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전쟁 왜 ‘타협'으로 끝났나
  • 김상익 경제부 차장대우·장영희 기자 ()
  • 승인 199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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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경제부담· ‘정치성'인상…현대, 여론악화 기업도산 우려

 지난 19일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과세불복 기자회견??으로 빚어진 재벌과 정부의??조세전쟁??은 걸프전 양상과 흡사하게 진행됐다. 걸프전은 겉으로는??침략자??이라크에 대한??세계질서의 수호자??유엔의 응징이라는 형식을 갖추고 있었으나 사실상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었다.

 정 명예회장의 과세불복 선언은“국가의 공권력과 정세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행위??로 구정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재계는 걸프전 때의 소련처럼 전면에 나서 현대를 건들지 못했다. 한편 국세청은 불복선언 이튿날인 19일 국세징수법에 따라 관급공사 대금?납품대금?은행예금 등 현대 계열사와 정 명예회장 가족의 재산을 압류할 태세를 갖췄다. 금융기관들은 느닷없이 여신제재조처를 취했다.

 정 명예회장이‘항복??을 결심한 20일, 국세청 고의 당국자는??현대중공업을 현대종합제철과 합병하는 과정에서 정회장 일가가 챙긴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여부를 면밀히 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혀 추가 과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했다. 걸프전이 진행되는 동안 후세인 사망설이 나돈 것처럼??정주영 명예회정 조기은퇴설??이 나돌기도 했다.

 국세청과 현대그룹 간의 조세전쟁 1차전은 걸프전과 달리‘실제상황??이 벌어지지 않은 채 정 명예회장의 항복으로 싱겁게 끝났지만 정부와 재벌의 힘과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결국 양측이??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의 으르렁거림으로 타협쪽으로 급선회한 것은 대치국면으로 몰아간 2일간의 교훈에 적잖게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한편은 위협을 느꼈고 다른 한편은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국세청 내세운 대리전쟁
 전운은 일단 가셨으나 이 대결은 정부의 강력한 경제 장악력과 재벌의 거대한 영향력이 실감나게 드러난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정부는 현대의 불복에‘법대로??하겠다고 반응했다. 법대로만 해도 제재수단은 매우 많다. 우선 세금을 체납했을 때 최고 추징세액의 25%까지 가산금을 매길 수 있다. 납세자의 재산도 압류할 수 있다. 은행예금 유가증권 부동산 등이 국세청의 손안에 들어온다. 이미 정부공사 대금이나 만기가 돼 돌아오는 외상매출금을 받을 수 없어 자금난은 심각해진다. 정부 발주 공사나 납품, 각종 인허가 사업이 어려워져 장사할 길이 막혀버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은행에서 새로 돈을 꾸는 일과 증시에서의 자금조달도 여의치 않다. 돈줄이 완전히 막히는 것이다. 비주력기업의 신규투자에 대한 자금출처조사와 여신관리규정을 들어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 모두가 법테두리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밖에도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현대를 고립시킨 채 조여갈 수 있다. 그러나 정부도 현대라는 상대를 부담스러웠다는 관전평이 나오고 있다. 국내 정상급 재벌인 현대는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90년 매출액 22조6천억원, 순이익 3천억원, 수출액이 74억달러였다. 종업원 수도 17만명에 이른다.

 현대가 국민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엄청난지 계열사 중 하나인 현대자동차가 부도 등으로 조업중단이 장기화할 경우를 가상해보자. 우선 현대자동차는 연간 6조원 정도의 생산차질에 직면한다. 현대에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1천3백50여개의 협력업체들도 당장 연쇄적으로 경영위기에 내몰린다. 현대자동차 종업원 3만9천명과 햡력업체 종업원 8만여명의 일자리가 위협받게 된다.

 생산차질은 수출차질을 가져온다. 올해 수출목표인 16억달러가 날아갈 수도 있다. 또한 그동안 엄청난 투자를 통해 일구어놓은 판매체계가 와해될 위기에 봉착한다. 한국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신뢰도를 잃는 것은 더 큰 부담일 수도 있다.

 자동차산업은 전후방 연관효과가 커 국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중대형 트럭 등 상용차의 경우 공급이 딸려 수요자인 산업체의 생산활동을 위축시키고 수출물픔 수송을 어렵게 하는 전방효과가 있다. 또 부픔 소재업체와 연결이 되어 있는 철강 비철금속 금속 화학 섬유 등 전산업으로 파급된다. 이처럼 재벌을 죄는 일은 국민경제를 함께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현대 무너지면 국민경제 뒤흔들려
 이번 사건은 수습국면으로 들어갔지만 몇가지 석연찮은 점을 남기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 단순한 조세전쟁으로 비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선 정회장이 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느냐 하는 점이다. 현대그룹의 1차 목적은 국세청의 세금추징이 부당하므로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토록 요란하게 떠벌이지 않고 법정투쟁을 벌여‘징세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었을 갓이다.

 그런데도 굳이 기자회견을 한 것은 탈세기업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장차 있을 법정투쟁에서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현대그룹이 정부로부터‘부당한 압력??을 받고 있음을 내비쳐 이번 사건이??정치성??을 띠고 있음을 알리고자 했다는 해석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청와대와 국세청은 이례적인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의 성격을 국세청과 현대의 갈등이라고 규정하면서‘관련없음??을 거듭 강조했지만??국가 기강을 문란케 하는 행위??등 강도 높은 논평을 흘려 스스로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샀다.

 더욱 이상한 것은 국세청의 태도였다. 즐기차게‘법대로??를 외쳤던 국세청은 사건 초기부터??관례??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행동을 했다. 지난 10월2일 국정감사에서 김덕룡 의원의 질의에 서영택 국세청장은 현대그룹 등이 변칙증여상속혐의로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 직후 추징세액은 1백50억원 정도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 금액은 10월21일 8백85억원으로 불어났다. 11월1일 국세청은 추징액이 1천3백61억원이라고 확정발표했다. 조사기간에 흘러나온 예상액이 큰 의미을 갖는 것은 아니나??고무줄??처럼 늘어난 갓은 갖가지 분석을 낳게 했다.

 조새란 국가가 반대급부 없이 국민으로부터 강제로 징수하는 것이므로 법률에 의거해야만 한다(조세법률주의). 세법에는 조세실체법 조세 절차법(국세징수법) 조세구제법 조세형사법 등 4개의 큰 기둥이 있다. 조세실체법은 규범과 과세요건을 규정한다. 국세청은 이 법에 의거해 국민에게 세금을 물린 뒤 조세절차법에 따라 세금을 징수한다. 이같은 과세는 일방적이므로 세액에 불만이 있는 국민은 누구나 조세구제법에 따라 이의를 제기하여‘구제??받을수 있다. 탈세한 사람에 대한 처벌은 조세형사법에 규정돼 있다.

 “부동산보다는 현금성 재산을 우선 압류하겠다??는 국세청의 방침은 현대를 더욱 버티기 어렵게 만들었는데, 부도를 내고 달아날 위험이 있는 체납자가 아니라면 부동산을 압류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압류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과세 관서의 재량이지만 그것이??무제한의 재량??은 아니다. 예금이나 현금을 압류하는 것은 기업의 사활과 관계되므로 되도록 기업이 움직일 수 있도록 부동산을 압류하는 것이 관행이다.

 이같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이번의 현대사건은 국민들 사이에‘정치적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회장은 서영택 국세청장이 현대에 대한 세무조사 사실을 발표한 직후인 지난 10월4일 현대석유화학 준공식에서 정원식 국무총리에게??2년 전 얘기를 지금와서 거론하느냐??고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알려졌다. 야권 일각에서도 2년 전 국회에서 지적했던 사안을 뒤늦게 취급했다는 점을 들어??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국세청은 지난해 12월에야 비로소 부의 변칙적인 대물림 가능성이 포착됐으며 올 5월 정식으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국세청은 현대만 부당하게 당하고 있다는 부분도??현대 외에도 대기업만 10개사가 정밀조사를 받고 있다??면서 정치보복 의혹을 일축했다.

 지난 11월8일 부산으로 산업시찰을 간 전경련 劉彰順 회장은“법률적으로 국세청과 세법전문가 사이의 소송을 통해 매듭지어 진다고 보지만 언제까지 얼마를 납부하고 차압을 하겠다는 것은 법에도 충실할지 몰라도 기업과 경제에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내 나름대로 업계의 의견을 취합중이니 기다려 달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정부의 의의제기가 바로 왔다. 다음날 崔珏圭 부총리는 롯데호텔에서 유회장을 만나??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법대로 집행될 현대문제에 대해 행동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을 전달했다. 이는 청와대의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사건이냐, 징세권 도전이냐
 이번 사건의 손익계산을 따지면 어떻게 될까. 정회장의 독단적‘무리수??가 현대측에 피해만을 가져오지는 않았다는 셈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대응이 지나칠 만큼 강경해 오히려 현대측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측이 내심 노린??정치보복??여론이 굳어졌으며, 변칙적으로 재산을 증여상속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정부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는??양비론??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최근“극히 일부분에 대해서만 이의신청을 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현대가 법정투쟁을 포기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법적투쟁을 고집할 경우 현대는??밑져야 본전??이지만 정부의 권위에는 큰 흠집이 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증권시장에서는 현대가 소송을 포기할 경우 정부가 거액의 이권을 대가로 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6공정부는 그동안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 등 개혁조처를 발표한 바 있으나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이렇다할 경제개혁 조치가 모두 물건너가자 6공정부는 재벌 규제 조처를 통해 개혁의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첫 포문은 지난 5월8일의‘부동산 매각조치??였다. 곧이어 소유와 경영의 분리, 업종전문화 등 경제력집중완화조처가 잇따라 터져나왔다.

 또 정부 일각에서는 각종 특혜로 큰 재벌이 너무 커져 지금 가지를 치지 않으면 앞으로‘다스리기 어렵다??는 위기의식마저 퍼져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들에게서는??사무관 시절에 지원을 해줘 큰 게 오늘의 재벌??인데 지금와서 은혜를 모른다는??배은망덕론??까지 나온다. 이런 흐름 속에서 현대 사건이 툭 불거져나와 큰 파문을 던졌던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취한 조처는 상속증여를 통한 부의 새습을 방지한다는 면에서 정당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국민적 지지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배후에 도사린 정치성, 한보그룹과 비교하여 형평을 잃었다는 점 때문에 정부에 대한 평가는 반감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정부와 재벌의 관계는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정세력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돕거나 벌 주는 관계를 경제민주화에 걸맞는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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