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마다 기업마다 촌지 주지 말라"
  • 이효성(성균관대 교수·언론학) ()
  • 승인 199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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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사부 기자단 촌지 사건으로 언론계에도 정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언론사는 촌지를 배격하고 윤리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사건에 연루된 자사 기자들을 징계하고 자사 기자들의 기자단 탈퇴를 선언하였다. 일선기자들은 기자단에 의해 계획되었던 해외여행을 취소하고 기자단 해체 내지는 그 운영개선을 결의하고 윤리강령의 제정·선포를 서두르는 등 자숙하는 빛이 역력하다. 또 기자협회와 언론노동조합연맹은 사과성명을 내고 기와에 벌여오던 자정운동에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하여 회원들에게 자정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런 조처나 움직임만으로 촌지가 근절되기는 어렵다. 촌지근절을 위해서는 보다 더 중요한, 그리고 보다 더 근본적인 몇가지 조처가 선행되어야 한다.

 촌지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취재기자들에게 취재비를 충분히 지급하는 조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언론사들은 지금까지 기자들의 취재비를 충분히 지급하지 않았다. 특히 해외취재에 드는 경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기자를 대동하는 측에 부담시켜 왔다. 해외특파원 중에는 주재지에 방문하는 한국의 유력한 정치가나 기업가들이 주고 가는 촌지로 경비를 충당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런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언론계의 자정을 아무리 외쳐봤자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촌지근절을 위해서는 또 간부들의 자기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촌지는 일선기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간부급에게는 더 많은 촌지가 전달된다는 사실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 번 수서사건 때도 간부들에게 거액의 촌지가 전달되었다는 설이 나돌았다. 심지어는 일선기자들이 자신이 받은 촌지의 일부를 간부에게 상납하는 관행도 있는 모양이다. 일선 기자들의 촌지수수행위를 감시해야 할 간부들이 외부로부터 더 많은 촌지를 받는다면, 또는 부하들로부터 상납을 받는다면 어떻게 부하들의 촌지를 감시하고 그들을 도덕적으로 지도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촌지의 근절을 위해서는 간부언론인부터 자정해야 한다. 윗물이 맑지 않으면 아랫물은 맑고 싶어도 맑을 수가 없다. 언론계의 정화를 위해서는 간부선에서 구체적인 자기정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는 그런 움직임이 없는 듯하다. 다만 편집인협회에서 언론인의 자정운동에 최대한의 노력을 쏟고, 기자실과 기자단의 운영이 개선되어야 하고, 언론사의 운영책임자들은 취재의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막연한 내용의 성명을 한 차례 냈을 뿐이다.

모처럼 마련된 언론 정화의 기회
 촌지의 근절을 위해서는 촌지를 주지 않는 풍토의 조성도 매우 중요하다. 주로 관계와 재계로 되어 있는 언론인의 출입처에서는 자신들의 관련사안에 대한 호의적인 보도를 위해 아무런 조건없이 정례적·상례적으로 촌지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촌지가 근절될 수 있으려면 언론인의 출입처에서 언론인에게 지급하는 이런 정례화·상례화된 촌지의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

 관계의 촌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청와대부터, 그리고 재계의 촌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부터 언론인에게 촌지를 더 이상 주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예하 부처와 산하 기업체에서도 일체의 촌지를 금할 것을 명령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런 움직임이 없는 듯하다.

 이러한 선행조처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사회는 보사부 기자단 촌지사건을 계기로 모처럼 마련된 언론계 정화의 기회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아무런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언론계의 정화를 위해서는 언론사와 간부언론인, 그리고 출입처의 보다 더 적극적이 자세가 요망된다.

 다른 부문의 비리와 부정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을 사회적 책무로 하는 언론은 사회의 목탁으로 남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언론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남의 비리와 부정에 편승하고 기생하는 측면마저 없지 않았다. 하지만 보사부 기자단 촌지사건은 언론계 정화의 호기를 제공했다. 비리와 부정에 찌든 우리 사회의 정화를 위해서 먼저 언론을 정화해야 한다. 언론계 정화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이번 기회가 형식적인 구호로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언론계 정화로 이어지도록 우리 모두 관계자들을 감시하고 그들의 성실한 정화노력을 촉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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