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콘서트무대가 좋다”
  • 이성남 기자 ()
  • 승인 1990.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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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운동ㆍ독자적 음악세계 지향, TV출연기피 가수 늘어

가요계에 라이브 콘서트가 유행하고 있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주로 TV 등의 전파매체에 의존하지 않는 몇몇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대중과 직접 만나는 통로로 라이브 콘서트를 선호했으나 요즘은 TV출연 가수들도 자주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오늘의 콘서트 문화는 7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김민기, 양희은, 서유석, 양벙집, 한대수, 이주원 등이 뿌려놓은 통기타 문화와 맥이 닿아 있다. 삶에 대한 보다 진솔한 인식을 토대로 자기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했던 이들 가운데는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가 많다.

TV출연 가수들이 대체로 사랑, 이별을 주제로 삼아 요란한 몸짓이나 다이내믹한 율동을 곁들이는 비디오적인 요소에 치중하는데 반해 이 계열의 가수들은 대부분 순수한 가창력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브라운관’이라는 칸막이가 없는 콘서트에서는 노래실겨이 청중앞에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이다.

“대중의 인기보다는 노래 그 자체가 좋아서”무대에 서는 이 가수들은 그러나 TV 쇼 무대에서는 자주 만날 수가 없다.

콘서트 무대를 고집해온 몇몇 가수들은 TV에 출연할 경우, 초청가수가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현실에 대해 심한 굴욕감을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최근 방송가에 몰아친 가요담당 PD의 구속선풍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PD들이 금품 또는 향응을 제공하는 가수를 위주로 출연시키거나 노래를 방송해주었으며 또한 가수가 신곡을 취입하여 레코드를 소개할 때도 담당 PD에게 금품을 건네주어야만 수월하게 방송될 수 있었던 방송계 풍토가 이번 사건에서 밝혀진 것이다.

70년대 김민기, 80년대 정태춘 등이 대표적

이같은 현상은 인기를 쫓아 ‘춤출 수밖에 없는’ 대중가수나 노래산업 종사자가 그동안 TV나 라디오 등 전파매체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데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전파를 자주 타지 않고는 빠른 시일만에 인기를 얻을 수 없는 가요계에서 여론형성의 열쇠를 쥐고 있는 PD의 압력을 가수들이 모르는 채 묵살하기란 어려울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더욱이 그 인기를 근거로 가수들의 절대적인 수입원이 되고 있는 밤무대 출연의 길이 열리고 각종 방송가요 인기순위에 따라 야간업소 출연료가 결정되는 점을 감안해볼 때 PD와 대중가수간의 ‘검은 관계’는 쉽게 설명될 수 있겠다.

방송가의 이같은 저질 상업주의적인 메커니즘을 거부하고 순수하게 ‘노래로만’ 청중을 만나고자 하는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이당에 정착시킨 이로는 김민기를 먼저 꼽을 수 있겠다. “얼굴은 안 팔렸지만 어느 인기가수보다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그는 가수로서보다는 ‘70년대식’ 사회의식이 반영된 노래를 창작하는 일에 앞장서왔다. ‘아침이슬’ ‘친구’ 등 주로 양희은이 불렀던 그의 노래들은 70년대에 적어도 대학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는 최고의 히트를 기록했으나 일반에게까지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창남씨는 그 원인으로 “그의 노래가 라디오와 TV 등의 대중매체로부터 소외되어왔던 점과 그의 음악언어가 다분히 지식인 취향이었음”을 지적한다.

김민기가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언어로 70년대에 공감을 얻었다면 80년대에 등장한 한돌, 정태춘, 안치환,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등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참된 세상을 위한 노래운동’을 전개해왔다고 하겠다.

‘터’와 ‘개똥벌레’ ‘가지꽃’ ‘못생긴 얼굴’ 등을 창작한 한돌은 스스로 개똥벌레의 존재가 되어 어둠을 밝히고 새벽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70년대 말에 가요계에 데뷔하여 ‘서해에서’ ‘시인의 마을’로 잘 알려진 가수 정태춘의 경우, “TV문화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거대한 대중가요의 메커니즘으로부터 빠져나온 본보기로 꼽을 수 있다. 그는 85년 1월에 부인 박은옥과 함께 16개 지방도시를 순회하며 ‘얘기노래마당’을 개최함으로써 젊은이들과 직접 대화를 시도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다시 전교조 지원 노래극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전국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또한 음반과 공연을 통해 대학가에서만 불려지던 운동가요를 일반대중에게까지 확산시키는데 성공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활동도 80년대를 대표하는 노래운동으로 짚을 수 있다.

이같이 사회변혁의 수단으로 노래를 ‘사용하는’ 가수들의 경우, TV쪽에서도 이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지 않았지만 대중의 인기를 염두에 두지 않은 그들 스스로도 TV출연을 기피하는 경향이 짙다.

한편, 이들과는 달리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콘서트를 개최하는 가수들이 몇 년 사이에 눈에 띄게 증가했다.

TV출연을 안하는 오디오 가수로 정평이 나 있는 이문세는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별이 빛나는 밤에’를 통해 확보된 일정 팬들을 대상으로 콘서트를 꾸준히 개최하여 뚜렷한 자기영역을 구축한 가수로 손꼽힌다. 또한 ‘산울림’의 김창완, 조동진, 이광조, 이원재,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들국화’의 전인권과 최성원, 해바라기, 한영애, 김수철, 김현식, 강은철, 변진섭, 이정석, 김종찬 등도 저마다 자신의 독특한 노래세계를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콘서트 무대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 1월 중순에는 댄스뮤직이 주특기인 대표적인 TV출연 가수 박남정이 돌연 TV중단 선언을 하여 눈길을 끌었다. ‘널 그리며’ ‘안녕 내사랑’을 독특한 ‘기역 니은’ 춤을 곁들여 불러 댄스뮤직 바람을 불러일으킨 박남정은 “시간을 갖고 좋은 노래를 만들어 일반 콘서트를 통해 팬들과 직접 대면하는 기회를 많이 가지기 위함”이라고 TV출연중단 이유를 밝혔다. “일단 TV에 안나오면 팬들에게 금세 잊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픙로의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서 이같은 결심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전파매체의 편협성에도 문제

최근 2~3년 사이에 부쩍 유행하고 있는 라이브 콘서트 붐은 일단 우리 가요계에 그만큼 독특한 노래세계를 지향하는 가수가 많아졌음을 입증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전파매체의 편협성이 이른바 ‘오디오형 가수’와 ‘비디오형 가수’의 양분을 부채질했음을 간과할 수는 없겠다. ‘한사람’ ‘네 꿈을 펼쳐라’ ‘내님의 사랑은’을 작곡한 이주원은 라디오에서도 가요를 전문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없고 가요를 ‘사용하는’ 프로그램뿐이라고 지적하고 이런 현실에서 자신의 노래세계를 진지하게 여기는 가수라면 콘서트를 통해 청중을 직접 만나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전인권, 강인원, 나덕민과 함께 ‘따로 또 같이’라는 그룹을 조직, 84년 3월부터 88년, 마지막 무대를 갖기까지 총2백30회의 공연을 통해 80년대 콘서트 문화를 정착시킨 이주원은 “가수의 호흡소리와 관객의 가슴떨림이 고스란히 교감되는 짜릿한 생동감”을 라이브 콘서트의 장점으로 꼽는다.

이처럼 콘서트 문화가 갖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들은 가요담당 PD의 자성을 축구한 이번 조치를 계기로 앞으로는 안방의 TV을 통해 진지하게 삶을 노래하는,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들을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을 표방하는 TV매체의 속성이 특정한 음악세계를 고집하고 있는 가수들의 수용을 기피했으며, 또 자신의 노래세계를 다치고 싶어하지 않는 일련의 가수들도 TV에서 요구하는 ‘노래 외적인’ 요소들을 꺼려왔다는 점에서 볼 때 오늘의 TV가요문화에 대한 책임을 일선 PD에게만 돌리기는 어렵다. 특히 70~80년대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정치적 흐름이 이같은 상황을 부추겨왔음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땅에 노래문화를 보급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가요담당 PD들 또한 변해가는 노래세상에 문을 활짝 열어놓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스스로 굴종해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렵겠다.

콘서트 가수, 그중에서도 언더그라운드를 표방하는 가수들이 반성해야 할 점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매스컴의 부정적 영향을 우려한 이들 사이에 매스컴을 무조건 기피하는 심리가 팽배해 있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효율적인 문화운동을 창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콘서트 문화가 마치 특정가수와 그의 노래에 심취한 몇몇 집단의 증후군처럼 형성된 책임은 가수들에게도 있다는 말이다.

MBC-TV 교양제작부 주철환 PD는 “이들이 방송을 거부만 할 것이 아니라 방송매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암의 특효약을 개발한 이가 그 약을 가족에게만 복용시킬 것이 아니라 암에 걸려 있는 모든 환자들에게 혜택을 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콘서트 가수들이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들’앞에서만 목청을 높일 게 아니라 보다 넓은 무대로, 더 많은 대중앞으로 성큼 나서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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