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반쪽 역사'서로 꿰자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4.01.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엔 조선, 남한엔 고려·고구려 유물 없이…문화재 교류해야

북한은 최근 평양시 역포구역 무진리에 있는 동명왕릉과 그 묘역 시설, 사원을 완전히 복구해 일반에 공개했다. 고구려 시조왕 주몽의 무덤으로 알려진 동명왕릉 옆에는 북한의 국화 모란을 새긴 비석이 서 있다. 문화재 복원 사업은 광복 이후 한국에 비해 훨씬 빠르고 강동 높게 추진해온 북한 문화재 정책의 일환이다. 이번 동명왕릉 복구 작업도 김일성 부자가 직접 지휘했다고 한다.

 그런 북한이 얼마전 한국의 고고학자들을 두 번이나 크게 놀라게 했다. 첫째는 지난 10월 북한이 평양 강동군에서 단군릉을 발굴해 무덤에서 5천년 된 단군 부부의 유골을 출토했다고 발표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북한이 국보급 동산 문화재를 국외로 빼돌려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외신이다. 북경발로 나온 이 외신은 북경에 사는 조선족 교포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북경의 북한식당 금강원 창공에 고대 도지기와 고서화 5백여 점이 판매 대기중이며, 이미 해외로 나간 수량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문화재 반출범이 적발될 경우 사형에 처하겠다는 엄명을 내림으로써 소문을 진압한 셈인데, 이 사건을 보는 우리 문화재 전문가들의 표정은 매우 착잡하다.

 安輝濬 교수(서울대 박물관장·고미술사)는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이문화재를 해외로 내다 팔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파악한다. 특히 최근 우리 문화재의 국제 시세가 급등해 중국 문화재와 큰 차이가 없게 되었다는 점도 그와 같은 유혹을 부채질하는 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문화재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북한 문화재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염려한다. 안교수는 "북한 문화재를 파악하고 관리 실태를 아는 게 급선무"임을 거듭 강조한다.

우리의 '문화재 정책 수준'은 북한의 절반
 북한의 국보 1호는 무엇일까. 몇몇 전문가를 제외하고 이에 대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현재 북한의 지정문화재 중 국보급은 제1호인 대동문 등 50건, 보물급 53건, 사적 73건, 명승지 17건, 천연기념물 4백49건이다. 한국에 비해 숫적으로 훨씬 적은편인데, 우리가 유물 하나하나를 다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과 달리 북한은 유적지 전체를 한건으로 지정하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북한에서 발굴된 선사·역사 유적은 모두 3백건 남짓 된다. 이 중에서 평안남도 덕천구 석기 유적과 평양시 승호구역 만달리에서 나온 유적은 한반도의 선사시대편년을 바꿔놓을 만큼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문화 유산 중 가장 기중한 것은 역시 고구려와 고려 유적이다. 북한 학자들에 따르면 광복 이후 발굴한 고구려 고분 유적은 약 70건이나 된다. 특히 대동강 일대로 엄청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81년부터 이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고분을 발굴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문화재 정책은 과연 어떤 수준이며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허영환교수(성신여대·미술사)는 "우리 정부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관리 능력 및 성과는 일본의 10분의 1, 프랑스의 백분의 1, 북한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의 수준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북한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선전하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전통문화 유산에 대한 애정은 '과민할 정도'라는 것이다.

 지난 86년 〈남북한 문화재 정책 비교〉를 발표한 문화체육부 정재훈 생활문화국장은 "봉건사회를 지탱시킨 유교·불교 사상을 배격하고 허무주의적인 유산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는 북한은 한국의 문화재 관리 정책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시대편년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자주 지적한다. 이호관 전주국립박물관장은 최근의 단군 왕릉 발굴 발표가 민족 자주성을 강조하기 위해 시대편년을 무리하게 높인 본보기라고 전제하면서 "일제의 영향을 받아 종래대로 낮게 가려는 한국의 경향과 대조를 보인다"고 관찰하고 있다. 고구려 고분 양식임이 분명한 무덤을 5천년전 단군의 무덤이라고 주장하거나 고조선이 중심을 평양으로 몰고가는 점, 삼국통일을 이룬 나라는 신라가 아니라 고려라는 주장도 한국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문화재 보호 사전 협약도 필요하다"
 그러나 학자들은 북한이 유물·유적 도감들을 편찬할 때 통일된 도록을 내려는 노력은 우리가 배울 만한 점이라고 지적한다.
 반쪽짜리 문화 유산은 학계에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으며 또한 풀기 어려운 숙제로 미루어 놓게 한다. 고고학적으로 보면 우리 문화는 북쪽을 통과하여 남쪽으로 유입 전파되고 있으나 전초기지 격인 북한 문화재에 대한 실증 연구가 불가능함으로써 '상반신 마비 증상'마저 나타나고 있는 상태이다.

 북한이 조선 시대의 문화재를 갖고 있지 못하듯이 우리는 고구려·발해 유물이 거의 없으니 반쪽짜리 연구밖에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청자냐 백자냐 하는 해묵은 논란거리의 주역이 되고 있는 순화연명의 청자항아리(이화여대 박물관 소장) 같은 경우 북한에서 발견되었다는, 같은 연호의 청자를 확인할 수 있다면 쉽게 결론지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간 본격 교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부 당국이 북한측과 문화재·고고학 같은 비정치 학술 분야의 교류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과, 통일이 되었을 경우나 유사시에 대비해 문화재 보호에 관한 양측의 사전 협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도 높게 제기되고 있다.
 남북한 문화재를 합해도 그 수에 있어서는 중국·일본보다 훨씬 적은 것이 사실이며, 반쪽짜리 문화재로서는 해결되지 않는 연구 과제가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