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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베를린 사회과학연구소 클링게만 소장

“남북, 느닷없이 통일될 수 있다”

서명숙 차장대우 ㅣ 승인 1994.04.28(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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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4월15일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시베리아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 노동자의 국내 귀순을 마침내 허용키로 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같은 회의에서 남북한 특사 교환을 미·북한 회담의 전제로 연계하는 정책을 포기하고 대신 상호 사찰 실시를 위한 남북 대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미묘한 상황 변화는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관측을 불러일으킨다. 궁지에 몰린 북한의 전쟁 도발 가능성, 북한 체제의 급속한 붕괴 가능성, 남북한 교류와 단계적 통일을 향한 새로운 국면이 조성될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현재 한반도 주변 정세가 매우 역동적이라는 사실이다.

 《시사저널》은 4월초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의 초청을 받아 내한했던 독일의 정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클링게만 박사를 인터뷰했다. 그가 들려주는 독일 통일 과정과 그 이후의 경험담, 그에 따른 몇 가지 분석은 여러 가지 차이가 있음에도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는 하나의 유효한 단서가 될 것이다.

독일 통일 비용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통일 당시 서독 정치인들은 정치적 고려 때문에 통일 비용을 무시했던 것입니까, 아니면 그 엄청난 규모를 예측하지 못한 것입니까?
경제적 고려는 1차적 고려가 아니었습니다. 통일은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됐습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였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말하지 못했지요. 또 예상보다 많이 들어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해마다 독일은 국민총생산의 5%를 통일 비용으로 씁니다. 옛 동독을 재건하는 데 충분하지는 않지만, 매우 큰돈이지요. 비용 문제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이며, 이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서독인들은 세금이 늘어나 매우 불만이 큰 것으로 압니다. 박사 자신은 세금을 얼마나 더 부담하는지, 혹 불만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통일 이후 세금이 전반적으로 올랐습니다. 전체적으로 불황이라 타격이 더욱 큽니다. 베를린에 살기 때문에 초기에는 세금 혜택을 받았지만, 그것이 없어지고 나니 더욱 실감이 나더군요. 자기 호주머니에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 동독이 낙후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간접자본에 투자가 더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겉으로는 불평을 토로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불가피성을 느끼고 공감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무리 투자를 하더라도 사회주의 체제에 길든 동독인들의 생산성이 서독인들보다 훨씬 낮다면 별 효과가 없지 않겠습니까?
생산성은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동독의 생산성은 서독의 30%밖에 안 되는데, 임금은 서독의 80% 수준이지요. 그러나 생산성이 낮은 것은 동독 노동자들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충분한 자본 투자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독에 지사를 둔 서독 기업 중에 동독의 노동력에 대해 불평을 하는 회사는 없습니다. 자본집약적인 근무지를 만들고 사회간접자본에 집중 투자해야만 장기적으로 생산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17%에 달하는 실업률을 해결하는 길도 더 많은 투자밖에 없습니다.

동독인들이 과연 자본주의적 경쟁 구조에 익숙해질 수 있는지 의문이군요. 동독인들은 ‘2등 시민’이라는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동독의 경우 모든 것을 정부가 간섭해 해결해 왔고, 거기에 익숙한 분위기입니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정부가 해주기를 바라는 심리가 매우 높게 나타납니다. 이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자본주의를 이해시키는 것이 관건입니다. 사회주의 정부가 쓸데없이 양산해 놓은 관료들일수록 경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느낍니다. 외국의 언론 보도는 취재원을 주로 이들에 의존하고 있고, 따라서 어려움이 실제보다 과장되게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 점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의 공식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동독 지역은 끊임없이 건설 현장 그 자체입니다. 동독인들은 초기에는 물론이고 또 지금까지도 자기들을 2등 시민이라고 느끼고 있고, 일부 서독인은 정치사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현재의 불편을 겪어야만 하는가 회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동독인들과 실질적 다수의 서독인들은 통일의 지혜를 믿고 있습니다. 동독 젊은이들 사이에는 낙관주의가 가장 널리 퍼져 있습니다.

통일 이후 높아진 실업률과 사회 불안감 때문인지 외국인데 대한 테러가 부쩍 늘어났습니다. 이는 ‘슈퍼 게르만’의 가능성과 함께 세계인들의 걱정을 자아내고 있는데….
두 가지 현상을 구별해야 합니다. 독일은 실질적으로 커졌고 그 영향력도 커졌습니다. 그러나 안보에서는 나토 체제의 일원으로, 경제 면에서는 가트 체제의 일원으로 충분히 그 의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독일이 또다시 새로운 민족주의적인 국가를 지향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외국인 테러는 참으로 용납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며, 그 행위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배경은 이해해야만 합니다. 보스니아·러시아·루마니아 등 주변 국가에서 수많은 불법 이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고, 독일 젊은이들의 실업률은 급증하고 있습니다.

독일 통일이 한반도 통일에 교훈을 줄 수 있는, 비교 가능성의 근거가 있습니까?
첫째는, 단일 국가였던 두 나라가 강제로 몇 십 년 전에 분할됐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거대한 권위주의적 주변 국가들의 압력 때문에 반쪽은 영구적 권위주의 구조를 지니게 되었고, 나머지 반쪽은 결과적으로 경쟁력 의회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는 것이죠, 셋째는, 한쪽이 강제적 통제경제를 실험하는 동안 한쪽은 시장과 사적 소유제에 기초해 활기 있고 개방된 경제제도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넷째는, 그런데도 분열된 두 국가가 모두 공통의 역사와 언어와 문화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남북한은 동서독과 달리 한쪽은 개인 지배적인 권위주의 체제를, 다른 한쪽은 다소 기형적인 민주주의와 덜 성숙한 자본주의를 유지해 왔습니다. 더욱이 한국은 옛 서독처럼 막강한 경제력을 지닌 것도 아닙니다. 통일 가능성, 통일 이후에 대해 비관적 전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비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데에는 공감합니다. 남북한과 독일간에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고 각기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통합이 성공을 거두려면 두 국가가 적극 협력하고 교류해야 하는데, 남북한의 역사적 상황을 감안하면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 정세는 크게 변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러시아와 중국이 달라졌고 북한은 고립돼 있지요. 북한은 자기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루 세끼를 먹기도 힘들고, 유례 없는 지도자 세습은 북한을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변화는 시간 문제라고 봅니다. 북한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는 두 갈래 시나리오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두 갈래 시나리오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십시오.
첫째는 긍정적 시나리오입니다. 북한의 중견 내지 소장 지도자들이 더 이상 체제 유지가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중국을 모델로 답습하는 식의 변화에 애쓰고, 그런 변화 과정에서 한국의 지원을 받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더 어려운 상황을 의미하며, 독일의 경우와 흡사합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변화가 북한에 영향을 미처 권력세습이 불가능해지고, 주변 국가의 변화에 자극 받은 북한 젊은이들이 궐기해서 휴전선을 넘어오면 막을 길이 있겠습니까. 단계적 통일이 바람직스럽더라도, 그럴 때는 급작스러운 통일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철저하게 통제되고 경직된 북한 체제로 미루어볼 때 두 번째 시나리오는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저는 미국을 떠나올 때 독일 통일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점진적 통일의 가능성을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독일 통일은 동독 주민들의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 민주화를 요구하고 동독 정부가 속수무책으로 상황에 이끌려가면서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한꺼번에 이뤄졌습니다. 한반도 역시 이런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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