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독 재산으로 얼룩진 빚잔치
  • 프랑크푸르트·허광(자유 기고가) ()
  • 승인 1994.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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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관리청, 국영기업 마구 팔아 잇속 챙겨'금세기 최대 흑막‘…연방의회 심판대에



 자칭 ‘세계 10대 공업국’에 속했던 옛 동독의 국유산업 경제는 통일한 지 3년 만에 ‘독일의 시칠리아’ ‘유럽의 온두라스’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들을 만큼 곤두박질쳤다. 이 국유산업을 무자비하게 해체한 신탁관리청(THA)이 이제 독일연방의회의 심판대에 올라 불안한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동·서독의 공식 통일을 앞둔 90년 3월, ‘국유재산의 관리와 재구성’이라는 임무를 띠고 옛 동독의 모드로 정부에서 출범한 신탁관리청은, 통일 이후 법적으로는 독일연방이 직접 관할하는 공공법인으로 변신했다. 이 기관은 법적인 근거를 90년 6월 동독 인민의회에서 통과된 후 ‘독일통일조약’에 그대로 이월된 ‘신탁관리법’에 두고 있다. ‘사회적 시장경제에 부응하도록 활용하고 사유화할 것’을 규정한 신탁관리법에 따라 신탁관리청의 처분 대상이 된 옛 동독의 국유자산은 9천여 기업과 4만여 공장, 전체 토지면적의 57%에 해당하는 농경지와 산림 그리고 외진 시골의 약국·서점·극장까지 망라하는 천문학적규모였다.

 일순간에 6백만 동독 노동자의 운명을 손아귀에 쥐게 된 ‘세계 최대 규모의 국영기업’인 신탁관리청의 그 후 행적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첫 계기는 91년 4월1일 초대대표 로붸더가 독일 적군파에게 암살당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 신탁관리청의 전횡에 격분을 참지 못하던 동독 노동자들의 결집에 찬물을 끼얹은 촌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연방의회가 신탁관리청을 조사할 위원회를 구성하고 제1차 청문회에 들어선 때는 93년 9월이었다. 신탁관리청이 집행하는 예산이 의회에 사후통보만 하는 일종의 특별예산으로 분류되어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있던 터에 의회의 뒤늦은 조사활동은 각별한의미를 띠고 있다.
 신탁관리청이 그동안 해온 행적에 대해 처분 대상의 자산평가, 자산매입자 선정과 매각 과정의 적법성·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의문이 증폭되고 있는 만큼, 의회의 조사 결과는 올해 있을 선거의 승패를 가름하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집권 여당과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을 카드를 움켜쥐고 있는 조사위원회 오토 실리 의장(사회민주당)은 선거전에 뛰어드는 때에 맞추어 조사결과를 공개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고, 사회주의통일당(SED)의 후신인 민주사회당(PDS)의 전 당수 그레고어 기지는 금세기 최대의 흑막을 파헤칠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겠ㄷ고 공언하고 있다.

 여론에 공개된 대표적 사례는, 동독의 대표적인 전자산업 집결지였던 베를린 근교 델토우의 조절기기업체(GRW) 매각이다. 이 업체의 기술은 서유럽 기준으로 86년 수준에 달했고 판로문제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당시 자산평가액은 1억3천만마르크였다. 그런데 여기에 당시 경쟁 업체를 제거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뮌헨의 한 업체가 손을 뻗쳐 결국 1마르크에 사들였다.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이 주간지 《슈피겔》(91년 10월2일자)에 폭로되자, 신탁관리청은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문제의 자산평가에 관해서는 끝내 해명을 회피하고 변명으로 둘러대기에 바빴다.

1억짜리 기업 1마르크에 매각
 당시 《슈피겔》도 밝히지 못한 더 깊은 내막은 다음과 같다. 매각된 조절기기업체는 세 분야로 구출되어 있었다. 공장설비 자동화를 담당하는 설계사무소와 생산공정을 맡고 있는 공작창 그리고 조립장으로서 전체 자산평가액은 거래자 명부와 당시의 계약실적을 포함한 시장가치로 7억5천만마르크출 웃도는 규모였다. 이 중 설계사무소를 사들인 업체가 바로 독일의 대표적인 독점 재벌인 지맨스로, 매입 가격은 6천6백만마르크였다는 설만 나돌았다. 이렇게 해서 한 기업이 분해되어 엔진 없는 자동차나 다름없게 되어 버렸다. 이 기업의 생산·조립 시설에 관심을 가졌던 또 다른 업자들이 설계와 거래처를 돌아본 후 흥미를 잃었을 것은 뻔한 이치였다. 이런 사실이 미처 알려지기 전에 여론의 표적이 된 것은 단지 조절기기업체의 토지평가액이 시가 이하였다는 것이었는데, 지멘스쪽의 대답인즉 모두가 고철투성이인 조절기기업체를 뜯어고치고 새 일자리를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1마르크도 아깝다는 식이었다.

 당시 한 일간 신문의 토막 기사는 다음과같이 전하고 있다. ‘기업체 매각과정에서 지속되고 있는 비리와 관련해 신탁관리청은 내부의 부정한 결탁, 음모에 대항하는 강력한조처를 마련했다. 내부 정화를 담당하는 부서는 주말에도 가동하게 된다.’

 지난해 12월2일에 있었던 의회조사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증언석에 선 사람이 바로 이부서의 국장이었다. 그의 답변인즉 신탁관리청 내부의 음모·결탁 관계에 연루된 자들의 명단은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상세한 정보를 담은 문건을 자기가 작성해서 위로 넘겼는데 그후 이 문건이 내부 비밀문서로 분류되었다는 것이다. 신탁관리청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측 대표는 증언 중에 몇번이나 발언대로 뛰어나와 내부 정화를 맡은 부서의 담당자가 이런 문제로 심문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나서기도 했다.

 물론 신탁관리청의 비리와 관련해서 법적판결을 받은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이들은 피라미에 불과하고 억대를 해먹은 주범들은 무사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신탁관리청의 인물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나서는 자기가 팔아넘긴 바로 그 업체의 대표이사로 버젓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자기가 관여한 매각 협상에 상대역으로 다시 등장해 신탁관리청측에 추가 지불을 요구하고, 그 대금 지불은 우편요금으로 처리해서 이거래의 완전범죄를 꾸민다는 것도 알려진 비밀이 되고 있다.

경제 범죄 협의 1천3백55건
 또 하나의 사례인 프렘니츠 섬유주식회사는 스위스 회사에 팔렸는데, 이 회사가 유령회사로 드러나는 바람에 이 매각은 무효가 되고 다시 모스크바의 어느 사업가가 등장하였다. 그런데 다시 드러난 사실은 어떤 매각서류에도 서명이 없다는 것이었고, 이 섬유회사는 그사이 가동 중지됐다.

 이제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매각 사례를 모두 모아보면 독일 중소 도시의 전화번호부에 수록된 업체 수와 맞먹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과거 동독의 자산이 누구의 손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감돌고 있기도 하다. 지난 1월13일 신탁관리청의 내부 범죄를 수사하고 있는 검사가 의회 청문회에서 밝힌 내용은 이같은 분위기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제수사에 착수하게 되는 특정 분야에서 신탁관리청에 얽힌 범죄로 인한 손실액은 과거의 어떤 손실액도 무색케 할 것이며, 그 규모에 대한 믿을 만한 결산은 10~15년 뒤에야 가능할 것이다.”

 신탁관리청의 문건에 따르면 약 2천억마르크로 평가된 전체 자산의 80%가 93년 중반까지 처분되었다. 그 결과 2백30만명의 노동자가 실업 상태에 있고 94년말까지 신탁관리청이 안게 되는 부채는 2천7백50억마르크에 달하게 된다. 91~92 회기의 경우 매각수입은 1백85억마르크. 그러나 지출액은 부채상환과 산업재건 조처 등으로 4백36억마르크에 달해 2백50억마르크 적자를 냈다.

 독일 정부는 증가일로인 신탁관리청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94년에도 3백억마르크 이상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융자액이 곧 통일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국가채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결국에는 납세자의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신탁관리청의 부채 2천7백50억마르크의 내역을 들여다보면, 그 중 1천3백60억마르크가 동독 국유자산을 매입한 업체에게 주는 사유화 보조금, 또 일부 산업의 가동에 따른 지원 비용이다.

 의회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경제범죄 문제에 대해 신탁관리청은 지난 1월10일 일간지에 낸 전면광고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는 경제 범죄 퇴치에 주력하고 있고 내부 부서에서 91년 2월 이후 1천3백95건의 범죄 단서를 확보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우리는 이 중 1백88건을 스스로 고발조처했다. 또 6백90건의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 경제 범죄로 인한 손실은 3억마르크에 달한다.’

 대부분의 경제 범죄 사건이 신탁관리청에 의해 스스로 밝혀지고 있다고 해도 문제는 신탁관리청 자체를 통제할 수 있는 조처가 여전히 거부되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신탁관리청에 대해 더 철저하게 조사하기 위해서는 연방감사원과 주의회, 지역노동조합, 시민운동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프랑크푸르트·許琉(자유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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