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멀어진 ‘地上의 방 한칸’
  • 박상기 편집위원대리 ()
  • 승인 1990.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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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값 50% 이상 폭등… ‘분노의 행렬’ 셋방살이 대이동

때놓친 충격요법’에 신물, 일관성있는 주택정책 펼쳐야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올봄은 너무나 잔인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1월초 서울 강남의 아파트 밀집지역에서 일기 시작한 전세값 폭등열기가 순식간에 수도권 전역의 연립 · 단독주택을 휩쓸고 전국 주요도시로까지 무차별 확산되어 ‘무주택 신드롬’이라 할 만한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낳고 있다. 전세값 폭등의 불길은 주택가격의 앙등을 부추기고, 상가 · 공장의 임대료도 대폭 끌어올려 무주택서민 · 중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협, 정치 · 사회적 불안감마저 고조되고 있는 상태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산성동 1316 李모씨집의 지하실방에 세들어 살던 이성남(54)씨. 그는 지난 2월13일 집주인이 요구하는 전세 인상액 1백50만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운동화끈으로 목을 매 자살하는 참극을 빚었다. ‘보통사람’의 생각으로는 “그만한 금액을 변통하지 못해서 목숨을 버리다니” 하며 혀를 찰지 모르지만 그집 살림형편을 들여다보면 어렵지 않게 그의 絶命에 공감하게 된다.

 습기가 빠지지 않아 사방 벽에  곰팡이꽃이 잔뜩 핀 3백50만원짜리 지하실 전세방에서 처와 딸 넷(고2 · 중3 · 중1· 국민학교3)의 이씨 가족 6식구가 살아왔다. 이씨는 지병을 앓는 데다 몸이 허약해 노동력을 상실한 상태라 이 집의 수입은 부인 禹惠淑(410씨가 강남의 아파트촌으로 파출부일을 나가 벌어들이는 월20만원이 고작이다. 이 돈으로 여섯식구가 먹고 입고 연탄 사 쓰고 전기 · 수도료 내고, 고등학교에서 국민학교에 이르는 네 자녀의 학비를 대고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고향인 경북 영주에서 국민학교를 나온 후 상경, 남의 집 가정부로 일해오다가 스물세살에 남편을 만나 18년을 함께 살아온 그녀는 이제 영원히 남편과의 결혼사진을 장만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예식은 엄두도 못내고 자식들 몰래 동네 사진관에라도 가서 ‘우리도 이렇게 결혼식을 올린 떳떳한 부부’임을 증명해줄 수 있는 사진 한장 찍기를 소원해온 우씨의 꿈도 남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한줌의 재로 남편의 시신을 뿌리고 탈진해 누운 그녀의 발목에는 여전히 ‘전세계약 만료일 3월10일’의 족쇄가 채워져 있다. “나돈 천원만 주라. 이렇게 누워 있으면 폐인밖에 더 되겠나. 나가서 뭔일이든 찾아봐야지” 하며 살아보려고 앙버듬치던 남편이 초췌한 모습이 눈앞을 가릴 때마다 그녀는 “빨리 내가 기운을 차려 일을 나가야 쓴다. 그래야 이 자식들을 키워내지”하고 삶의 기력을 끌어모은다고 했다.


“생난리 났어도 책임지는 당국자 없다”

 물론 이씨의 죽음을 하나의 극단적인 사례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몰아닥친 전세값 폭등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집없는 대다수 서민들에게 경제적 고통 정도가 아니라 절로 ‘죽고 싶은 심정’에 빠지게 하는 ‘경제적 고문’을 가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YMCA시민중계실에서 지난 1월부터 2월15일까지 접수한 전세값인상 피해 상담 1백11건의 내용을 보면 가옥주의 인상 요구율이 아파트 66%, 단독주택 54.9%, 연립주택 46%로 평균 59.5%에 이르고 있다. 월수입 60만원이 세대주가 전세 1천5백만원 정도의 서울 변두리 15평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가정하자. 전세값이 50% 오르면 그는 7백50만원을 더 장만해야 그 집에서 눌러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이 금액은 그가 수입을 단 한푼도 축내지 않고 1년 동안 꼬박 모아도 부족하니, 결국 집을 비워주고 더 변두리로 나가거나 아니면 전셋집 규모를 대폭 줄이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한해를 열심히 산 결과, 온 가족이 먹고 싶고 입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을의 숱한 유혹과 싸우며 구두쇠처럼 살았어도 결국 더 변두리로 이삿짐을 끌고 떠나야하는 어처구니 없는 삶. “서울 인구의 50%가 넘는 무주택자들이 지금 그런 절망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부가 부동산값을 안정시키고 내집마련의 기회를 늘려준다고 지난해 내내 얼마나 떠들어댔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난리가 났는데도 도대체 누구 하나 책임지고 무러선 자가 있냐 말입니다.”

 서울 노원역 주변에 밀집된 부동산 소개소를 훑으며 자신의 전세돈에 맞는 새 아파트를 구하려다 지친 姜日洙(36·회사원)씨는 금방 누구의 멱살이라도 움겨쥘 듯이 울분을 떠뜰렸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상계동의 22평 아파트를 전세 1천 7백만원에 살아왔는데. 물경 1천1백만원을 더 내라는 주인 얼굴이 ‘악마’같아 보여서 “정말 죽이고 싶더라”고 털어놓았다.


‘전세값 안정대책’에 셋집 구하기 더 힘들어

 전·월세값 폭등이 민생 부문의 최대 현안으로 부각되자 정부 각 부처는 뒤늦게나마 총력전을 펼 기세로 각종 긴급조처를 홍수처럼 쏟아내놓았다. 국세청은 2월20일부터 서울에 만 2천6백명(전국 6대도시에 3천8백명)의 임대료 실태 조사원을 투입, 10%이상 임대료를 올린 건물주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팔걷고 나섰다. 또 6대도시의 일선 세무서와 지방국세청에 ‘부당임대료신고센터’를 긴급 설치(2월20일), 집주인의 과도한 인상요구로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의 신고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검찰청별로 전담반을 편성해 양도소득세 포탈등 부동산 관련 범법행위를 뿌리뽑겠다고 서슬 푸르게 나왔다. 건설부는 또 신수요자의 내집마련기회를 늘려주기 위해 국민주택 규모(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에 대해서는 무주택자에게만 분양신청자격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토지공개념·금융실명제 등 경제개혁조치의 시행에 꼬리를 사리던 民自黨도 고위당정회의(2월17일)를 열어 주택상환사채를 발행하고, 분당·일산 등 신도시아파트의 분양시기를 앞당기며 공급물량을 확대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서울시청도 ‘시민주택상담실’을 개설(2월20일)해 전·월세 및 상가임대료 인상을 둘러싼 분쟁을 조정하며, 앞으로 각 구청과 동사무소에도 ‘임대료분쟁조정신고센터’를 설치, 관련 민원을 최일선에서 다루겠다고 거들었다.

 정신이 어지러울 만큼 여기저기서 각종 대책들이 쏟아져나와 이러다가는 전ㆍ월세를 놓은 모든 가옥주들마저 졸경을 치르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정부의 규세 일변도인 ‘전세값 안정대책’들은 오히려 본격적인 이사철을 맞은 무주택자들의 주거불안ㅇ르 가증시키는 결과를 빚고 있다. 왜냐하면 임대소득 중과세를 우려한 임대인들이 소개업소에 내놓은 전세방을 거둬들이고 있어 전세매물이 갑자기 줄어드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전세값이 집값의 60~70%에 달하자 무리를 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아예 내집을 장만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어 집값마저 덩달아 폭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떠도는 뭉칫돈이 부동산값 폭등의 주범

 “전세값이 집값의 60~70%까지 오른 강남 지역에서는 ‘전세를 얻느니 아예 융자를 받아 아파트를 사는 게 낫다’는 수요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 변동에는 부동산 자체의 수요ㆍ공급에 의한 내부적 요인보다 정치ㆍ사회 등의 외부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지요. 해마다 1월이면 8학군 고교진학을 원하는 교육적 수요 때문에 강남지역 아파트의 전세값이 제일 먼저 뜁니다. 그런 다음에 강남지역의 상승세가 강동ㆍ강서ㆍ강북순으로 확산되어 4월까지 지속되곤 하지요.”

 부동산 전문지 ≪부동산뱅크≫ 발행인 朴泳律씨는 주택문제를 해결하려면 주책 외적인 요인을 먼저 진단하고 척결해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전세값 폭등이 야기된 데는 만성적인 주택부족, 임대차보호법 개정에 의한 임대기간 2년 연장조짐, 분당 등 신도시 입주를 목표로 한 일시적 전세 수요증가 등의 요인이 작용했지만, 그보다 더 큰 요인은 시중에 풀려 있는 엄청난 규모의 유동자금이라는 것이다. 신도시 토지보상금 1조원, 경기 및 증시부양자금 3조원, 침제 증시의 이탈자금 등 천문학적인 뭉칫돈이 생산현장에 흡수되지 ‘투지 대기성 자본’으로 떠돌다가 부동산쪽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처럼,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그동안 정확한 현실분석과 장기전망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그때그때 현상에 대한 졸속 대응에 그쳐 오히려 부동산 문제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88년의 ‘8ㆍ10부동산투기 억제 종합대책’, 지난해 3월의 ‘양도소득세 강화방침과’ 4월의 ‘분당ㆍ일산 신도시 건설계획’, 지난 2월16일의 ‘전ㆍ월세 안정대책’ 등은 모두 집값ㆍ땅값이 뛸대로 뛴뒤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으로 발표된 것들이다. 또 지난해 아파트가격 폭등의 빌미를 제공한 경제부처간의 분양가 현실화 논쟁, 최근의 전세값 폭등의 한 요인이 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개정 등의 예에서 보듯이, 정부가 정책수행과정에서 파생될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대책이 없이 부동산문제를 다뤄 ‘뿔 고치려다 소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는 비난도 거세게 일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러한 여론을 집약, 3월4일 여의도 광장에서 ‘임대료규제촉구 시민대회’를 열고 임대료인상규제법의 제정과 함께 무주택자들의 주거안정책 마련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 표명을 촉구할 예정이다. 경실련의 張信奎 기획실장은 “최근 주택뿐만 아니라 상가ㆍ공장의 임대료마저 폭등하고 있어 도시서민ㆍ중소상공인등의 생존이 절박한 실정으로 60년대 이래 최대의 체제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불안을 정치지도자들이 직시하고 한시적으로나마 임대료인상규제법을 제정해야만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지난 21일 ‘임대료폭등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을 통해 임대료인상규제법에 임대차등록제 도입, 임대료인상 상한선 설정, 분쟁조정기구 설치, 신규 임대주택에 대한 예외 인정(임대물량의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등의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법이 발효되기까지 소요되는 1년 정도의 기간에는 과도기적 긴급입법을 적용해, 연5%이내의 임대료 인상만을 허용하고 이를 어기는 건물주를 처벌토록 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 대도시의 주택보급률이 50%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 가량의 ‘집 없는 사람들’이 나머지 절반의 ‘집 있는 사람들’중 연 5%이상의 임대료를 올린 대다수 가옥주들을 관청에 신고하여 세무조사ㆍ자금추적ㆍ중과세 등의 처벌을 받게 하는 ‘살벌한 세상’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잘못하면 우리 사회가 ‘집 있는 사람’과 ‘집 없는 사람‘으로 쪼개져 서로 불구대쳔의 원수처럼 적대시하는 극한상황에 이를지도 모른다.


“주택은 소유 아닌 이용의 대상”

 우리 사회에는 왜 이처럼 주택문제가 심각한가. 주택이란 비ㆍ바람ㆍ추위ㆍ더위의 자연적 피해와 도난ㆍ파괴와 같은 사회적 침해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켜주는 공간이고, 동시에 식사ㆍ수면ㆍ배설ㆍ휴식 등의 생리적 욕구와 개개인의 문화생활을 담는 그릇이다. 출산 전의 아이에게는 모태가 곧 우주이듯이 땅 위의 사람에게 주택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또 하나의 胎’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도시인구의 절반이 남의 ‘胎盤’에 끼어사는 무주택자들이다 보니, 마치 ‘자궁외 임신’이 된 태아처럼 불안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주택은 이용의 대상이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는 의식을 넓혀가야 합니다. 세계 어느나라 국민이라도 대형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았다 하면 그 자리에서 억대가 넘은 돈을 버는 이런 판에서 살면 하나같이 부동산투기꾼이 될겁니다. 70년대 이후 부동산이 가장 이윤 높은 투자수단이 되다 보니까 20년 동안 줄곧 폭등ㆍ규제, 폭등ㆍ규제의 악순환을 되풀이 한 것이지요.”

 강남대 부동산학과 金容珉교수는 정부가 물리적 힘을 동원, 부동산시장에 강압적으로 개입할 것이 아니라 먼저 ‘공개시장 조작능력’을 제대로 갖추고 ‘부드럽게’ 개입해야만 그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내다보았다. 일례로 정부는 주택의 양적 공급확대와 질적 개선을 아울러 시행하는 주택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업체 중심의 중ㆍ대형 고급 아파트 건립을 ‘질적 개선’으로 본다면, 서독ㆍ프랑스ㆍ네덜란드ㆍ싱가포르ㆍ영국 등 임대 주택 비율이 전체 주택의 50%선을 넘는 나라들을 모델 삼아 정부가 확고한 의지로 공공임대 주택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측면을 ‘양적 확대’정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월17일 연두순시차 중남도청을 방문한 蘆泰愚대통령이 자신의 캐치프레이즈인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강조한 뒤 “정상적인 직장에서 10년 정도 일한 사람이면 누구나 어렵잖게 살 집을 갖게 될 것”임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청천벽력같은 전세값 폭등으로 허탈감에 빠져 있는 무주택자들의 귀에 그 말이 얼마나 믿음직스럽게 들렸을지 의문스럽다. 주택정책에 관한 한 정부는 국민들에게 더 이상 “믿어달라”는 주문을 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정부는 지금 ‘신기루성 청사진’이나 엄포성 충격요법‘이 아니라 유기적인 장ㆍ단기별 주택정책을 확고하게 세우고 이를 일관성있게 추진해나가야 할 ’데드라인‘에 서있음을 통감해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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