 대표측근 의원들은 이기택 대표를 밀었고, 다른 동교동계 의원들은 김상현 의원이나 정대철 의원을 지지했다. 민주계에서도 김상현 의원과 정대철 의원을 민 경우가 있다. 그 결과 신민계와 민주계의 구분이 모호해져 계파가 재편됐다.

 현재 이기택 대표는 강수림 조순형 박은태 장기욱 이규택 의원 등 19명, 김상현 의원은 이 철 신순범 김원길 신기하 이영권 의원등 17명의 현역 의원을 거느리고 있다. 김원기 최고위원은 김태식 이 협 최락도 박태영 채영석 의원 등 10명, 정대철 위원은 김덕규 박실 조순승 조홍규 의원 등 5명의 현역 의원을 계보원으로 확보하고 있다. 다른 의원의 경우 거느린 의원이 1∼2명에 불과해 계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중도파로는 허경만 김충조 김영진 한화갑 제정구 강창성 김옥두 남궁진 의원등 32명이 꼽힌다.

“당은 안중에 없이 지분 다툼만”
 당수 경선에 나섰던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최고위원들도 벌써부터 당권을 노려 계보원 관리에 발벗고 나섰다. 한 당직자는 “개혁 정국에서 제 1야당의 존재가 실정 상태인데도 당은 안중에 없이 지분 다툼과 당권 싸움에 여념이 없다”면서 혀를 찼다.

 지난날 야당이 극도로 탄압받던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는 계보 정치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못믿을 사람과 일을 할 수 없는 상항에서 정책이나 이념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뭉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극도의 충성심이 요구되는 상황은 아니어서 보스 앞에 줄서기식 정치는 오히려 폐해가 크다는 지적이 있다.

 민주당 계보 형태는 집단 지도체제와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여러 사람이 지도부를 구성하는 집단 지도체제에서 분파 작용은 당연한지 모른다. 계보 세분화와 더불어 집단 지도체제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고위원 회의에서 안건 하나를 처리하는 데 보통 3∼4시간이 걸려,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다는 비판이 다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기택 대표는 “집단 지도체제를 잡음 없이 끌고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의사 결정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면 비생산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당력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두 김씨의 지도력은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 집단 지도체제의 묘미를 살려 새로운 지도력을 창출할 생각이다”라고 말한다. 집단 지도체제를 잘만 운영하면 계보 정치의 폐해를 줄이고 당내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다. 집단 지도체제의 순기능을 살리는 문제는 이대표이 지도력에 달려 있다.
金在日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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