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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어린이에게로 가는 길이 있었다”

장편동화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 낸 작가 오정희씨

이문재 기자 ㅣ 승인 1993.08.05(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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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서 살고 있는 작가 오정희씨(45)가 최근 두 권짜리 전작 장편동화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한양출판 펴냄)을 내놓았다. 이 소설은 《불의 강》《바람의 넋》과 같은 작품집으로 일찍이 문학성을 인정받은 중견 작가가 처음으로 쓴 장편이고, 89년 단편 <파로호>를 발표한 이래 오랜 침묵을 깨고 선보인 작품이란 점에서 우선 눈길을 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주변 텍스트’적인 요인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아, 그렇구나’라는 공감을 앞세우는 독후감을 체험하게 된다. 작가도 말하고 있거니와, 이 작품을 굳이 동화라고 테두리지을 까닭은 없다. 열두 살 난 소녀를 화자로 한 장편소설이라는 규정이 더 적확해 보인다. “동화에 대한 특별한 개념을 설정하지 않았다. 기존 관념을 들이대면 동화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오정희씨는 말했다.

집 밖에서 ‘비밀’로써 자라나는 아이들
 《송이야…》는, 거개의 다른 동화들이 그렇지만, 어른들이 먼저 읽어야 한다. 어른들이 ‘작품성’을 판단해야 한 대서가 아니다. 어린이의 눈높이로 내려가지 않는, 혹은 어린이의 눈만큼 투명해질 수가 없는 어른들이 주인공 한송이의 ‘성장통’을 통해, 자신들이 잊어버린 그 시절을 불러와 보자는 것이다. 한때 어린이였던 모든 어른들이 지녔던 성장기의 꿈을 거울로 삼아 먼저 어른들이 오늘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제안인 것이다.

 이 소설은 2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화자 송이는, 작가 오정희의 어린 시절에다, 당시 열두 살이었던 작가의 딸 박정기양(춘천 봉의여중 2)의 생각과 일상이 겹쳐져 있다. “굳이 쉬운 문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고집하지 않았다. 내가 옆에서 지켜본 아이들의 삶을 그대로 옮기려고 했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그래서 어떤 글을 쓸 때보다 편안했고 나아가 글쓰는 자의 행복까지도 느꼈다.

 “딱딱하고 메마른 가슴의 어른이 아닌, 열두살 소녀의 눈과 마음이 되어 바라보고 느끼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웠는지. 세상의 어린이들을 만나는 새로운 통로를 발견했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국민학교 6학년인 한송이가 1년 동안 겪은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엮어나간 이 소설은 제목이 나타내듯이 생애의 전과정에 불쑥 불쑥 나타나는 ‘문’에 관한 이야기이다. 송이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 뿐인 존재’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지만, 급우·선생님·부모·오빠·어른들 그리고 자기의 꿈과의 관계 속에서 내면의 찰과상을 입으며 성장한다.

 한 문학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이 소설 속의 소녀들이 겪은 어려움은 ‘자신의 삶과 세계 사이에 아무런 차단이나 장애가 없기를 꿈꾸는 열망’에서 비롯한다. 세계와의 합일을 갈망하는 본능적 에너지가 벽에 부딪힐 때 이 소녀들은 절망을 딛고 한 계단씩 자라난다. 그것은 부재의 확인이기도 한데, 송이는 전학온 친구 영희와, 흉가인 ‘은비네집’을 통해 꿈꾸기와 부재를 배운다. 영희는 거짓말쟁이지만 동시에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이다. ‘은비네집’은 두 친구 사이의 비밀스런 상상력에 의해 ‘살아 있는’ 가상의 집이다. 비밀 또는 상상력(거짓말)에 의해, 부재하는 것을 존재 속으로 끌어들인다.

 송이의 성장은 특히 집(가족) 밖에서 이루어진다. 혼자 경춘선을 타고 서울 외할머니를 방문하는 ‘단독 여행’이나, 낚시광인 아버지가 잡아온 자라를 놓아주기 위해 오빠와 밤길을 달려 저수지에 다녀오는 ‘일탈성’ 또는 급우들이 따돌리는 영희네 집을 찾아가면서 세상에 눈뜨는 것이다.

 성장 소설을 한편 써보고 싶다는 오정희씨는 그러나 “자칫 모든 억압의 책임을 사회와 제도의 탓이라고만 돌리는 성장 소설이 될까 싶어 저어하게 된다. 어른의 도리에는 아이들의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일도 포함돼 있다”라고 말했다.
춘천·李文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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