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변화‘선봉에 선’젊은이들
  • 편집국 (sisa@sisapress.com)
  • 승인 199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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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스통신> 이완 자하르첸코 서울지국장 특별기고

 남북한 해빙기를 맞아 북한 내부의 변화가 우리의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북한이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다는 조짐은 여러 군데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조짐 가운데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변화는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변화하고 있는 북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러시아연방 <타스통신> 서울지국장으로 최근 부임한 이와 자하르첸코씨의 기고를 통해 소개한다. 모스크바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후 평양에서 어학연수를 한 바 있고 87년부터 4년간 <타스통신>평양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이완 자하르첸코씨가 한국어로 쓴 기사를 그대로 게재한다. <편집자>

 내가 처음으로 평양에 가본 것은 1982년이었다. 그 때에 김일성종합대학(김대)에서 6개월 동안 한국어 실습을 하고 있었다. 5년 후 다시 북한에 타스통신사 특파원으로 갔을 때는 많은 것이 완전히 변했다. 우선 평양거리에서 외국인이 길을 물어볼 때면 시민들이 옆으로 비켰던 것이 지금 겨우 없어졌다. 또한 10년 전에는 외국인을 동물원에서 전시되는 이상한 짐승인 듯 노려보았지만은 최근에 와서 북한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아무런 주위를 돌리지 않는다. 이북이 변하고 있는 것은 젊은이들의 생활에서 잘 보인다.

 실제로 변화는 평양에서 진행된 제13차 전 세계청년학생축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그 국제적인 행사는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탄 같은 역할을 했다. 평양에 사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언어로 말하며 서로 다른 노래를 부르고 그만큼 자유롭게 행동하는, 동갑의 얼굴이 다른 다채로운 군중을 처음으로 가까이 볼 수 있었으니까.

 전혀 다른 세계와의 이상과 같은 접촉은 북한을 외관상의 변화라도 하도록 만들었다. 신문에도 젊은 사람들이 반짝이는 나들이옷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글이 나왔다. 그렇게 되어 그들은 자기의 옷은 물론이고 여자들의 화장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화장품은 외국제품뿐인데 평양이나 기타도시에 있는 ‘달러상점’에서만 판매된다.

청바지 유행하고 하드록그룹 출현
 문제는 북한에서 중국과 같이 두 가지 돈이 쓰이는 데 있다. 북한사람들은 일반적인 상점에서 팔리는 상품을 살 수 있는 일반 돈을 노임으로 받고 있다. 그런 일반돈 외에 이른바 ‘파란 돈’이라는 외화와 바꾸는 돈이 있다. 예를 들면 외화와 바꾸는 돈으로 미국 1달러는 약 2원이나 된다. 일반 돈은 외화와 전혀 바꾸지 않는 것이다. 두 가지 돈은 해외와 합영회사에 대한 법이 1984년에 채택되고 북한에 외화가 들어오기 시작한 때부터 있었다. 북한의 ‘모범 도시’인 평양에는 달러상점망이 빨리 넓어지게 외었다. ‘낙원’ ‘대성’ ‘향만루’ 등 큰 백화점뿐 아니라 재일본 교포와 홍콩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작은 상점이 많다.

 이리저리 하여서 북한사람들은 때때로 어디선가 바꾼 돈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최근 2~3년간에 대학생들은 블루진에도 익숙해지고 있는데 사가질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청바지나 진 치마를 남녀가 기꺼이 입는다. 2년 전에 평양신문이 여러 나이의 사람들이 여름에 반바지를 입으면 좋다고 하는 글을 발표한 다음에 평양에 있는 많은 양복점이 반바지 만들기에 봉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외국인들 외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을 보면서 나이가 많은 분들은 비난을 하고 젊은 사람들은 웃기만 했다. 오늘에 와서 반바지는 북한에 유행 옷으로 되고 있다.

 전혀 새로운 현상은 북한 팝음악이다. 평양청년학생축전이 지행되기 전에 북한 신문들은 “조선청년들의 혁명적 정신에 대한 위험이 많은 서양문화”에 공공연히 반대하였지만 바로 그 때에 북한 ‘버라이어티와 디스코그룹’이 북한의 지도자들의 생일에 즈음하며 ‘목란관’ 간부식당 향연에서 평양 주재 외교단을 위해 공연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목란관에서 연주했던 ‘보천보’그룹은 공개적인 무대에 나갔다. 이것은 김정일씨의 배려 덕분에 된 것이었다는 소문이었다. 보천보는 북한에서 아주 빨리 유명하게 되었다. 이 그룹은 디스코나 하드록 및 재즈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음악 스타일을 연주해보이고 있다.

‘휘파람’ 히트하고 사랑詩 등장
 얼마 전에도 북한에 없던 스타일이 현재 푸른 신호가 켜진 길을 노래의 가사에 따라서 걸어갈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 디스코나 재즈형의 노래는 대체로 당과 수령, 친애하는 지도자에 대한 것이다. 내 기억에 따르면 소련에서도 70년대에 록그룹들은 큰 무대에 가는 길이 막혔지만 많은 음악가와 가수들이 자기의 노래를 위한 가사에 정치적이거나 애국적인 내용을 담아야만 공개적으로 연주가 가능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북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 최초의 히트송은 ‘휘파람’이라는 노래였다. 그 노래의 인기는 가수의 훌륭한 목소리와 선율이 아름다운 고조 때문만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 노래는 사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북한에서 남녀 사이의 사랑에 대한 최초의 노래였다.

 “어젯밤에도 불었네 휘파람휘파람/벌써 몇 달째 불어네 휘파람휘파람/혁신자의 꽃 안고서 휘파람 불면은/복순이도 내 마음 알리라 알아주리라”

 사랑을 주제로 한 테마는 시에도 나타난다. 이런 시는 예로 91년 7월7일자<로동신문>에 나온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이 신문에 강원도사로청위원회 김홍규 실장이 보내온 다음과 같은 시를 보자.

 “파도소리 정다운 백사장에서/운전공처녀는 기다린 다오/오늘 계획 넘쳐하고 만나자던/제련공 그 총각을 기다린 다오/아직은 가슴속 말은 못해도/ 운전공처녀는 기다린 다오/언제나 일 잘하고 마음씨 고운/제련공 그 총각을 기다린 다오/백사장에 달빛이 내려앉아도/기다리는 처녀 마음 섭섭지 않아/오늘도 꽃다발 받아 안고 올/그 총각 그리며 설레인 다오.”

 예술의 신경향이 출현한 것은 북한사람들이 외국문화에 대한 지식을 점점 갖는 것과 함께였다. 소련의 유명한 여가수 알라 부가초바가 두 번이나 평양에 가서 만수대예술극장과 2 ·8문화회관에서 공연했다. 평양의 제일 큰 극장인 만수대무대에서는 지난여름에 쇼야 그룹을 비롯한 헤비메탈 스타일의 4개 일본 록그룹도 공연했다. 부가초바와는 달리 일본 그룹들은 북한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았지만 ‘쇼야’의 멤버들은 그들의 스타일대로 ‘여자는 꽃이 라네’란 북한의 인기가요를 불렀을 때 관람자들의 반향이 열렬했다고 나에게 전했다.

외국 록그룹에 열광, 디즈니 만화도 즐겨
 음악 외에 새 세대의 또 하나의 신경향은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를 비롯한 외국 아동영화가 텔레비전에 상영된 것이다. 금년에 북한사람들은 찰스 채플린의 이름을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는데 그의 영화는 하나도 못 봤다. 텔레비전 아나운서는 그 유명한 영화예술가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면서 채플린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지지하였다고 말했다. 또한 정말 이상한 것은 평양청년학생축전 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영화의 텔레비전 상영이었다.

 북한에서도 새 세대가 자리 잡고 있고 새 사람들이 여러 분야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내가 보기에 국가 및 당 간부의 일부는 북한이 변화할 필요성을 잘 알아서 지금 동유럽 국가 및 소련과 같은 위기로부터 피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면할 수 있는가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중국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언제 어떻게 시작할까. 이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내가 중국에 유학했던 한 북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바로 다음과 같은 의견을 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국에서 공부 했던 북한 유학생들은 천안문광장사건 때 시위에 나온 북경 학생들의 민주 요구를 전적으로 지지했으나 그런 태도를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표명할 수는 없었다.

 북한은 변하고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 변화과정에서 젊은 사람들은 앞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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