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풍요 속 빈곤’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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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망생 많지만 ‘직업의식’ 보다는 ‘허영심’

 모델 지망생은 많지만 모델다운 모델이 없다는 소리가 모델계 내부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최근 급성장한 광고시장과 모델에 대한 긍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배경으로 모델은 확실한 직업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정작 활동할 만한 자질 있는 모델은 극히 제한된 숫자에 불과한 ‘풍요속의 빈곤’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2,3년 사이 부쩍 유명해진 장진경씨(27·모델라인 소속)는 썩 ‘잘 팔리는’모델 축에 낀다. 지난 9일에도 장씨는 여성잡지의 패션사진과 의류업체의 캐털로그 촬영 때문에 바쁜 하루를 보냈다. 오전 8시에 압구정동 ㅂ미용실에서 머리를 매만진 장씨가 길건너 한 수입의류매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대기하고 있던 사진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장씨는 슬로 모션으로 신비스럽고 뇌쇄적인 갖가지 자세를 연기해냈다. 그는 올해 경력 7년째로 그동안 줄잡아 30만벌의 옷을 소화해냈으니 이 정도쯤이야 식은 죽 먹기이다.

 

‘쓸 만한’ 모델 드물어 10여명이 겹치기

 옷을 여섯벌 갈아입으면서 의상의 분위기에 따라 변신을 거듭하던 장씨는 두시간 만에 일이 끝나자 잽싸게 짐을 챙겨들고는 끼니도 거른 채 충무로 광고사진 촬영장소로 달려갔다. 오늘 23일부터는 KBS-2TV의 아침프로 ‘전국은 지금’에서 패션리포터로 출연하기로 했으니 장씨가 끼니를 챙겨먹기는 당분간 힘들 것 같다.

 현재 장씨처럼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모델은 약 5백명으로 추산되는 전체 직업모델의 5%에도 못미친다. 정용선씨(세계여성 사진부차장)는 “사진을 제대로 소화해낼 만큼 재능있는 모델이 많지 않아 톱모델의 겹치기 촬영은 예사”라고 말한다. 국내 20여종 여성잡지의 패션사진에 겨우 10여명이 번갈아 등장할 정도로 층이 엷다는 것이다.

 모델 기근현상은 광고업계도 마찬가지이다. 광고시장이 커져 모델업계가 활황을 맞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CF모델 지망생도 엄청나게 늘었지만 대부분 아마추어 수준일 뿐 광고를 아는 모델은 찾기 힘들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모델 캐스터로 인정받는 朴性勇씨(제일기획 제작지원부)는 "쓸만한 모델도 드물뿐더러 광고주들의 안전제일주의 풍조로 인해 신선한 얼굴을 발굴하기보다는 유명 모델을 선호하다 보니 많이 중복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국내의 모델은 패션쇼나 패션잡지, 캐털로그 촬영에 주력하는 직업모델과, CF(방송광고용 TV 필름) 및 기타 판촉물 촬영에 주력하는 광고모델로 나뉜다

 직업모델의 경우 현재 한국모델협회에 등록된 수는 약 5백명이다. 이중 드물게나마 활동하는 모델은 남자 7-여명을 포함하여 약 1백50명 정도이다.

 우리나라 모델의 역사는 길게는 56년 디자이너 노라노씨가 국내 처음으로 패션쇼를 열었을 때를, 짧게는 64년 국제복장하구언에 모델양성코스인 차밍스쿨이 개설된 이후를 시발점으로 삼는다. 오늘날과 같은 모델의 개념으로 불릴 만한 직업모델들은 70년대 모델계를 이끌었던 루비나를 비롯하여 당시 패션모델계의 트로이카로 불린 이희재 박정옥 유혜영씨, 그리고 유기복 유영실 씨가 손꼽힌다. 큰 쌍꺼풀 눈으로 유명한 루비나씨는 데뷔 당시로는 큰 키(169㎝)여서 ‘대형 모델’로 불렸고, 샹송가수로 활약할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그러나 70년대 열악한 상황에서도 모델계의 주춧돌을 세웠던 이들 이후, 모델업계는 이렇다 할 진전 없이 오히려 후퇴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몇 번의 도약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게 모델업계의 중론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모델 에이전시 탓이라고 전직 모델 정인숙씨(32·코디네이터)는 말한다. 79년 빚 7만원을 갚기 위해 모델계에 뛰어든 정씨는 깜찍한 용모로 텔레비전 광고에도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던 정씨는 85년 어느날 밤 어떤 모델 에이전시측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가 말로만 듣던 ‘몸 뺏고 돈 뺏는’ 횡포를 당하게 된다. “전속모델을 시켜준다는 미끼였다”고 말하는 정씨는 당시 사고를 강간으로 신고했지만 협박에 못이겨 폭행 정도로 마무리하고 말았다고 쓸쓸한 표정으로 회상한다.

 모델 에이전시는 패션쇼나 광고에 모델의 출연 섭외를 대행하는 단체이다. 모델을 소개해준 대가로 모델에게 지급되는 개런티의 20%를 받는 게 관례이나, 에이전시가 모델료를 주먹구구식을 산정하여 가로채거나, 대부분의 모델이 전속모델을 동경하는 점을 악용해 술시중을 강요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횡포에 대해‘한국모델 사업자협회’ 李星周 회장은 “과거 25개쯤 난립했던 무허가 모델 에이전시들이 저지른 일이다”라면서 현재는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모델사업자협회보》 최근호에 실린 “제언 모델업계의 버릴 것과 취할 것‘에서도 ”…지난날의 관습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블랙 모델에이전시를 정화할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어 이 문제는 아직도 모델업계가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올림픽 때 도약 기회 놓쳐 모델산업 퇴보

 두번째, 80년대 광고산업의 신장으로 CF 모델이 새로운 영역으로 떠오른 것도 결과적으로 모델의 질적 저하를 가져왔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직업모델이 광고까지 도맡아 하던 초창기와는 달리 80년대 이후 모델은 직업모델과 광고모델이 확실하게 분류되었다. 광고모델은 직업모델에 비해 신체 조건이 떨어져도 별 문제가 없지만 85년 이후 각 TV 방송사가 매년 뽑는 탤런트의 80%가 CF모델 출신인 것을 보면 광고모델의 길은 연예계 입문코스로 변질된 듯한 인상이다. CF 모델의 연령층은 매년 낮아져 평균 23세 정도이며 활동 기간도 약 5년으로 아주 짧다.

 결국 양적 팽창과 세분화로 요약되는 모델 시장은 프로 근성 없이 ‘기쁜 우리 젊은 날’을 구가하려는 아이들의 허영심을 만족시켜 주는 반짝 무대로 전락한 것이다. 게다가 직업모델과는 달리 경력이 필요없는 광고 모델은 일단 탤런트로 성공하면 유명세로 인해 개런티가 CF 1편당 2천만~3천만원으로 수십년 경력의 모델료 2백만~3백만원을 크게 웃돌아, 상대적으로 직업모델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이재연씨(모델라인 대표)는 모델업계가 퇴보한 이유 가운데 또 한가지는 정부의 의지부족으로 모델산업이 올림픽이라는 호기를 놓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때 대규모 패션행사를 치르자고 상공부와 섬유업체에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닫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씨는, 고부가가치인 패션산업에 대한 장기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한 모델의 미래 역시 불투명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외적 요인에 못지 않게 모델의 자질향상은 모델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자성의 소리도 들린다. 올해 초 부시 대통령 내외가 방한했을 때 피부미용을 맡았던 鄭世珠씨(47·피부미용 전문가)는 한국인의 눈에는 결코  미인이 아니지만 개성적인 외모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머리로 81년 뉴욕타임즈에 ‘동양의 머리 모델’로 사진이 실렸을 정도로 개성이 강하다. 정씨는 “우리나라 모델은 개성이 약해 향기 잃은 꽃 같다”고 안타까워한다.

 직업모델이 경우 그동안 체격조건은 크게 좋아져 80년대 후반 여자 170㎝ 남자180㎝에서 90년대는 여자 175㎝ 남자 185㎝가 넘어야 모델로 활동할 수 있을 만큼 국제화되었지만 그밖의 조건은 자연스러운 건강미를 강조하는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해외 모델에 대한 선호도는 갈수록 높아져 간다. 지난달 호주에서 현지 모델을 데리고 캐털로그를 제작한 바 있는 朴美惠씨(성도어패럴 코디네이터실장)는 “외국 모델의 활기찬 몸놀림은 오늘날의 패션이 추구하는 건강한 아름다움에 근접해 있다‘면서, 해외시장을 겨냥한 바이어 쇼에는 해외 모델이 불가피한 만큼 의류업체의 해외 모델 선호도는 갈수록 높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한편 모델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曺圭炫씬(MCS 대표) “에이전시와 모델의 신뢰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하며 “모델 교육기관과 모델 에이전시가 분명한 역할분담이 이뤄져야 모델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모델에게 있어서 최고의 매력은 ‘신비감’이라고 말하는 박영선씨(25·모델센터 소속)는 87년 가을 패션쇼에 출연한 초기부터 ‘특별 대우’를 받아왔다. 국내 최초로 외국에 모델로 진출해 현재 일본 포드사 소속인 박씨는 용모가 인형같이 깜찍하다. 지난 8일 남산 미용실에서 패션사진을 촬영하는 동안 박씨는 잠시만 시간이 나도 몸을 춤추듯 흔들었다. 리듬을 타면 의상에 대한 영감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옷 한 벌을 두고 공주와 거지 사이를 오가는 이 직업이 어둠과 밝음이 확실한 자신의 성격에 딱 알맞아 ‘즐긴다’는 박씨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계속 흔들흔들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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