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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는 ‘치외 안전’인가

불완전 연소에 집단 발병… 두통·환각 등 부엌에 위험 도사려

정희상 기자 ㅣ 승인 1992.07.30(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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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 북구 주례동에 자리한 부산 보훈병원의 한 병실에는 이 병원 지하식당에서 근무하는 박점녀씨(36)가 누워 있다. 심한 두통과 구토, 기억력 감퇴 및 환각 증상에 시달리고 있는 박씨는 자신이 몸져누운 사연을 이렇게 말했다.

 “지난 5월15일 식당일을 마치고 갑자기 열두명의 식당 아줌마들이 두통과 구토를 호소했다. 이튿날부터 몸에 땀띠 같은 반점이 생기더니 눈이 충혈되기 시작했다. 환기가 잘 안돼 식당 안은 온통 희뿌연 상태였고 썩는 듯한 냄새(NPG)가 진동했다. 병원에서는 진찰을 해보더니 모두 알레르기니까 사흘 정도만 지나면 괜찮을 거라 했다. 그러나 열두명 모두 증세가 심해져 입원치료한 뒤 병가를 냈다. 위독한 네명은 입원치료를 계속하다가 병원측이 퇴원을 강요하자 셋은 집에 가서 누워 있고 현재 나만 병실에 남았다.”

 그날 이후 증세가 악화돼 요실금증으로 기저귀를 찬 채 생활해야 하는 박씨는 초기에 병원에서 단순한 ‘알레르기’라며 진통제만 놔주고 계속 쉬쉬하는 바람에 이 지경가지 이르렀다고 분통해 했다. 식당 근로자 중 김미자씨(42)는 최근까지 산소호흡기로 지탱해야 할 만큼  위독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병원측, 현장 말끔히 정돈하고 역학조사

 집단 중독증세로 쓰러진 12명의 보훈병원 식당 종업원은 병원측의 소극적 태도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직업병 상담소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얻어낸 결론은 LPG 불연소 가스로 인한 집단중독이었다.

 사건 직후 환자들은 진찰해 LPG 중독 소견을 발표한 신인식 박사(울산 현대정공 부속의원장)는 당시 사정을 이렇게 밝혔다.

 “환기가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LPG 불완전 연소가스에 집단중독된 증상이 공통으로 나타났다. 두통, 구토, 환각상태, 기억력 감퇴, 치아노제 등은 급성 LPG 중독증상이다. 피부에 생긴 반점도 LPG 불완전연소로 인해 발생한 일산화탄소 반점이었다. 눈의 충혈과 안구 동통은 식당 배기구에 남아 있었다는 유리섬유에 노출된 결과로 추정됐다.”

 한펴 자기 병원 산하 식당 근로자들의 집단 발병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보훈병원측은 LPG 전문의의 소견 등으로 지역 여론이 어수선해지자 환기를 시키는 등 지하식당을 말끔히 정돈한 후 부산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산업의학연구소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6월 1일~2일에 걸쳐 실시된 이 조사 결과는 ‘LPG 불완전연소로 인한 군집독 및 유리섬유’로 나왔다. 이 역시 LPG 중독으로 받아들여지자 산업안전공단 부산 지도원과 부산북부지방노동사무소는 부산대, 동아대, 인제대 등 부산지역 의대들을 팀으로 끌어들여 합동역학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반은 사건 발생 후 두달 가까이 지난 7월6일~8일에 걸쳐 보훈병원 지하 1층 식당을 대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는 ‘유리섬유, 자외선 피폭 및 불완전 연소가스로 인한 군집독’으로 나왔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LPG 전문의 신인식 박사와 환자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건 현장을 전혀 재현하지 않고 말끔히 정돈된 식당에서 실시한 역학조사는 신뢰성을 갖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합동역학조사 결과 중이 하나인 자외선 피폭은 논리적 모순이 있다는 점이 입증됐다. 사건 당시 병원시설 관계자와 식당 근로자들은 자외선 살균기의 설치 및 가동 시기가 사건 발생 후인 6월22일 경이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정부측이 개입한 합동역학조사 결과 LPG 불완전연소로 인한 중독이 ‘슬그머니’ 부차적 발병 원인으로 둔갑한 것이다. 두 차례 역학조사에 참여했던 동아대 의대 김동일 교수는 합동조사 과정에서 겪은 나름의 고충을 이렇게 말하며 여운을 남겼다.

 “학계에서 LPG 중독에 대한 개념이 약간씩 다르다. LPG 전문의인 신인식 박사는 LPG가 원인기 되는 가스 중독은 모두 LPG 중독으로 보지만 일부 의사들은 LPG 원액 흡입을 중독으로 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에서 LPG 불완전연소 가스가 집단중독의 원인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어 “LPG 누출과 불완전 연소에 문제가 있다고 현재 사용중인 전국의 가스버너를 전부 교체해야 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하고 반문해 미묘한 뒷맛을 남겼다.

 어쨌든 파문이 확산되자 정부기관에서 서둘러 개입한 이번 조사결과는 집단 발병 원인의 순서를 뒤바뀌기는 했지만 LPG가 인체에 끼치는 유해성을 숨기지는 못했다.

 

대법원, LPG중독증을 직업병으로
 지난 5울27일 대법원이 직업병으로 확정판결한 LPG불연속가스 중독은 그동안 택시기사들을 중심으로 논란이 되어 왔다.(《시사저널》제132호 ‘환각상태로 택시가 달린다’ 참조). 그러나 LPG가 폭발 위험 외에는 별다른 안전지침이 없이 생활 속에 자리잡은 현실에 대해 예방의학자들의 우려는 적지 않다.

 부산보훈병원 식당 근로자들의 집단발병은 취사용 LPG도 인체에 해를 끼침을 증명하면서 파문이 커졌다. 그러나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식당근로자들의 LPG중독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올해초 울산의 한 공장 식당 직원 3명이 이번 부사보훈병원 식당 근로자들과 똑같은 증상으로 쓰러진 일이 있었다.

 울산에서 현대자동차에 철판을 납품하는 대덕사(사장 권형근)의 식당에서 일하던 김옥희 심정자 정백수 씨 3명은 지난해 10월부터 심한 구토 두통 환각에 시달렸다. 증세가 악화되자 회사측은 지난해 12월10일 재단법인 한국의학연구소에 이들의 진료를 의뢰했다. 진찰 결과는 ‘LPG불연소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증’으로 나왔다. 당시 대덕사 주방은 5평 정도의 비좁은 공간에 환기시설도 없이 대형 LPG버너 6대를 설치해 1백50명분의 식사를 대고 있었다.

 김씨 등이 진단결과를 토대로 주방환경 개선과 요양을 끈질기게 요구하자 이 회사 관리자는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해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3월2일 다짜고짜로 이들을 해고시켜버렸다. 김옥희씨는 아직 해고수당과 퇴직금은 물론 해고통지서조차 받아보지 못한 채 두통 탈모증상 등 LPG중독 후유증에 시달리며 노동부에 구제신청을 한 상태이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부 울산지방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직업병 판정과 해고무효건이 지연되고 있음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김씨를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LPG 사용이 보편화된 오늘날 취사용 연료가 폭발위험 외에 인체에도 직접 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대법원에서 LPG중독을 직업병으로 확정한 만큼 정부는 국민에게 그에 관한 안전대책을 강구함은 물론 식당의 근로환경에 관한 감독을 서둘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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