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산업을 키워야 한다
  • 김채겸 (쌍용그룹 총괄부회장) ()
  • 승인 1991.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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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30년 동안 ‘잘되는 경제’의 표본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던 한국경제는 최근 몇년 사이 경쟁력이 급격히 감퇴, 9월말 현재 무역수지 적자가 96억달러에 이르는 등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선진국의 문턱에 선 한국경제가 당면한 전환기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일본 등 잘되는 경제는 물론 미국 EC 중남미 등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제의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고임금, 환율의 고평가, 선진국과의 기술격차, 통상압력, 자원(산업인력 · 입지자금)의 부족, 복지부담 등 한국 기업이 안고 있는 경쟁력 열위의 요인들은 대부분 일본이 과거에 경험하였거나 지금도 겪고 있는 것들이다. 일본 기업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정부 기업 국민의 합의에 기초한 장기전략을 세우고 이를 꾸준히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실효성 있는 각종 기업중시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 기업이 안정적으로 투자와 기술개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였다. 국민은 근검절약의 생활화로 높은 저축률을 유지함으로써 기업에 풍부한 산업자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였다. 기업가는 근면청빈의 실천적 유교정신을 생활화하면서 종신고용제 · 사내복지증진 등을 적극 도모, 산업평화와 근로질서를 정착시켰다. 이와 같은 경영환경하에서 일본 기업은 업종전문화와 기술개발을 장기적 시각에서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많은 기업이 여러 분야에서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기업중시정책’편 일본의 성공과 ‘투자 소홀’ 미국의 실패
미국에서는 60년대 고도 대중소비단계를 거친 후 근면 등 초기 자본주의 정신이 퇴색했다. 미 정부는 방위산업을 제외하고는 장기 산업전략을 마련하지 않았으며, 기업은 경쟁력 증대를 위한 투자를 소홀히 하였다. 낮은 저축률하에서 사회복지 등 비생산적 부문에 대한 정부지출을 확대하는 경제운용 방향은 달러화의 고평가와 고금리유지를 불가피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생산비를 높였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 위한 금융자본의 확대는 경영자로 하여금 단기이익에 더욱 집착하게 하는 결과를 불렀다. 이런 기업환경하에서 미국 기업은 장기투자나 기술개발보다는 주주와 기업구성원의 단기이익에 더 큰 관심을 가졌으며, 그 결과 국제경쟁력을 점차 잃게 되었다.

유럽의 경우 나라별로 세분화된 협소한 시장에 정부규제마저 지나쳐 시장효율성이 낮았다. 이런 상태에서 사회주의 영향으로 고용에 대한 기업의 자율성은 많은 제약을 받았다. 이는 세계시장여건 및 기술변화에 대한 기업의 적응력을 약화시켜 높은 과학기술 수준에도 불구하고 산업기술력이 미국 일본 등에 크게 뒤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보다 먼저 공업화전략을 추진, 1958~1970년간 실질성장률 6.8%, 물가상승률 3.9%라는 안정 속의 고성장을 이룩한 멕시코는 과다한 경제팽창정책과 사회주의적 제도개혁을 시도하다가 경제사회 질서가 대혼란에 빠지는 결과를 빚었다. 외채에 의존한 정부 주도의 의욕적 유전개발 전략은 국제유가 인하와 고금리로 인한 재정적자 누증만을 가져오고 말았다. 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은 해외로의 자본유출과 기업투자 기피현상을 초래, 공업은 물론 농업 등 모든 산업의 생산력을 급격히 감소시켰다. 이는 한때 3천8백11%에 이르는 인플레를 가져와 기업의 국제경쟁을 불가능한 지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우리는 여기서 경제가 잘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적극적 투자와 기술개발을 유도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매우 긴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 기업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으니 안타깝다. 89년 ‘11 · 14경제대책’ 이후 제조업 부문에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 계속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금리하의 기업자금난, 고임금하의 인력난, 반기업적 사회분위기, 누적된 사회문제 해결과 관련한 기업부담 증대 등 기업 애로요인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전환기적 상황에서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업의 투자와 기술개발이 절실한데도 기업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무역수지 적자확대, 중소기업 경영난 등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기적 시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정부의 정책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로잡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최근의 주력기업 선정 문제를 보더라도, 정부가 산업정책에서 힘써 육성하는 분야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은 의아한 감을 준다. 평면적인 주력업체 선정보다는 전략산업 육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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