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연
  • 제주 리성남 기자 ()
  • 승인 1990.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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兒役으로 출발 演技생활18년 모스크바영화제 주연상 이어 대종상 3년연속 수상 영광

제주市의 한 숙소에서 만난 강수연은 짧은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 그리고 맨얼굴이었다. 마치 사춘기 소녀 같다. "지금 막 사르르 잠이 들려고 했는데….“ 잠을 못자게 돼서 속상하다는 빛이 역력하다.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3연패한 화려한 스타의 얼굴이 아니다. 그 옆에는 읽다가 덮어둔 책이 놓여 있다. 李精문학상 수상작인 김채원의 《겨울의 幻》이었다.

  "여기 올 때도 이 위에다 스웨터만 걸치고 왔어요." ㅇ패션의 여름상품 캐털로그 제작을 위해 1주일 동안 제주도에 머물면서 여름의상 60여별을 촬영해야 한다.

  "천성이 너무 게으른 탓에" 평소에는 화장을 안하고, 청바지를 입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옷장속에는 파티복, 드레스, 영화의상만 많다. 그녀는 부지런한 사람만이 스커트도 입고 스타킹도 신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멋부리고 다니는 여자들을 "존경한다" . 

  흔히 강수연을 이야기할 때 당돌하고 깜찍하다고 말한다. 영화 <씨받이>로 동양권에서는 맨처음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후 밝힌 소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베니스영화제가 대종상보다 못하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대종상을 못받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했다는 이 말은 그러나 대종상 주관부서인 영화진흥공사를 기급하게 들었다.    

  CF 촬영을 위해 가는 길목 여기저기에는 신혼부부들이 화사한 봄꽃처럼 쌍쌍이 수놓여 있었다. 아침식사 대신 스낵 과자를 집어먹으면서 그녀가 말했다. "제주도를 폭파해버렸으면 좋겠다.“ 놀라서 쳐다보는 일행에게 덧붙였다. "누군 죽도록 일하고 있는데 신혼여행 오는 것 보면 약올라 죽겠다." 그동안 결혼식 장면을 30번쯤 찍었고 1달에 1번 꼴로 촬영차 제주도에 왔지만 "맨날 끌려만 다니느라고" 관광은 못해 봤단다.

  한라산 해발 800~1300m 구역의 계곡에서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새치름한 듯, 뽀로통한 듯, 자유자재로 표정을 연출해내는 모습이 "천사같은 아름다움과 요화같은 관능미"를 동시에 뿜어내고 있었다. 가파른 산길을 타고, 바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그녀는 '힘들다'는 말을 한마디도 안했다. 그리곤 다음 행선지로 가는 봉고차 안에서 '곯아떨어졌다'. 

  당돌하다는 세간의 평에 대해서 그녀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타이프라는 말로 설명한다. "어려서부터 자기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도록 길들여졌고, 어린아이의 의사도 존중해주는 가정환경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올해 54살인 아버지와 51살인 어머니는"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신 분들이다" 고2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불화가 잦아져 이혼, 그녀의 부모는 지금 따로 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성격이 외로움도 많이 타고 여리다고 한다. 중2 때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써온 사실에서 그런 내면을 읽을 수 있다. 다만 "악이 받치면 머리가 깨져도 끝을 보는" 일면이 있다. 그런가 하면 하나에서 열까지 직접 제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요즘엔 매니저 없이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한다. "꼭둑각시처럼 연기만 하다 보니 영화계 돌아가는 사정을 몰라서 힘들긴 하지만 직접 뛰고 있다." 

  그 독한 성격은 연기를 할 때 특히 빛을 발한다. <고래사냥 2>를 찍을 때는 스턴트맨을 쓰지 않고 윈효대교에서 한강으로 5번이나 뛰어내렸고,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는 2시간 동안 진행된 삭발식에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촬영을 끝냈다. 그때 자른 머리를 "기념으로" 조금씩 몇사람에게 나눠주었다. 결혼한 남자친구에게도 전화해서 "나 머리 잘랐다. 자른 머리카락을 네게 보내려고 한다"고 그랬다. 그 친구가 "너 나한테 무슨 원한이 져서 그러냐, 꿈에 나타날까 무섭다"고 펄쩍 뛰었다. "기념이니까 너희 아이 장난감 만들어서 갖고 놀라고 해"라고 했다 "정말 흉칙한 아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자른 머리가 이젠 긴 단발정도로 자라났다. 그동안 "땀띠가 날까봐" 가발은 한번도 안쓰고 다녔다.

  강수연이라는 이름 석자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영화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부터이다. 그뒤 89년에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또다시 수상함으로써 한국영화 70년 역사에 영광된 획을 남긴 것이다. 행운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3월16일에 그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로 제28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88년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와 89년의 <아제아제 바라아제>에 이어 3년째 내리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이다. 역대 대종상 3회수상 배우로는 최은희, 김지미, 신영균, 안성기가 있을 뿐이다. "상이 목표는 아니지만 그순간에는 너무 좋더라고요. 그렇지만 대종상후보에 노미네이트된 배우들은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상을 타고 나면 좋은 일보다 불편한 일이 더 많더라고요." 

  6살 때 아역배우로 첫 작품에 출연했다. 엄마 손에 이끌려 출연한 이 영화의 제목은 기억이 안난다. 성인배우로 출연한 첫 작품은 여고시절에 적은 <W의 비극>이다. 

  18년 연기생활 동안 아역에서부터 할머니역까지 안해본 역이 없다시피하다. 어떤 역이냐보다는 그 인물이 전체 작품과 어떻게 어울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 감독의 경우, 신선한 의욕과 앞서가는 감각이 마음에 든다. 그러나 연기자로서 편하게 느껴지는 감독은 역시 임권택감독이다. "무얼 가르쳐도 쉽게 가르쳐주는 어른"이라고 임감독을 평한다. "속이 편안한" 남자배우로는 <아제아제바라아제>와 <연산군>을 같이 찍은 전무송을 꼽는다.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후 개런티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큰 영화사를 끼지 않고는 그녀를 출연시키고 싶어도 엄두를 못내는 감독이 많다. "저도 무명시절이 있었던 만큼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요. 정말 작품이 좋고 가능성이 있다면 개런티 안 받고도 출연할 수 있어요."

  그의 얼굴 왼쪽에는 화장을 해도 가려지지 않는 흉터가 하나 있다. 어깨에도 커다란 종두자국이 2개 있다. 촬영기사들이 성형수술을 하라고 하나 "알려질 대로 다 알려진 것을 이제 와서 뭐하러 수술하냐. 돈 아깝게…"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그런가 하면 얼굴에 종기나 눈다래끼가 났다가도 이들날 영화 찍을 때는 신통하게 없어진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는 완성되기전에 1백번쯤 보고, 완성된 이후에 3번 본다. "처음에는 드디어 완성됐구나 하는 생각으로 보고, 두번째는 농땡이친부분들이 눈에 띄고, 세번째는 좋은 것은 아예 안 보이기 때문에 다시 보기가 싫다." 

  워낙 어려서부터 촬영장으로, 학교로 다니다 보니 이렇다할 취미나 특기가 없다. 성격이 급한 편이라 골프나 낚시는 10분도 못한다. 온몸으로 하는 수영과 테니스가 게중 좋다. 수영은 l0m쯤 가고 스키와 테니스도 조금 할줄 안다. 에어로빅과 디스코는 “잘한다.”

  여가 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거나, 비디오로 영화를 본다.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김환기화백의 삶을 그린 《내가 그린 점 하늘 끝까지 갔을까?》, 계간 《창작과 비평》, 신춘문예당선작 등이 있다. 또 메릴 스트립이 출연한 <쉬-데빌>과 실베스타 스텔론이 출연한 <캐쉬 앤드 텡고>와 톰 크루즈가 출연한 <7월4일생>을 비디오로 보았다. 요즘 좋아하는 배우는 말론 브란도이고 음악은 뽕짝부터 재즈까지다 좋아한다. 음식은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 육류를 특히 더 좋아한다. 식욕도 하루 5끼씩 먹을 만큼 왕성하여 뷔페에서 7바퀴를 돈 적도 있다.

  그는 친구를 좋아한다. 대개 국민학교 동창이나 중학교 동창들로 오래된 친구들이 많다.한번은 친구들과 여럿이 어울려 디스코테크에 놀러갔다. 그런데 춤을 추던 친구들하고 우락부락한 낯선 남자들하고 싸움이 붙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말리는 걸 뿌리치고 쫓아나갔다. 한창 싸우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불렀다. 그 남자가 힐끗쳐다보더니 "으응, 이거 강수연 아니야. 절로 비켜 있어"하고 밀쳐냈다. 그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그만 못두겠어." 그 기세에 놀란 틈을 타 이야기 좀 하자고 그 남자를 데리고 나왔다. 바깥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니 금세 서로 친해져서 재미있게 놀았다. 

  그녀는 결혼에 대해 일찍부터 ‘환상' 같은 것을 가졌다. 처음에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결혼하겠다고 별렀고, 그다음에는 21살만 되면 가겠다고 다짐했고, 그뒤에는 만일에 23살이 넘으면 평생 안 가겠다고 생각했다. 한데 25살인 지금까지 "데리고 가는 사람이 없다."점을 쳐봤더니 29살에 남자운이 있고, 30살에 결혼한다고 하니 앞으로 5년 동안을 어떻게 기다리냐고 푸념한다.

  10년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하자 "애 낳고 키우는 데 정신없겠지요" 한다. 워낙 애들을 좋아해서 동네 애들을 집으로 데려다 놀다 보니 집이 고아원 같았다. 그래서 결혼하면 애를 많이 낳을 생각이다. 엄마가 넷을 낳았으니까 그보다는 더 많이 낳겠단다. 남의 아이도 그렇게 예쁜데 내 자식이면 얼마나 더 사랑스럽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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