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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식민시대 恨 풀어준 민중관대

‘쑥대머리’명창 林芳蔚… SP판 수록소리 LP판으로 복각, 6월 출반

이성남 차장대우 ㅣ | 승인 1990.06.10(Su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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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했던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응어리진 한을 깊고도 구성진 소리로 서리서리 풀어 주었던 명창 林芳蔚. 판소리에 귀기울여본 사람치고 그가 불렀던 ‘쑥대머리’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 찬자리에/혼자앉아 생각느니 임뿐이라./보고지고 보고지고 우리낭군 보고지고/오리정 이별 후에 일자서 없었으니/…” 판소리 <춘향가> 중 ‘옥중가’에 나오는 이 대목은 큰칼을 목에 쓰고 쑥대같은 머리를  한 춘향이가 이몽룡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심정을 그린 것이다. ‘쑥대머리’로 더 잘 알려져 잇는 이 대목은 임방울이 작사한 것으로 그의 이름 석자를 크게 떨치게 했던 곡이다. 이 노래가 수록된 SP판은 축음기가 자취를 감춤에 따라 저절로 ‘고물’이되어 오랜 세월 동안 해묵을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쑥대머리’를 위시하여 판소리 <춘향가>의 ‘십장가’, <수중가>의 ‘수궁풍류’, <심청가>의 ‘젖빌러가는 대목’ 등 SP판에 수록된 명창 임방울이 소리가 신나라레코드사에 의해 LP판으로 복가되어 6월중에 출반된다.

  임방울은 1904년 전남 광산군 송정읍 도산리 농가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하여 글공부를 제대로 못했고 탈곡기 돌리는 사람 밑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등 궂은 일을 하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당대의 명창 김창환이 외숙이었기에 그의 피 속에는 “예인의 끼‘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신명을 주체할 길 없어 농삿일을 포기하고 집을 뛰쳐나와 소리꾼의 고된 첫걸음을 뗐다. 14세 때 박재실 명창의 문하에서 <춘향가> <흥보가>를 이수하였고 훗날 유성준 명창에게 <수궁가> <적벽가>를 수학했다. 당시 소리꾼이 德音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고통스럽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목에서 피를 쏟는 것은 예삿일이고 깊은 산중의 폭포수 아래에서 내지른 소리가 폭포소리를 뚫고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나, 갖은 공력을 들이고 똥물까지 먹고 난 후에야 원하는 소리를 얻었다는 말 등은 모두 득음의 어려움을 일컫는 것이다.


  맑고 아름다운 성음을 타고 났으며 성량 또한 풍부하여 막힌 데가 없었다는 임방울도 10년을 하루같이 담금질하듯 스스로 목을 갈고 닦은 공력이 없었다면 득음대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 文淳太씨가 임방울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 <쑥대머리>에는 그가 지리산 토굴 속에 틀어박혀 독공하는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토굴 소겡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음식도 그 안에서 먹고, 햇빛도 보지 않은 채 뻐꾸기 울음소리에 화답하며, 바람소리 따라 울기도 하면서 “반즘은 죽고 반쯤은 실성하여” 첩첩한 ‘소리의 산’을 넘었던 것이다.

正道 벗어난 창극무대 거부
  1928년, 25세의 그는 서대문 동양그장에서 열린 전국명창대회에 출전하여 ‘쑥대머리’를 불렀다. 차림도 허술한 무명의 소리꾼이 부른 이 ‘쑥대머리’에 청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쑥대머리’를 세 번이나 연거푸 부른 뒤에야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화려한 데뷔였다. 그 후 콜롬비아, 빅타 레코드 회사에 전속되어 활동하면서 판소리 <춘향가>와 <수궁가>를 취입하였고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했다. 하늘을 찌를 듯 명성이 자자한 가운데서도 그는 많은 소리꾼들이 출연했던 창극무대에는 서지 않았다. 창극이란 그 당시 공연계를 휩쓸던 신파극의 영향을 받아 판소리 가락과 신파극의 연극 요소를 접목시킨 새로운 예술 양식으로, 정통 판소리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正道가 아니었던 것이다.

  문화재 전문위원 李□亨씨는 임방울이 최고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로 “애원서이 낀 界面調를 많이 부름으로써 일제 때 응어리진 민족의 한을 후련하게 풀어줬기 때문”이라고 풀이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계면조’란 표현에 대해 박헌봉이 쓴 《창악대강》에는 “서리내리는 달밤에 기러기 소리 지저귀는 가을을 상징한 격조와 같다”고 나와 잇으며 흔히 그 성음이 미려청고하고 애원처절한며 감상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961년 3월10일, 그가 서울 중구 초동 자택에서 57세의 일기로 타계하자,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웠던 사실에서 임방울의 ‘쑥대머리 신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해 3월12일자 동아일보에는 “일요일 서울거리에 색다른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임방울씨의 장례식을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이날 초동에 있는 고인의 집을 떠난 상여는 붉고 푸른 만장 수십개를 앞세웠고 상여 위에서는 김소희, 박초월씨 등 명창들이 ‘잘가시오, 잘가시오’라는 만가를 구슬픅 불러 시민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하였다.”

  저서 《판소리 명창 임방울》을 출간한 전북대 국문과 千二斗교수는 임방울이야말로 “전형적인 식민지 시대의 광대”라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이조시대에서처럼 지배계층의 비호도 받지 못하고, 그 이후 국가에서 제정한 인간문화재 같은 행정적 지원도 받지 못함으로 써 전적으로 민중들의 지지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진짜 광대다운 광대라는 것이다. 천교수는 또 “종래의 광대들이 ‘노랑목’이라 하여 무조건 기피하던 계면조의 창법을 개발하여 그것을 높은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판소리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신나라레코드사에서는 1935년 폴리돌사에서 나와떤 <심청전>과 1937년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나왔던 <춘향전>을 이미 LP판으로 복각하였으며 구한말부터 일제시대에 걸쳐 판소리 5명창으로 손꼽혓던 이동백, 송만갑, 김창환, 정정렬, 유성준의 소리도 되살려냈다.

  학계에서는 SP판의 이러한 복각작업을 “국악의 르네상스”라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정간보가 잇는 정악과는 달리 판소리 같은 민속악을 악보가 따로 없이 스승으로부터 구전심수의 방법으로 전해왔던 터라 후학들은 전설 처럼 전해오는 명창의 일화는 숱하게 들었어도 정작 그 명인의 ‘소릿재’를 직접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나라레코드사 회장 申鉉旿씨는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SP판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당대의 소리를 온전히 찾는 데는 어려움이 많지만 “판소리의 원형을 후대에 전수시킨다는 사명감으로 앞으로도 복각작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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