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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박 뒤흔든 '음악 언어'

'윤이상 축제' 서울 공연…순도 높은 예술혼ㆍ국제적 보편성 보여줘

박용구(음악 평론가) ㅣ 승인 1994.09.22(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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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모로 감격스러운 음악축제였다. 수수한 선의가 통하기 어렵고, 고상한 것이 속된 것에 짓밟히기 십상인 풍토에서 살아야 하는 내게, 1910년대에 태어난 비슷한 나이의 작고가로는 金順男과 尹伊桑이 있는데, 이들이나 나나 순도 높은 예술혼이란 사회를 깊이 사랑하는 것으로 믿었기에 파란의 역정을 겪어야 했다.

 김순남은 이미 갔는데, 성대한 윤이상 음악 축제가 열리니 더욱 감회가 깊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작곡자가 축제 현장에 있을 수 없는 상태로 막이 오른 음악회장에 내 몸을 두었으니 감동과 감회가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것 같았다.

 우리 자신의 음악 생활과는 별로 시냅스(sinaps)를 찾기 어려운 먼 나라에서 생긴 지휘자 해임 소동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조바심하고 바라보던 쑥스러운 풍경에서, 수십년을 소문만 듣고 접할 수 없던 한반도가 낳은 뛰어난 작곡가의 작품들을 현장에서 접할 수 있다는 감회는 맥박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동서양 음악의 '진정한 만남' 탁월
 과연 윤이상의 음악 세계는 한반도라는 지역적 특성을 넘어 국제적 보편성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대립과 갈등의 음악적 해결을 수직적인 기능화성법으로 해결해온 서양 음악의 구조적 특성을 장인적인 대위법으로 대응하면서 해법을 찾은 그의 탁월한 안목이 내게는 경이롭게만 느껴진다. 윤이상의 작품들을 위한 동서양 음악의 진정한 만남은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줄 뿐 아니라, 우리 음악의 창작적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적어도 한반도의 음악적 미래로 본다면 역사적 사건이 된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게 예술에 대해서도 최고급의 감식안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무형의 문화 유산과, 유산을 낳는 존재에 대해서 역사 인식과 아울러 거시적으로 국익을 가늠하는 국제 감각은 필수적인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도 작곡자의 불참은 유감스럽지만, 설사 아쉬움에 노여움이 얹혔더라도 윤이상 음악 축제의 첫날(9월8일)인 교향악의 밤은 열광적이었다.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청중을 향해 80을 바라보는 노련한 지휘자 林元稙의 답례, 감격에 겨워 당황하기까지 하는 그의 모습에서도 그 감동은 역력했다.

 서울시향 연주자들과 바이올리니스트 姜東錫의 독주로 애정이 느껴지는 열연이었다. 땅울림 같은 저현(콘트라베이스)으로 시작하는 85년의 교향곡 제3번, 현악기가 중심이 되는 긴 가닥(long line)이 있고, 갖가지 음색의 악기가 여러 가닥으로 함께 어울려 작곡자 자신이 말한 선적(線的) 유동성으로 동양적인 수평의 세계를 험준한 산맥처럼 세차게 전개시킨다. 현의 가슴 치는 영탄도, 관의 몸부림도 아아(峨峨)한 산맥을 감싸고 있다.

 81년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은 3악장으로 강동석의 독주가 돋보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윤이상 작품 중에서는 우리에게 가장 정이 들고 공감하기 쉬워 대중성을 지닌 작품이 되지 않을까.

 내가 표제를 단다면, 제1악장은 '망향의 노래', 제2악장은 '체념의 노래'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이 체념은, 문득 '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시인 鄭芝溶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체념이다. 제3악장은 '갈등'이다. 관악기의 포효와 독주 피치카토에 가슴이 저려오기도 하는 악장이다.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는 '분노의 시'이다. 음악의 <게르니카>이다. 화가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다른 점은 분노와 아울러 저항의 대열까지 그린 데 있다. 그러나 비극배우가 무대에서 진짜 눈물을 흘리면 관객이 머쓱해지는 것처럼, 지나친 분노는 도리어 부담스럽다. 오열을 삼킨 진혼이 있고 만종이 울린 뒤, '저항의 대열'은 3박자의 춤장단이다. 우리나라는 <길군악>조차 3박자의 춤장단인 것을.

 윤이상의 음악 세계에서 오페라는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그 형식을 빌려야 했을까.

 아마도 그는 심오한 동양사상을 추상성이 짙은 음악 언어로 풀어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적어도 도전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종합 예술인 오페라는, 문학적인 언어와 아울러 소리와 빛과 시간과 공간을 동원할 수 있다. 복합적인 메시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10.11일에 상연된 오페라 두 편에서, 65년 작품인 <유동의 꿈>은 도교 사상이라기보다 불도 사상을 뼈대로 하고 있다.

 당의 현장법사가 한역한 <반야바라밀다심경>에 있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세계를 펄쵸 보이려 한 것이다. 이 경전은 번뇌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지혜를 일러주는 대승 불교의 가장 유명한 경전이다. 색즉시공은 한 마디로 마음을 비우고 집착과 욕망을 버리면 부처님 세계에 동참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유동의 꿈>은, 옥황상제가 승양이라는 은자를 시켜 유동을 꿈속에서 깨닫게 한다는 이야기이다. 승양은 술과 여자, 돈과 권력에 관한 유동의 꿈속에서 네 번이나 둔갑술을 부려 다른 인물이 되어 나타난다.

 비유컨대, 승양은 괴테가 쓴 <파우스트>의 메피스토라든가, 바그너가 쓴 <니벨룽겐의 반지>의 난쟁이족 알베리히라든가, 둔갑술을 쓰는 우리나라의 도깨비처럼 중요한 인물이다.

윤이상 음악 제대로 표현 못한 <유동의 꿈>
 유동이 현실 체험을 하는 꿈속에서 그의 장인으로, 늙은 하인으로, 또는 나무꾼이나 최고 재판관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유동을 죽이는 자객으로까지 둔갑하는 것에 대해 연출자는 어떤 해석을 내렸던 것일까. 옥황상제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 그를 도깨비처럼 익살 광대로 부대를 누비게 할 수도 있었겠고, 둔갑술을 쓸 때마다 각기 다른 가면을 쓰게 해서 작곡자의 메시지를 더욱 뚜렷하게 할 수도 있었으리라.

 아무튼 윤이상의 추구한 추상적인 음악을 무대에서 구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평범한 볼거리로 그쳤다는 아쉬움을 주는 무대였다.

 68년 서대문 감옥에서 작곡했다는 <나비의 꿈>은 장자의 유명한 호접몽(胡蝶夢 : 꿈에 나비가 되어 노닐다가 깨어 보니 꿈인데, 내가 지금 꿈속에 있는 것인지, 생시에 있는 것인지, 어느 쪽이 꿈인지를 모르겠다는 내용)을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작품의 내용은 주인공 장자의 지옥도임이 분명하다.

 샛서방을 둔 젊은 여인이 죽은 남편의 무덤이 빨리 마르라고(무덤이 마르기 전에는 재혼을 못하게 되어 있는 듯하다) 부채질하는 장면이 클라이막스가 되는데, 따지고 보면 그 젊은 과부와 주인공의 아내가 다를 바 없고, 샛서방과 주인공인 추앙째도 다를 바가 없으니 지옥도가 아니고 무엇이랴.

 윤이상씨의 음악도 염소담(艶笑譚)같은 가벼운 소재와는 달리 매우 무거웠다.
朴容九(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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