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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시대의 핵 인민군 인맥

빨치산·혁명2세대 업고 군부 장악

편집국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1992.06.04(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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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갈등·경제위기로 '불씨' 잠복
 
지난해 말 金正日이 군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고 최근 다시 '원수'칭호를 받은 것은 후계체제 확립의 열쇠를 쥔 군부에 대한 金正日의 통제강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의 시사월간지 《포사이트》는 최근호에서 이 같은 북한 군부의 동향에 대한 심층분석을 통해 '金正日의 군대'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이를 위헙하는 요인은 무엇인지 낱낱이 파헤쳤다. 다음은 그 기사의 요약이다.〈편집자〉

 金正日 은 과연 군부를 완전히 장악했는가. 인구의 30%가 군 기구에 들어있는 북한에서는 군을 장악하는 일이야말로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이다. 김정일 후계체제 확립에 있어 최대 과제도 군을 장악하는 일이다.

 오늘날 군부의 김정일 지지체제는 끝없는 숙청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며 인민군 내부는 반김정일세력이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김정일이 인민군 장악을 추진해 온 지난20년 동안 반대세력은 거의 근절됐다. 작년12월24일 출판된 《조선노동당사》는 김정일서기로의 후계자 결정이 74년 2월의 당중앙위 제5기 8차총회에서 이뤄졌음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후계자 결정 시기는 73년 9월 당중앙위 제5기 7차 비밀총회로 알려져 왔는데 북한 당국이 처음으로 이 같은 사실을 최고사령관 취임일에 때맞춰발표한 것이다.

 당에서 후계자 지위를 획득한 김정일은 당의 조직 및 선전 · 선동 분야를 시작으로 당내 권력을 강화해왔다 그는 제6차 당대회에서 공식으로 후계자 지명을 받은 후 당의 전분야로 실권을 확대해왔는데 군의 장악이 최후까지 남은 과제였다.

 당시 김정일의 가장 큰적은 김주석의 동생인 金英柱였다. 김영주는 장년의 나이로 당의 핵심인 조직지도부장을 맡아 일부에서는 김주석의 후계자로 간주되기도 했는데 김서기를 후계자로 결정한 74년 2월의 당중앙위 제5기 8차 총회에서 정무원 부수상으로 좌천됐다. 이어 김영주를 지지하는 오태봉 당정치국원후보가 74년 4월에, 유장식 당정치국원후보가 9월에 실각했다. 77년 10월에는 이용무 군총정치국장이 반김정일파로 몰려 해임됐다. 또한 79년에는 김철만 제1부총참모장이 자취를 감줬다.

 이런 식으로 '위험한 반란분자의 싹'은 차차 잘려 나갔지만 잠재적인 반김정일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금후 반김정일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 군부의 세대 구성에 주목할 필요가있다.

 

20년간 군부 내 반대세력 숙청

 북한의 군부는 세대를 기준으로 △항일빨치산 세대 △혁명 2세대 △혁명 3세대로 나뉜다. 빨치산 세대에는 金日成 주석을 필두로 인민무력부장 吳振宇, 총참모장 崔光, 당정치국원후보 金喆万, 사회안전부장 白鶴林, 제2군단장 朱道日 , 인민군 차수 李斗益, 호위총국장 李乙雪 등이 있다.

 혁명 2세대는 주로 광복 후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로서 金正日 비서를 핵심으로 하여 당민방위부장 吳克烈, 부총참모장 金江煥, 前당군사부장 金斗南, 특수전부대사령관 姜昌洙 등 군지도부의 인물들이 있다. 혁명3세대는 북한이 완전한 사회주의 국가로 정착한 뒤 등장한 세대로서 주체사상에 기초한 金부자체제 아래서 교육받았으며 해외유학등을 통해 합리적 사고방식을 체득한 인물이 많다. 특별히 떠오른 인물은 없지만 군의 중견층을 이루고 있다.   70년대 김정일의 군장악작전은 79년 9월만경대혁명학원 1기생 동기인 오극렬이 군충참모장에 취임함으로써 첫 성과를 냈다.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후계자 지위 확립을 선언한80년 당대회에서는 당군사위원 19명(2명이 죽어 현재 17명) 속에 오극렬 김강환 김일철 최상욱 이봉원 등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자들을 포함시키는 데 성공하여 혁명 2세대의 권력충 형성에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 가운데 '김청일 측근 3인조'라 한다면 오극렬 김강환 김두남을 들 수 있다.

 세사람은 소련에 유학하면서부터 군활동을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오극렬이 선두에 서서 김정일체제 확립을 추진한 면도칼형의 군인이라면 김강환 김두남 두사람은 신중하게 정세를 판단하면서 김정일체제 형성에 기여해왔다. 그밖에 김서기 측근으로 군총정치국 조직담당부총국장 李奉遠, 포병사령관 崔相旭, 해군사령관 金鑑喆, 당군사위원 吳龍訪, 공군사령관 趙明錄, 부충참모장李弘願 등이 있다.

 85년 4월의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서는 김정일의 후견인 오진우를 차수로 승진시키고 오극렬 백학림 김두남 이을설 주도일 김봉률 김광진 이두익 등 김부자체제 강화에공헌한 군인들을 대장으로 진급시켰다. 이 시기까지 군을 장악하기 위한 김정일의 기본노선은 오진우극렬 체제로, 후견그룹인 빨치산 세대와 김정일 측근인 혁명 2세대를 결합시켜 반김정일파를 숙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88년 오극렬이 총참모장에서 실각하는 이른바 '88.2 쿠데타 사건'이발생함에 따라 군내부 권력균형 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오극렬 총참모장은 예전부터 '군부의 왕자'와 같은 존재였으며 지금도 김정일체제 확립과 군 세대교체의 핵심 인물이다. 후계체제 확립 과정에서 김정일이 당을, 오극렬이 군을 분담해 장악한 뒤 오극렬이 김정일을 군최고권력자로 추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88년 2월 돌연 총참모장에서 해임당한 것이다.

 북한정부군사대표단의 소련 방문때 환송자 명부에는 오극렬의 후임으로 빨치산 세대인 최광이 올라있어 충격을 주었다. 지금도 분명한 사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북한측 소식통에 따르면 해임의 원인은 오진우와의 불화에 있었다고 한다. 틈만 나면 자신을 무시하는 오극렬을 실각시키기 위해 오진우는 88년 초 오극렬을 약 1개월간 김일성고급당학교에 보내놓고 그 사이에 그의 비위사실을 담은 보고서를 김주석에게 제출하여 '해임 쿠데타'를 성공시켰다는 것이다.

 오극렬은 총참모장 해임 2개월 후인 88년4월 임춘추 부주석의 장례위원회 명단에서서열 32위로 밀려났고 정치국원에서도 해임됐다. 그후 어떻게 됐는지는 전혀 알려지지않았다. 그린데 작년 5월 허담의 장례위원 73명 가운데 43번째에 이름이 올라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현재 오극렬은 당민방위부장을 맡아 민병조직인 노농적위대 등을 통솔하고 있다. 오진우로부터 미움을 사기는 했지만 김정일의 신뢰가 여전히두팀기 패문에 그 정치적 지위틀 유지할 수있는 것이다.

 

빨치산 세대, 아직도 영향력 막강

 오극렬의 실각은 빨치산 세대 부활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빨치산 세대의 핵심은 역시오진우이다. 그는 양친과 함께 간도로 이주하여 유년기를 보낸 뒤 30년대 초부터 김일성과 항일유격대 활동을 했다. 그가 북한에서핵심 지위를 확보하게 된 계기는 60년대 말당내 권력투쟁에서 김일성옹호투쟁을 승리로이끈 공로이다.

 그는 67년 3월 당 제4기 15차 비밀회의에서 김일성이 박금철 김도만 등을 숙청할 때 선봉장으로 나서 군총정치국장 자리를 손에넣었다. 68년말에는 군 내부에 대숙청을 벌여 민족보위상 김창봉 둥을 축출하고 김일성체제 확립에 박차를 가했다. 그 덕분에 총참모장에 올랐다. 76년 인민무력부장이 되어 군최고책임자가 됐다.

 최광은 오진우와 함께 20년대 중반부터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에 참가했고 해방 후에 북한으로 들어왔다. 6.25때는 제 13사단장으로 참전했고 공군사령관을 거쳐 63년 2월45세의 젊은 나이로 총참모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69년에 김창봉 허봉학 등의 반김일성운동을 알고서도 모른 체했다는 이유로 숙청당한 뒤 공식석상에서 완전히 사라겼다. 한정보에 따르면 그는 숙청된 뒤 탄광노동자로 보내졌는데 거기에서 성실한 노동자로서 모범적 생활을 했고 이 소식을 들은 김일성은"역시 최광은 최광이다"라며 그를 황해남도인민위원장으로 재기용했다고 한다. 그 후 6차당대회에서 정치국원후보로 올라셨고 88년에는 실로 19년 만에 총참모장 자리를 되찾았다. 그의 처인 김옥순은 훌륭한 내조로 유명하다.

 김철만은 양친이 남한 출신이며 김일성과는 별도로 만주에서 빨치산투쟁을 했다. 해방후 조선인민군 창설에 참가했고 6.25때 민족보위성 작전참모로 참전했다. 작전분야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78년 '김일성이 창건한 인민군은 백전백승의 혁명적 무장력'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는 등 이론가로서의 명성도 얻고있다. 80년대 들어 거의 동향이 알려지지 않아 실각설이 나돌았지만 90년 5월 정치국원후보로 선출됐고 국방위원직도 맡고 있다.

 李勇武는 김일성유격대 출신으로서 김영주지지세력의 핵심이었다고 한다. 74년에는 군총정치국장에까지 올랐지만 77년 이후 모습을보이지 않아 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88년 중앙위원후보로 다시 등장했다.

 오극렬의 실각과 함께 최광의 총참모장 취임, 김철만의 정치국원후보 복귀, 이용무의 당중앙위원후보 복귀, 군에서 떠나있던 全文燮 국가검열위원장의 인민무력부 부부장 취임 등의 인사가 일제히 이뤄진 것은 군 내부혁명2세대의 일시적 권력 후퇴이며, 김정일서기 후계체제의 동요를 빨치산세대의 권위와 후견에 의해 극복하려는 전략이라고 볼수있다.

 

김정일의 군 경력은 겨우 1개월

 90년 5월에는 공화국국방위가 조직되고 김일성 주석이 위원장으로, 김정일 서기가 제1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김서기는 제1부위원장에 오름으로써 처음으로 군조직에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보다 높은 위치에 서게 됐고 군내부에서도 김일성에 이어 2인자의 자리를 갖게 됐다. 이어 91년 12월24일에 열린당중앙위 제6기 19차 총회에서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에 취임하고 금년 4월20일에는 오진우와 함께 원수 칭호를 받아 마침내 군을 완전장악하게 됐다.    김정일은 사흘 뒤 무려 6백64명의 군장성인사를 단행하여 적체된 군부 세대교체를 대담하게 추진하기 시작했다. 군 내부에는 승진을 포함한 세대교체 요구가 대단히 강하다. 특히 중요한 점은 오극렬 전총참모장의 복권이 언제쯤 이루어질 것인가이다. 오진우가 죽거나 퇴진하면 오극렬이 인민무력부장에 취임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오르기는 했지만 김정일의 군부에서의 지위는 사실 불확실하다. 그의 유일한 군경력은 김일성대학에서 약 1개월간 병역을 이수한 것 뿐이다. 6차 남북총리회담 때 남측대표단의 입북을 취재하기 위해 판문점에 나온〈로동신문〉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조선이나 일본에서는 김정일 비서가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것을 헌법위반으로 보는 모양이지만 이는 우리 사회주의헌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최고사령관 취임은 김주석을 보좌하는 조처이며 김정일 비서는 이미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북측의 설명에 따르면 '전반전 무력'의 지휘통제는 여전히 김주석이 장악하고 있으며 김정일은 전반적 무력 가운데 정규군인 조선인민군의 수위에 섰음을 의미할 뿐이며 결코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을 토대로 향후 반김정일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위협 요인으로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북한 군부가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직업군인과 '당관료군인'사이의 갈등이다. 북한 군은 철저하게 당이 통제 ·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당관료군인이 권력의 중추를 형성하며 순수한 군전문가의 성장이 저해되고 있다고 한다. 순수 군사부문에서의 전문가와 사상성을중시하는 당관료군인의 대립이 군부내 반김정일파 형성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두번째는 혁명 3세대의 동향이다. 이 세대는 김부자체제를 당연시하는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일부 엘리트들은 유학 등을 통해 외부 세계를 접촉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어느정도 합리적 사고방식을 체득한 세력이다. 특히 최근 수년간 유학생들은 소련과 동유럽에서 개혁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에 시한폭탄 같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번째는 경제위기의 심화에 따른 군 내부의 불만고조이다. 작년 신의주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주민폭동은 군인이 주민의 식량을 탈취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동안 비교적 우대를 받아온 군 내부에까지 식량위기가 압박을 가해올 경우 군부의 불만이 커질 것이다. 건설현장이나 농촌에 대한 군인의 노력지원이 점차 많아지고 있고 '군인인지노동자인지 모르겠다'는 불만도 나온다. 복무기간의 30 % 이상을 노동현장에서 보내야 하는 하급 군인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수도 있다. 경제위기가 김정일 서기의 후계체제 결정후부터 심해졌기 때문에 이 불만은 반김정일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이복동생 김평입 지지세력도 잠재 위협

 네번째는 혁명 2세대로의 세대교체가 실패하면 빨치산 세대로의 탈권투쟁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88년 빨치산 세대의 대량부활에서 볼 수 있듯 북한군 내부에서 구세대의 힘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빨치산 세대가 버티고 있음으로 해서 군간부의 인사가 적체되어 있고 이것이 다시 군 하부의 불만을 남는 상황에서 김정일에 대한빨치산 세대의 후견과 김정일 측근세력의 실권장악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문제로 남는다.

 다섯째 김영주를 지지하는 세력은 거의 숙청됐고 김영주 자신도 건강이 좋지 않아 부활의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군의 일부가 김정일의 배다른 형제인 김평일 불가리아대사 등을 내세워 반대세력을 형성할 잠재적가능성도 있다. 김평일 대사는 김일성의 지금부인인 김성애의 아들이다. 풍모는 젊은 시절의 김일성을 그대로 닮았다고 하며 지도자적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88년에 헝가리대사로 임명됐는데 이는 김정일의 박해를 피하도록 김주석이 취한 조처로 보인다.

 북한에서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변혁이 일어난다면 그 주체는 군부와 테크너크랫이 될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제정세에 접촉할 기회도 많고 합리적 사고를 추구하는 이 두 집단의 동향이 북한의 장래를 규정하는 핵심이다. 최근의 움직임을 보면 체제 내부에 기존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려는 보수파와 체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든 개혁이 필요하다는 개혁파 사이에서 정책이 왔다갔다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3월 北-日수교회담을 담당해온 북한의 전인철 대사가 돌연 사망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일부 언론사에는 전인철이 김정일의 권력세습에 반대하다가 암살됐다는 출처불명의 전문이 보내졌다. 전인철은 북한외교부 내부에서는 김정일의 측근 중의 측근이며 그의 생일에는 김정일이 직접 선물을 보낼 정도라고 하니 그 전문의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인철의 사망이 북한 내부 보수파와 개혁파의 어떤 갈등과 관계가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경제정책에서는 테크너크랫 주도 아래 점차 중국식개방정책으로 향해 가고 있는데 군의 동향은 아직 불분명하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테크너크랫 집단과 군 내부 개혁세력이 김정일 지지세력과 기묘하게 겹쳐 있다는 사실이다.

 

김일성, 권력승계 위해 빨치산 세대 회유

 최근 북한을 방문한 중국 거주 조선족의 말에 따르면 국경 근처 부대에서는 무기의 갱신이나 승진인사가 계속되는 등 대우가 크게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또 북한은 마카오에 설립한 상사를 통해 적외선망원경이나 수중카메라와 같은 對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가 금하는 군사용 장비의 수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군 내부의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를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라하겠다. 그러나 경제상황이 본격적으로 호전되지 않는 한 군에 대한 회유책에는 한계가 있다. 89년의 평양축전이 경제악화를 가속시켰듯이 군에 대한 과도한 회유책은 경제위기를 심화시켜 비군사부문과의 알력을 초래할 수도 있다.

 金日成 주석은 3월13일 빨치산 출신 혁명원로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들의 공적을 칭송하고 북한식 사회주의 건설에 계속헌신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회식에 참가한 빨치산 세대가 누구였는가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모임이 김정일 승계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김주석이 이 같은 모임을 주선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써 여전히 빨치산 세대를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군부의 세대갈등을 이면에 깔고 있다. 경제 악화와 국제적 고립, 그리고 군에 대한 불완전한 통제 등을 함께 고려해 보면 김정일의 주석 취임 등 권력승계는 금년중 이뤄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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