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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시비’ 휘말린 변협 회장

박종철 은폐조작사건 관련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 무죄” 변론이 화근

김선엽 기자 ㅣ 승인 1990.09.27(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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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6일 낮 12시경. 서울민사지법 변호사분실(서울 서초구 서초동)에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이 제5차회의 참석차 모여 있었다. 보통 한달에 한번꼴로 열리는 인권위원회 회의의 참석률은 그리 높지 않은 게 상례였으나 이날은 좀 달랐다. 총인원 30명 중 23명이 모습을 나타내 지방거주 위원을 제외한 거의 모두가 참석한 좋은 성적이었다.

늘상 그랬듯이 회의는 이미 정해져 있던 의제순으로 진행됐다. ‘진정서 처리건’ ‘검찰의 고문실태에 대한 보고’ ‘인권보고서 작성문제’ 등 안건에 관한 논의가 별탈없이 마무리됐다. 난제는 마지막으로 미뤄두었던 ‘특별사안’이었다. 회의일정 통보자가 연락과정에서 개개인에게 “꼭 참석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바로 이 특별사안에 대한 중지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특별사안이란 “대한변협회의 朴承緖회장이, 朴鍾哲군 고문치사사건과 관련하여 기소된 姜玟昌 전 치안본부장의 항소심 변론을 맡아 무죄판결을 받아낸 데 대해 인권위원회에서 어떤 식으로 의사표명을 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작은 인권’에 무릎꿇은 ‘큰 인권’

박회장은 柳鉉錫위원장에게 해명기회를 요청, 이례적으로 회의 시작 전 회의장소에 나타나 이미 입장을 밝힌 뒤였다. 그의 발언요지는 “88년 4월, 당시 항소심에 계류중이던 강피고인측 관계자 중 잘 아는 사람이 찾아와 변론을 부탁해 변호사의 윤리상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박회장은 특히 어떤 형사 피의자나 피고인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고 변호사는 이들을 변호해줄 의무가 있으며, 사건을 맡은 시기도 변협 회장(임기2년)에 당선된 89년 2월 이전이라는 점을 들어 자신의 입장을 이해시키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인권위원회 변호사들을 ‘전혀’ 설득하지 못했다. 오히려 ‘박종철사건’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를 중시하여 전체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 인권위원들의 움직임을 호도하려 한 자기 변호로 비쳐졌을 뿐이었다. 그 때문에 ‘특별사안’에 대한 논의는, 박회장의 강씨 변호가 인권문제를 외면한 것일 뿐 아니라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직후부터 진상규명을 위해 애써온 대한변협의 공식입장과 정면 배치되므로 박회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졌다. 즉 ‘변론권’과 ‘대한변협 회장이라는 공인으로서의 의무’ 중 어느쪽이 우선이냐 하는 것은 논외였고 주로 ‘책임을 묻는 방법론’에 대해 의견이 교환됐다.

이 과정에서 “문제제기 자체로 경고를 한 셈이니 이 정도로 끝내자”는 쪽과 “이왕 칼을 뽑았으니 사퇴를 관철시켜야 한다”는 쪽의 논쟁이 벌어졌다. 결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만장일치로 비교적 쉽게 내려졌다. “박회장에 대해 사퇴를 권고하고 인권위원회 위원 30명 전원도 사퇴한다”는 결의였다.

이같은 변협 인권위원회의 결의는 안팎으로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변협소속 몇몇 인사는 “한 가정으로 치면 아버지 뻘인 회장에 대해 그런 식으로 공격하고 망신시킬 수가 있느냐”며 흥분했고, 일반 국민들은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死因은폐조작 관련 피고인 변호를 변협 회장이 맡았다는 사실에 또한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일부 원로변호사들이 인권위원회의 결의에 대해 “변협 회장이란 공인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맡았다는 점은 아쉽지만 변호행위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변론권에 대한 도전행위”라고 반박하고 나섬으로써 파장은 더욱 커졌다.

인권위원회 변호사들은 변협이 박군사건 발생 직후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발표한 일련의 성명들만 봐도 박회장의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다음은 변협이 발표했던 성명내용 중 강씨와 관련된 부분 중 일부이다.

“사건발생 직후 박군의 사인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허위발표를 한 장본인이었고, 더욱이 치안총수의 신분으로 고문경관의 가족을 직접 접견하여 거액의 위로금까지 전달한 바 있는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까지도 책임범위에서 제외시키고 심지어는 마치 동인이 범행은폐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상식에 반하는 발표를 한 것에 대하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87.5.30)

“박종철군 고문살인사건의 부검의 黃迪駿박사의 진술에 의하여 이제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을 비롯한 당시 경찰 수뇌부의 사건진상 은폐에 따른 죄는 더이상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히 드러났다…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 등의 소행은 특수직무유기죄를 구성함에 법률상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그밖에도 수사결과에 따라 직권남용, 공무집행방해, 기타 제반 형벌법규 저촉 여부가 가려지게 될 것이다.”(88.1.14)

인권위원회 ㅂ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했다. “형사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보호는 전체국민의 인권보호에 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번 사건처럼 고문과 관련된 피고인의 인권과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이 상충할 때 과연 어떤 쪽을 보호해야 하는가는 명백하다. 고문이 근절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권보호가 가능할 것이가. 더욱이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해온 단체의 수장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을 ‘열성적’으로 변호해 항소심에서 무죄판결까지 받아낸 행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변호를 맡을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을지 모르나 그 또한 참작사유는 될지언정 면책사유는 될 수 없다.”

인권위원회의 또다른 ㅂ변호사는 “일부의 주장처럼 일개 변호사로서의 의무에 충실하고 싶었다면 변협 회장선거에 나서지 않았어야 하며 그후에라도 회장직을 사임했어야 옳다. 그랬다면 아무도 강피고인의 변호를 문제삼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회장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면 개인 변호사의 의무보다는 회장으로서의 의무를 생각, 이 사건에서 손을 뗐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박회장이 회장직을 맡으면서 자신들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인권문제를 강조해놓고 지금까지 인권위원회 활동을 지원하기는커녕, 견제하는 등 오히려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온 점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변호사 1백명 “사퇴 안하면 서명운동”

그러나 타협에 의해 조용히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이 이렇듯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이며 외부로 터져나온 이유는, 인권위원회 변호사 대부분은 물론 박종철군 가족들까지도 박회장이 강씨의 변호를 맡은 사실을 강씨 등에게 무죄판결이 날 때까지 그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외의 무관심은 강 전 치안본부장이 이미 1심(88년 3월)에서 징역 8월,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유죄로 사건이 마무리될 것을 거의 의심치 않았던 데서 비롯됐다. 무죄가 선고된 항소심 공판에 박종철군 가족이나 친지가 1명도 참석하지 않았던 사실이 이번 재판에 이들이 얼마나 ‘안심’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박회장이 강씨의 변호인이라는 사실은 박종철군 가족에 의해 별도로 제기된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실로 우연히 알려졌다. 국가와 함께 일부 손해배상의 책무를 지고 있는 강피고인측에서 제출한 자료(일기장 공개로 강씨 등의 구속에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 당시 박군 사체 부검의 황적준박사에 대한 증인신문조서)를 검토하던 ㅎ변호사가 그때서야 비로소 박회장이 강씨의 변호인이라는 ‘기막힌’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사실은 인권위원회 변호사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는데 이때가 지난 7~8월경. 강씨 등에게 무죄판결이 내린 선고공판(8월17일)이 임박해서였다.

박회장은 황박사(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1과장)를 신문하면서 ‘실력’을 발휘, 진술을 거부하거나 번복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공소내용의 부실성을 지적하는 등 재판부가 무죄판결을 내리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발생 당시 경찰은 박군이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심장쇼크사쪽으로 사인을 몰아갔다. 그러나 황박사는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를 배제할 수 없다는 부검소견을 밝혔고, 강 전 치안본부장을 비롯한 경찰수뇌부가 자신을 협박· 회유했다는 사실 등을 적은 일기장을 공개, 강 전 치안본부장 등이 구속된 바있다. 박회상은 항소심 제2회 공판에서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 황박사로부터 강 전 치안본부장이 직접 사인을 은폐하도록 지시하거나 부탁한 적이 없었다는, 1심때와는 다른 진술을 끌어냈고 이에 재판부는 강씨의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로선 황박사의 진술번복 자체도 수수께끼지만 어쨌든 박회장의 ‘활약’은, 사건 당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강씨 등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던 변협의 노력을 무색케 한 행동으로 치부되고 있다.

인권위원회 소속 ㅇ변호사는 “인권위원회 위원들이 의사를 표명하고 모두 사퇴한 만큼, 인권위원회는 이 문제와 관련해 더 이상 집단행동을 주도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임권고는 강제력이 없으므로 박회장의 도덕적인 결단만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변협 회장후보 추천권을 갖고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도 지난 9월10일 총회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으나 일단은 박회장에게 심사숙고할 시간을 주자는 쪽으로 결론지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13일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1백여명이 ‘대한변협의 인권옹호기능강화와 박승서 변협 회장 사퇴촉구를 위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을 내고 박회장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서명운동을 시작하겠다며 다시 포문을 열었다. 반면 14일 열린 대한변협 상임이사회 회의에서는 장시간에 걸친 토의와 투표 끝에 “사임 이유가 되지 않는다”며 사퇴반대 결론을 내려 파문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기미다. 박회장은 지금까지 취재에 일체 응하지 않은 채 공식적인 의사표명을 보류해왔으나 14일 회의시작 전 “이사회 논의결과에 따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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