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손 태부족 높아진 사람값
  • 김상익·장영희 기자 ()
  • 승인 199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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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인력 갈증’… 제 살 깍기 스카우트 경쟁 치열 임금보다 근로조건이 우선… 90년 인력부족 19만명

 “우리 공장에서 일할 생산직 사원을 소개하는 직원에게 1인당 5만원씩 지급합니다.” 서울시내 한 인쇄소 게시판에 붙어 있는 공고 내용이다.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다. 직원 소개로 입사한 사람이 1개월 이상 근무할 때만 수당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얼핏 대수롭지 않은 조건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 인쇄소 직원들은 대부분 이 조건을 채우지 못해 5만원의 부수입을 올리지 못한다.

 이 인쇄소의 ㅈ차장은 밤새도록 기계를 돌려야 하는 공장 사정 때문에 10일 이상 사람을 붙잡아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루 8시간 근무인 줄 알고 왔다가 12시간 근무란 소리에 ‘으악’하고 비명을 지른다. 2부제 근무라고 일러주면 뒤로 벌렁 나자빠진다. 철야근무도 해야 한다는 말에는 나살려라 꽁무니를 뺀다. 가끔씩 휴일에도 근무한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도 못한다.”

필요한 인력은 1백명. 일할 사람은 5명
 대구직할시 비산동 염색공업공단의 무료 직업안내소 운영현황을 보면 제조업체의 인력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지난 8월 염색공단 입주업체들은 모두 1백16명의 근로자가 필요하다며 염색공단측에 구인을 의뢰했다. 구인의뢰를 받은 공단 측은 지방신문에 ‘취업정보’ 광고를 냈다. 사업체의 이름과 직종, 모집하고자 하는 근로자의 연령과 학력, 임금 및 상여금 등을 소상히 알렸다.

 이 광고를 보고 염색공단을 찾은 사람은 겨우 12명. 이중 실제로 취업한 사람은 6명에 지나지 않았다. 1백16명의 인력이 필요한데 공급된 노동력은 5% 수준에 그쳤다.

 구로공단의 7백60여 업체는 평균 10% 이상 인력부족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매달 3백~4백명씩 인력이 빠져나가고 있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의 인력부족 현상이 더 심하다 중소기업의 근로조건이 대기업보다 나쁜 탓도 있지만, 대기업의 스카우트 공세 때문에 그나마 확보한 기능인력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3대 기전업체 중 하나인 ㄱ사는 최근 청주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나서 사람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주변의 중소기업에서 사람을 빼가 원성을 듣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 전체의 인력부족률은 85년 1.75%에서 90년 4.34%(19만명)로 껑충 뛰었다. 그러나 제조업체의 인력부족률은 전업종 평균치를 웃돌고 있다.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90년 현재 제조업체(10인 이상 사업체)의 인력부족률은 5.6%인 것으로 나타났다(35쪽 표 참조). 제조업 중에서도 생산직의 경우는 인력부족 현상이 더 심해 지난해 부족률은 7.4%로 높게 나타났고, 올해에는 9.9%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할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그렇다면 도대체 ‘일할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하늘로 솟거나 땅을 꺼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여전히 노동시장에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장 안에서 부문간 이동이 급격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80년과 90년의 산업별 취업구조를 비교해보면 노동시장의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다(35쪽 아래 표 참조). 농림어업과 광공업부문의 인력이 각각 15.7%포인트, 0.5%포인트 줄어든 반면 서비스·기타 부문은 37.3%에서 47%로 비대해졌다. 건설업도 1.2%포인트 늘어났다.

 90년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농림어업과 고아공업에서 13만1천명이 줄어들었다. 반면 건설업 도소매업 서비스업 등에서는 65만6천명이 증가했다. 제조업의 경우는 7천명이 증가하는 데 그쳤다. 농림어업과 광공업에서 줄어든 인력이 태반이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업쪽으로 흘러들었으며, 새로 일자리를 구한 노동력도 제조업은 거의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방직공장에서 운영하는 산업체 학교가 학생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는 사실은 제조업 기피 현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섬유업계는 오래 전부터 고등학교를 세워 필요인력을 공급해왔다. 70~80년대 상급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못되는 청소년들은 고등학교도 다니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이들 학교로 많이 몰렸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마산 한일여실고 관계자는 “농촌도 경제형편이 나아져 굳이 자녀를 방직공장에 취직시키면서까지 고등학교를 보내려고 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다른 산업체 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또 그들 학생이 졸업한 뒤까지 직장에 남아주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구의 한 방직공자에서 일하는 김미숙양(18·ㅇ여고 3학년)은 이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이냐는 물음에 “다른 데로 옮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보면 솜가루를 하도 들이마셔 코에서 실이 줄줄 뽑혀나온다.” 과거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방직공장의 작업환경이 나빴다. 지금은 대형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고 에어컨을 가동시켜 작업환경이 나아졌다.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노동을 해서 먹고살 바엔 솜가루 날리고 기계소리 요란한 방직공장보다 ‘깨끗한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는 추세이다.

수요·공급이 어긋나는 노동시장
 요즘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임금보다는 근로조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노동강도가 낮고 작업환경이 쾌적하며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를 원한다. 이를 만족시키는 것은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이며, 생산직보다는 사무직인 것이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일부에서는 우리의 근로자들이 더럽고 위업하고 힘든 일, 이른바 ‘3D'를 기피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인력난의 배후에 ’3D 기피증‘이 있는 것은 부인 할 수 없지만 그것을 주범을 보고 문제해결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피상적 발상이다.

 80년대 이후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수요·공급 측면에서 구조적 불균형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근본적인 인력수급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제조업체의 인력난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먼저 공급 측면에서 볼 때 출생률 감소·고학력화·소득수준 향상 등이 변화 요인으로 작용했다. 80년대 2.3%였던 출생률은 90년 1.5%로 뚝 떨어졌다. 인구 구성도 선진국형인 항아리 모양을 바뀌었다. 노동시장에 진출할 저연령층의 절대수가 줄어든 것이다.

 15~19세 연령층의 경제활동 참가 인구는 75년께부터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전망이다. 이는 진학률 증가와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이 연령계층의 제조업 부문 신규 인력 공급은 줄어들게 돼 있다.

 고학력화 현상은 노동 공급자가 기대하는 임금 수준을 높여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제조업 및 생산직에 진출할 가능성을 낮췄다. 여기에 학력의 인문화 현상이 가세, 80년대 후반부터 신규 노동력의 생산직 취업이 줄게 됐다. 90년 현재 노동시장에 새로이 공급된 인력의 90%는 고졸 이상의 학력 소지자였으며, 이들 중 92%는 인문·상업계 출신이었다. 이같은 현상은 제조업 생산직의 구인난을 가중시키는 동시에 대졸자의 취업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동시장의 수요 측면에서는 서비스 부문의 급격한 확대가 취업구조를 바꿔놓았다. 3차산업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우리의 경우 서비스업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발달하고 있어 문제가 크다. 제조업 성장에 기여하는 금융·정보통신 분야는 발전이 더디고 쓸 만한 사람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반면 음식 숙박 유흥업 등 소비성 서비스업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우리의 불건전한 소비문화는 노동시장 구조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는 것이다.

적극적 투자로 인한 인력난 극복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우영호 사업과장은 “서비스 산업으로 빠져나간 사람들을 다시 생산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면서 “근로자들이 돈을 쉽게 벌려고 하는 풍조도 사라져야겠지만 회사측도 임금이나 작업조건을 개선해 근로자에게 희망을 안겨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령 5년 이상 근속한 근로자에게 주택 걱정을 하지 않도록 지원해준다면 많은 근로자가 생산현장을 지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염색은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 중 하나다. 임금 수준도 낮아 근로자들이 들어가서 일하기를 꺼리는 직종이다. 그러나 업종 자체가 안고 있는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생산직 근로자를 우대하고 공장 자동화를 추진해 인력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사례도 있다. 대구 비산염색공단 내  ㄱ염색의 경우 2백여명의 근로자 평균 근속연수가 6년이나 되는 등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진 업체들이 ‘제 살 깍아먹기’ 스카우트 경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옮기는 근로자가 거의 없다.

 ㄱ염색은 80년 공단 입주 때부터 ‘생산제일주의’를 내걸고 기숙사 운영, 학자금 지금 등 근로자 복지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10년 이상 근무한 차장급 사원의 경우 관리직의 월급은 95만원 선인데 비해 생산직은 이보다 많은 1백10만원 선이다. 전체종업원 중 관리직 사원이 8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생산자 위주의 경영방침을 말해준다. 30억원을 들여 설비자동화를 꾀했는데 그 덕분에 인력난 시대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적응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개별적인 인력정책을 수 차례 내놓았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노동부 교육부 상공부 경제기획원 과학기술처 등 인력과 관련된 부처들이 서로 권한과 의무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어 인력부족시대에 대처할 만한 정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인력정책은 금융·조세정책 산업정책 주택정책 등 경제정책이 종합적으로 연계될 때 실효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경제기획원 장관 산하에 설치된 인력정책 심의 위원회는 1년에 한번 정도 모이는 것이 고작이다. 이 기구가 인력정책 수립에 공헌한 것은 별로 없다.

인력난 주범은 ‘사람’ 아닌 ‘정책’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유휴 노동력은 2백40만명에 이른다. 노동부는 올해의 부족인력을 2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유휴노동력의 10%만 끌어들여도 제조업의 인력갈증은 거뜬히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볼 때 인력난의 주범은 ‘사람’이 아닌 ‘정책’이라고 봐야 한다.

 부동산투기로 인한 불로소득의 증가와 80년대 말의 호황으로 소비산업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하면서 제조업 경영자의 경영의욕과 노동자의 근로의욕은 무너져내렸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생산현장의 공동화 현상이 빚어지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학계에서는 50~60년대를 무제한 노동공급시대, 70~80년대를 제한적 인력부족시대, 90년대는 전반적 인력부족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사람이 귀해지고 노동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많은 선진국들이 이미 경험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인력난은 경제 구조가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만큼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심화된 측면이 있다. 노동력의 수급체계가 어지럽게 꼬이면서 인력 낭비도 심했다. 기능인 천시 풍조와 ‘한탕주의’는 생산현장에서 달러를 벌어들일 귀중한 인력을 먹고 마시는 소비현장으로 내몰았다.

 지금이야말로 정부 당국과 기업인이 ‘사람이 곧 자본’이라는 인식을 갖고 사람을 아껴쓸 수 있는 지혜를 짜낼 때이다. 부존자원 없는 우리나라가 가진 것이라고는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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