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병’으론 부족… ‘징병’실시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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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계 단체장 후보 인물난에 ‘총동원령’…때 되면 일제히 떠오를 태세



 내년 6월 27일에 치를 지방의회 의원 및 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민주계에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집권 1년여 동안 추진해 온 중앙 권력기반 강화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상태에서 이제는 지방 정치에도 민주계의 아성을 쌓아 나가려는 것이다. 이는 또한 96년 총선 물갈이를 대비하는 장기 포석이기도 하다. 민자당 민주계의 한 인사는 이를 두고 “민주계의 보병 상륙이 시작됐다”고 표현했다.

 총동원령은 작년말 대규모 당정개편 때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박태권·김혁규 두 상도동계 인사가 지사로 발탁되어 최기선 인천시장·염홍철 대전시장 등 선발대에 합류했다. 비록 이들 중 몇몇이 사전 선거운동 시비에 휘말려 있기는 하지만 민주계의 ‘모병’혹은 ‘징병’작업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민주계는 어느 정도나 인물을 동원할 수 있을까. 민주계의 한 인사는 “민주계가 인물난이라지만 그렇지 않다. 공천은‘마이더스(만지는 것을 모두 황금으로 바꾸는 능력을 가진 그리스 신화 속의 왕)의 손’과 같은 것이다. 민주계의 인재 동원 능력은 무한대이다”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현재 각 언론을 통해 거론되는 인사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충남의 경우 박태권 지사 입지가 크게 좁아지긴 했지만 현역이고 대통령 측근이라는 점에서 공천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박지사 외에 민주산악회 충남협의회장을 지낸 한청수 전 충남지사가 유력하고, 역시 충남 지역 민주계 리더 격인 이성춘 민자당 충남도지부 사무처장도 거론되고 있다. 현지에서는 심대평 전 청와대 행정수석이 민정계라는 약점만 극복하면 공천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충북에서는 충북지사를 지냈고 민주산악회 충북지부장을 맡았던 주병덕 경찰위원회 상임위원이 가장 자주 거론된다. 충북지사를 지낸 이원종 서울시장이 공천을 따낼지 모른다는 관측도 있다. 충북지사와 내무부장관을 지낸 김종호 의원도 거론되지만, 김의원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대전은 염홍철 시장이 일단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됐고 그 틈을 민자당 이재환·송천영 의원이 엿보는 것 같다. 국회 사무총장을 지냈고 14대 대통령직 인수위원이었던 이의원은 “현재로서는 출마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상당한 의욕을 내비쳤다. 민추협 출신으로 통일민주당 대전·충남 지부장을 지낸 송의원은 지난 3월 KBS 전국노래자랑 대전 동구편 프로에 출연하여 ‘정견 발표성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구설에 올랐다. 민주산악회 대전협의회장을 역임해 최형우계로 분류되는 이봉학 전 시장은 시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것이 치명타였다는 말을 듣지만 공천을 향해 열심히 뛰고 있다. 일부에서는 김정남 청와대 교문수석비서관을 대전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거론하기도 하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천에서는 선두 주자이던 최기선 인천시장이 발이 묶인 상태이고 그를 대신할 인물로는 이승윤 의원(4선)이 거론된다. 이의원은 대통령 선거 때 김대통령의 경제 자문역을 맡았다. 인천시장과 경기지사를 지낸 이재창씨가 거론되기도 한다.

“출마 의사 내비치면 공천 탈락”
 경기지사 후보로는 대선 때 민주산악회 경기도지부장 겸 중앙회 부회장을 지낸 조종익 광업진흥공사 사장이 최형우계로 신임이 두텁다고 해서 자주 거론된다. 그러나 조사장은 보좌관을 통해 “그런 이야기는 이제 취임 1년을 맞아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을 욕먹이는 것이다.그동안 여러 군데 관여했지만 이제는 모두 그만뒀다”라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문민 정부 초대 내무부장관을 지낸 이해구 의원과 경기지사를 지낸 임사빈의원이 경합하는 형세이다. 입지전적 인생 역정으로 유명한 임의원은 주변에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평을 받는다. 중앙 정치인으로는 이한동 민자당 원내총무가 있지만 도지사급에 걸맞지 않는 ‘거물’이라는 이유로 논외로 취급된다. 그 외에 문민 정부 첫 노동부장관을 지낸 민주계 소장파 실세 이인제 의원도 대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강원도에서는 김윤환계이면서 대선 때 김대통령을 도운 공로로 문민 정부 첫 강원지사를 지낸 함종한씨와, 지난해 말 인사에서 함씨를 밀어내고 지사가 된 이상용 전 국토개발연구원장이 앞서간다.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은 민주계로서는 희비가 교차하는 지역이다. 부산에서는 문정수 민자당 사무총장, 서석재 전 의원, 신상우 의원, 김정수 의원 등 중앙 정치인이 대거 거론되고 있어 오히려 종잡을 수가 없다. 경남 역시 김혁규 현 지사의 행보가 순조롭고 상도동계의 선배 그룹으로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한 김봉조 의원, 그리고 관계·재계의 신흥실력자들이 모두 거론되어 예측하기 어렵다. 반면 대구와 경북에서는 반민주계 정서가 강해 마땅한 인물을 꼽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김윤환 의원이나 박세직 의원 등 민정계 인사가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하기도 한다.

 인물난을 겪기는 호남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광주에서는 적당한 인물이 없을 경우 재야의 정동년씨, 명노근 전남대 교수, 윤영규 전 전교조위원장 등 뜻밖의 인물에게 공천이 갈 수도 있다는 추측이 있다. 전남에서는 도지사를 지내고 민주산악회 전남지부장을 맡았던 백형조 전남발전연구원장을 꼽는 이도 있지만, 백씨는 “나는 철저히 비정치적 인물이다. 지역발전 방안을 연구하며 조용히 살고 싶다”라고 말한다. 전북지역은 14대 때 황인성·양창식 등 2명의 민자당 의원을 배출했고 최근 도의원 보선에서도 높은 여당지지를 나타냈다. 그래서 여당 후보들이 기대를 걸어볼 만한 곳이다. 구시대 인물이지만 김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익산 출신의 조남조 산림청장이 유력하다. 전국에서 재선이 가장 어렵다는 제주도에서는 민주계에서 두드러지는 인물이 없다. 우근민 전 지사가 여권 후보감으로 꼽히는데 지역 기반이 약하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민주계 쪽 인사로 이상의 인물들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 누가 공천을 받게 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출마 의사가 있는 사람들도 내색하지 않으려 한다.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공천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일이 임박하고 집합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이들은 일제히 지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韓宗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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