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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바그너 즐겨 듣는 은하우주 항해사

스티븐 호킹, 《시사저널》초청·서울대학교 후원 8일 한국에

도쿄·채명석 통신원 케임브리지·진철수 유럽지국장 ㅣ 승인 1990.09.13(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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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임브리지의 대물리학자 스티븐 호킹(48) 교수를 만나고 나면, 소위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해 다시 한번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나의 정상적인 생활’이 얼마나 충실한가, 무엇을 성취하고 있으며 얼마나 뜻있는 것인가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불치의 병 때문에 옷을 갈아입기는커녕 팔목 하나도 들지 못하는 상태이며, 게다가 말도 못하는 호킹 교수의 일상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런던 북방의 대학도시 케임브리지를 찾았다. 그는 뜻밖에도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호킹 교수가 지금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맡고 있는 루카시안 수학교수라는 자리는 헨리 루카스라는 성직자의 뜻에 따라 1663년에 설립된 것으로 1669년부터 3년간 뉴튼이 맡았던 영예로운 교수직이다.

 케임브리지의 응용수학·이론물리학과 건물은 주소가 실버스트리트로 되어 있지만, 좁은 샛길로 굽어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구석진 곳에 있다. 거무스레한 회색 3층 건물로, 하얀 창틀과 빨간 현관문이 간신히 생기를 주고 있다.

 이 건물 1층에 있는 호킹 교수의 연구실은 4평 정도밖에 안되는 방이다. 서가에 책들이 무겁게 가득차 있어 서재 같은 분위기이다. 큼직한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다. 책상에는 가족사진들이 놓여 있고, 아인슈타인의 사진도 있다.

 

포도주 즐기는 음악 애호가

 컴퓨터 화면에는 수없이 많은 방정식이 나타난다. 그것을 바라보며 호킹 교수는 우주의 모든 것을 해명하는 원리를 발견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의 일반이론이라는 극대의 논리와 양자역학이라는 극소의 논리를 통합하여 이른바 ‘대통합이론’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들은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총명한 이론물리학자”로 지목받는 호킹 교수에 대한 기대는 각별히 크다.

 이러한 천재적 과학자가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누가 보아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 병은 미국 프로야구의 타격왕 루 게릭의 젊은 생명을 빼앗아간 병이며, 미국에서는 따라서 루 게릭병이라 불린다.

 몸을 가누지 못해 휠체어에 푹 파묻힌 듯한 모습. 그러나 웃으면 천진난만한 동안이 된다. 그는 밤낮으로 간호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루3교대로 24시간 그를 돌봐주는 간호원팀의 인원은 10명 가량 된다. 이들은 외부 재단의 지원을 받아 근무하고 있다. 외국여행을 할 때도 적어도 2명의 간호원이 수행한다.

 이러한 신체장애에 대해 호킹 교수 스스로는 어떻게 견디는가.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고 하며 병에 대해서나, 병 때문에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되도록 생각을 안하기로 하고 있다. 사실 병 때문에 못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의 생활에는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는 면도 많다. 그는 식사를 즐긴다. 밀가루·설탕 등 피해야 되는 음식도 있지만 매운 인도요리도 좋아 한다. 그는 포도주맛을 잘 알며 또 즐겨 마신다. 그는 음악 애호가이다. 특히 바그너의 오페라를 좋아하며, 말러의 음악도 자주 듣는다.

 기상 시간은 7시나 8시지만, 연구실에 나가는 것은 11시경이 된다. 출근 준비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또 에너지 축적을 위해서도 아침식사는 푸짐하게 많이 드는 편이다. 점심은 대개 연구실에서 들지만, 매주 한 번씩은 박사과정을 밟을 때부터 속해 있는 키스칼리지에 가서 전문분야가 다른 대학 동료들과 함께 든다. 아침시간에는 대개 서신·내왕을 처리하며, 논문의 집필이나 강의준비 등은 대개 오후에 하게 된다. 퇴근시간은 일정치 않지만 대개 저녁 7시가 지나서야 연구실을 떠난다.

 

학생보다 더 ‘떠들썩한’ 교수

 그의 연구실은 얇은 문 하나만 열면 교수·학생들의 휴게실 겸 대화실인 코먼룸(common room)과 통하게 되어 있다. 그 문에는 “교수님께서 주무시는 중이니 조용히들 할 것”이라는 작은 경고문이 붙어 있다. 물론 농담이다. 호킹 교수의 여비서 수메이시에 의하면 사실 떠들썩하기는 호킹 교수쪽이 더하다. 열린 문을 통해서 음성합성기의 말소리가 밖에까지 크게 들릴 때도 많고, 티타임 등에는 학생들과도 왁짜하게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의 연구실 벽에는 큼직한 마릴린 먼로 사진이 2장이나 붙어 있었다.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를 바탕으로 영·미·일 3국 합작 텔레비전용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데 참고자료로 사진을 떼어 가지고 갔다는 것이 먼로 사진 행방에 대한 호킹 교수의 설명이다.

 기자는 한국을 방문하는 목적과 의의에 관해서 물었다. “나는 못 가본 곳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또 사람들이 과학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갖도록 설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고 그는 대답했다.

 기자는 또 한국에 관해서 아는 것이 많으냐고 물었다. “주로 한국전쟁과 올림픽대회에 관해서 알 뿐이다.” 이처럼 그의 답변은 간략하고 투명하다. 아무런 꾸밈이 없어 오히려 호감이 간다.

 한국에 남길 그의 메시지는 무엇이 될 것인가? 강연 내용도 중요하고 과학에 대한 계몽도 필요하지만, 신체의 부자유라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우주의 진리를 탐구하는 최고의 머리를 가졌으면서도 오만하지 않은 호킹 교수의 밝고 너그러운 인간상 자체에서도 배우고 느낄 것이 많을 듯하다.

 일본에 도착한 호킹 박사의 모습은 건강해보였다. 여동생 헙튼, 던 조교, 인도인 남성간호사, 간호부 등 일행 4명과 함께 9월1일 나리타공항의 도착로비에 나타난 호킹 박사는 12시간에 걸친 긴 여정의 피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생기에 찬 모습이었다.

 마중나온 일본측 관계자와 보도진이 힘찬 박수를 보내자 잔잔한 미소로 답하는 그의 눈빛에는 먼 이역땅 일본과 한국을 방문하는 설레임이 가득찬 듯했다.

 박사를 위해 특별히 개조한 웨건을 타고 공항을 출발한 일행은 숙소인 오쿠라호텔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이어 호텔방으로 날라온 점심을 든 호킹 박사는 12시간의 비행, 런던~도쿄간 8시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매우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그는 간호원이 잘게 썰어주는 고기를 천천히 남김없이 먹었다.

 호킹 박사로서는 이번이 두번째 일본방문이 된다. 그는 지난 75년 ‘호세라’ 회사가 제정한 ‘이나모리 상’의 심사위원으로 교토를 잠시 다녀간 적이 있다. 그 당시에도 박사는 전신마비의 몸에 휠체어 모습으로 나타났으나 언어소통에는 그다지 큰 불편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언어기능마저 상실한 채 그 모습을 보였다.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와 같은 간단한 회화는 미리 컴퓨터에 입력이 되어 있어 금방 응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입력이 불가능한 일반대화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힘이 들어 보였다. 전문적인 학술강연과 같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한다. 지난 5월 호킹 박사의 하버드대 강연에서는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청중들이 큰 실례를 범했다고 수행원 던 조교가 일러줬다. 청중들의 질문에 호킹 박사의 답변이 늦어지자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호킹 박사는 간호원의 도움없이 스스로 휠체어를 움직인다. 의자 밑에 싣고 다니는 2개의 배터리 동력으로 컴퓨터와 휠체어를 조작하는 것이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과 집 사이를 왕복할 때에도 혼자 힘으로 휠체어를 운전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숙소인 오쿠라호텔에서 계단이나 경사진 곳을 빼놓고는 간호원의 도움없이 스스로 휠체어를 조작했다.

 

방문 일정 스스로 협의하는 정력가

 그는 모든 의사결정을 그 스스로 내렸다. 점심식사 후 로비의 카페에 나타난 호킹 박사는 무려 3시간에 걸쳐 일본측 관계자와 일정을 협의하는 정력을 보였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자신에 관한 일은 자신이 직접 처리한다는 태도였다. ≪시사저널≫이 요청한 여동생 헙튼 인터뷰에도 그의 허가가 필요했으며 본지 사진부장의 사진촬영 때는 촬영장소를 스스로 골랐다.

 그는 뒷날인 일요일에는 쇼핑과 연극관람, 외식 등을 즐기는 여유를 보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연극 ‘가부키’를 1시간 정도 관람한 호킹 박사 일행은 근처의 양식집에 들러 스테이크를 즐기기도 했다.

 ≪시사저널≫ 초청, 대한항공 협찬으로 한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일본에 들른 호킹 박사는 바쁜 일정을 정력적으로 소화해가고 있다. 4일부터 7일까지는 도쿄대학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천문학회에 참석하여 토론자로 나서며, 6일에는 도쿄대학의 야스다강당에서 전문가를 대상으로 강의한다.

 그는 또 특별히 시간을 할애하여 5일에는 일반강연회를 갖기도 한다. 〈아사히신문〉이 주최하는 이 강연회에는 정원 5백명에 1만여명이 참가를 신청,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NHK는 이 강연과 호킹 박사의 일본체재중의 이모저모를 밀착 취재하여 방영할 예정이다. 〈은하우주 오디세이〉라는 1시간짜리 특별프로를 마련, 호킹 박사의 지금까지 업적과 이 강연내용을 방영해 일본 전국의 안방에 한편의 감동적인 인간드라마를 새롭게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또 정규 저녁뉴스프로인 〈뉴스21〉에서는 호킹 박사 단독 인터뷰를 10분간에 걸쳐 방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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