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뿌리 내리는 북한학 연구
  • 한종호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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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3분의 1, 군·안기부·통일원 직원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는 ‘통일이 되면 북한을 공부한 사람들 모두 실업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떠돈다.
 아마도 월남이 망한 뒤 월남에 대한 논문들이 하루아침에 휴지더미가 되어버렸고, 소련이 무너지자 냉전시대에 빛을 보았던 소련 정치·경제 전문가들이 한숨을 쉬어야 했던 기억을 떠올려서일 것이다. 요즘 대만에 유학 간 사람들은 중국이 통일이 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우스개는 역시 우스개에서 그치는 모양이다. 80년대말 제도권 안팎에 불어닥친 북한 바람을 타고 대학가에 북한학과 개설 움직임이 일더니 그 사이 서강대·경남대·숭실대 세곳에 북한학과(석사 과정)가 생겨 졸업생을 배출했다. 금년에는 마침내 동국대 학부 과정에 북한학과가 생겨 신입생을 뽑았다. 이런 기세라면 멀지 않아 전국 주요 대학에 북한학과가 생길 것 같다.

 맨 처음 문을 연 곳은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학과이다. 90년 3월 처음 학생을 뽑기 시작해 이미 석사 20명을 배출했다. 북한학과 과장 姜正仁교수(41)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통일을 구체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북한학과는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그 뒤를 이어 91년 9월 경남대 행정대학원에 북한학과가 신설되어 지난 학기 처음으로 석사 논문 4편이 상재됐다. 경남대 북한학과는 다른 곳과는 달리 강의를 토요일 오후에만 실시한다. 마산에 있는 본교와 서울 삼청동에 있는 경남대 극동문제 연구소로 나누어 강의를 진행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현재 재학생은 46명이다.

 숭실대는 92년 3월에 아예 별도의 대학원을 신설했다. 통일정책대학원 안에 통일정책학과·경제정책학과·사회복지정책학과·교육문화정책학과를 두어 학기마다 10명 정도의 학생을 뽑고 있다. 숭실대는 1897년 평양에서 개교한 학교라는 남다른 인연으로 재단 차원에서 북한학 연구에 상당한 지원을 쏟고 있다. 金光洙 통일정책대학원장은 “전국 대학에 통일 관련 부설연구소가 1백여개에 달하지만 대부분 유명무실하다.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봄학기부터는 6개월짜리 ‘통일 정책 고위지도자 과정’을 운영하며 학부에 북한학과 설치도 추진하고 있다. 동국대학은 올해 처음으로 야간 대학 학부 과정에 북한학과를 개설하여 신입생 40명을 선발했다. 그러나 아직 전임 교수조차 정하지 못해 어떻게 운영할지 불투명한 상태이다.

 북한학과가 어떤 곳인지는,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서 가르치고 배우는지를 보면 대략 알 수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북한 관련 실무에 종사하고 있거나 업무상 북한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현재 하고 있는 일도 교사 언론인 회사원 공무원 성직자 등 다양하다. 단일 집단으로는 현직 군 간부의 수가 가장 많고 그 뒤를 안기부·통일원 등 북한 관련 정부 부처 직원들이 잇는다.

학생 대부분 북한 관련 실무자
 한 교직원은 “학생의 3분의 1은 군·안기부·통일원 직원, 3분의 1은 교사·언론인 등 기타 업무 종사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면된다”라고 말했다. 공직자의 경우 정부에서 학비 일부를 보조해 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다.

 경남대의 경우 공보처장관을 지낸 孫柱煥씨(국제교류재단 이사장)가 ‘모범 학생’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재학중이고, 북한에서 망명한 전 대양무역회사 사장 金正敏씨도 북한을 ‘배우러’ 매주 토요일 강의실을 찾는다. <조선일보> 북한부장 도준호씨는 숭실대에서, 오혜정 (천주교 북한선교위원회 사무국 수녀) 진원영(주한 일본대사관 정치부) 씨는 서강대에서 각각 북한을 공부하고 있다. 이태원씨(대한항공 부사장)는 서강대에서 ‘남북한 항공교통망’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서강대에서는 또 일본인 사사키 마코토(佐佐大眞·시사통신 서울특파원) 고하리 스스무(小針進·일본국제관광진흥회) 그리고 이름을 밝히길 꺼리는 미국인 등 외국인 3명이 재학중이다.

 교수진 구성 역시 유별나다. 기존의 교수 요원 가운데 북한학을 전공한 사람이 없다보니 정치학과나 경제학과 교수들 외에도 유관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강의를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 인력 확보에 애먹어
 대학 밖의 인사로는 李洪九 전 통일원장관, 梁好民 《한국논단》 대표, 李東馥 전 안기부장 특보, 金昌順 북한연구소 이사장, 康仁德 극동문제연구소장, 李 浩 통일원 국장, 金南植 평화연구원 연구위원, 吳寬治 국방연구원 부원장 그리고 민족통일연구원의 徐載鎭 연구위원과 許文寧 책임연구원 등이 강의를 맡았거나 맡고 있다.
 이처럼 특별한 강사와 특별한 학생들이 만나서 진행하는 수업인지라 흥미로운 얘깃거리도 많다. 북한경제 강의 시간에 교수가 제시한 통계를 관련 부처에 근무하는 학생이 최신 통계를 제시하며 반박하기도 한다. 학생이 자기가 새로 입수한 북한 관련 자료를 복사해다 동료에게 나눠주는 광경도 자주 볼 수 있다. 또 훈령조작 사건으로 사회가 시끌시끌할 때는 통일원과 안기부에 근무하는 학생들이 통일정책 주도권 문제를 놓고 강의실에서 허심탄회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예정된 강의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대학의 한 관계자는 “적당히 학위나 따려고 대학원에 다니는 것 아니냐는 냉소적 시각이 있다. 이들의 진지한 수강 태도를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한학과를 운영하는 학교측이 가장 애를 먹는 문제는 역시 교수 요원을 확보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서강대 북한학과 강정인 교수는 “적임자라고 생각해서 교섭을 하면, 2~3회의 특강이라면 몰라도 한학기 동안 끌고갈 만큼의 내용이 없다면 사양하기 일쑤이다”라고 말했다. 한때 북한에 대해 공부했다는 사람들도 북한에 대한 일방적 비방이나 체제홍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해, 초빙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학생들은 다소 부실한 교육과정과 턱없이 높은 등록금을 가장 큰 문제로 지목했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북한학과는 모두 야간 과정이다. 학생과 교수가 만나는 시간은 1주일에 3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강의가 피상적인 담화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또 1백50만원 안팎인 등록금도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적지 않은 액수이다. 이 때문에 대학이 특수 대학원을 운영해 잇속만을 챙기려 한다는 비난도 있다.

 북한 전문가들이 느끼는 문제는 현재의 북한학과 체제로는 북한학 자체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북한정치를 가르치는 한 교수는 “북한학의 범주를 지금의 북한 정치·경제나 통일에만 국한하면 학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통일 이후를 대비하여 사회·문화·인류학적 연구로 관심을 확대해 가는 것이 북한학의 과제이다”라고 말했다.
 韓宗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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