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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은 천황의 신민”

春園 李光洙 육필서한 입수…창씨개명 직후 日 언론인에게 심경토로

편집국 ㅣ 승인 1992.02.06(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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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春園 李光洙(1892~1950)가, 창씨개명이 단행된 다음날인 1940년 2월12일 이름을 가야마 미쓰오(香山光郎)로 바꾸어 신고하고, 바로 그날 일본에 있는 언론인에게 창씨개명을 하게 된 동기와 그 심경을 토로한 육필서한이 최근 발견되었다.

 金鍾旭씨(단국대학교 교사편찬실 간사)가 일본을 통해 입수한 이 두 통의 편지는 두루마리 한지에 일본어로 쓰여진 것으로 수신인은 춘원의 ‘대부’였던 일본의 평론가이며 언론인인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1863~1957)이다. 춘원에게 “내 자식이 되어다오”라고 말한 바 있는 도쿠토미는 일본의 대표적인 황실중심주의 · 국수론자로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경성일보〉와 〈매일신보〉 창간 사업을 총괄지휘했으며 태평양전쟁 당시에는 ‘대일본언론보국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문단에서는 “춘원 50세 이전에 죽었다면 그에 대한 사후의 평가는 지금과 전혀 달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 독립운동가 사상가로서의 찬란했던 그의 삶은 바로 이 편지에서 나타나 있듯이, 이광수에서 가야마 미쓰오로 변신, 친일파가 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춘원에 대한 평가는 춘원의 생애와 문학을 분리해서 보려는 축과, 둘을 하나로 보려는 견해로 나뉘면서 찬사와 비난이 엇갈린다. 이 찬사와 비난 사이에서 지금까지 그의 생애 특히 문학은 본격적인 연구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이 편지는 춘원이 태어난 지 꼭 1백주년이 되는 해에 발견, 공개되는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구성된 ‘춘원탄신1백주년기념사업회’(회장 安秉煜 숭실대 명예교수)는 춘원의 생일인 3월4일을 전후해 기념강연회와 기념관 건립 추진, 전집 발간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칠 계획으로 있다. 또한 《문학사상》 2월호는 특집 ‘춘원문학의 어제와 오늘’에서 이광수문학에 대한 평론가들의 비판과 찬사, 그리고 북한의 최근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을 다루고 있어 춘원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두 편지의 전문을 옮기면서 《이광수와 그의 시대》(전 3권)를 펴낸 바 있는 문학평론가 金允植씨(서울대 교수 · 국문학)의 해설을 싣는다.〈편집자 주〉

“야마도와 조선 양 민족은 一家가 되어야”
 오늘 청쾌루(당시 도쿠토미 소호가 머물고 있던 일본의 한 온천지--이하 편집자 주)에서 보내주신 선생(소호)의 엽서를 반갑게 받아보고, 따뜻한 정에 감격할 따름입니다.

 지난 겨울 〈경성일보〉 지상에 ‘무불옹(초대 〈경성일보〉 사장인 아베 요시이에의 호)을 생각함’이란 한편의 글을 실은 적이 있습니다. (1주일 간 연재됨) 이 글의 후반은 선생(소호)을 생각한 것입니다. 언젠가(1935년) 동경에서 자동차를 같이 타고 국민신문사 앞을 지나갈 때 선생께서 “(조선에서의) 내 자식이 되어다오”라고 하신 말씀을 들은 지 벌써 5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선생의 높으신 부름에 부응하게 되었습니다.

 민우사에서 선생께서 친히 문하생(춘원)의 손을 잡고 “감옥에 들어가지 말고(독립운동 하지 말고) 文章報國에 정진하라”라고 간유하셨지만 開悟의 기회가 성숙되지 않은 채 소화 12년(1937년) 6월 독립운동 혐의(수양동우회 사건으로 島山 安昌浩 등 1백10여명의 동지와 함께 검거됨)로 검거되어 8개월 동안 영어의 몸이 되었으나 중병으로 보석 출옥하였습니다. 지난 11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검사의 공소로 말미암아 이번에 또다시 피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옥중에서 병을 앓으면서 반성과 심사숙고의 기회를 얻어, 조선민족의 운명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조선인은 이제부터 천황의 신민으로서 일본제국의 休戚(평안과 근심)을 떠맡는 동시에 그 광영을 亨受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國民修業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조선인이야말로 天皇中心主義(소호가 주창하는 천황중심주의를 말한다. 즉 천황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국가주의, 해외 침략주의 정책을 실현,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한다는 국수주의적 사상이다)로 나아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천황과 맺어짐으로써만이 야마도(大和)와 조선 양 민족은 一家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조선의 올바른 민족운동은 황민화의 한 길만이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다행히 옛 역사와 문화, 그리고 血液의 교류는 이를 바로 인식함에 있어서나, 혹은 적당한 정치적 지배아래서나 양 민족의 동일 국민화는 실로 자연에의 복귀처럼 보여 홀가분한 느낌마저 듭니다.

 紀元節(2월11일 · 일본 천황의 시조 신무천황의 즉위일로, 일제는 이날을 기해 창씨개명을 단행했다)부터 조선인의 창씨제가 실시되어 내지인 씨명으로 고치는 자유가 인정되었습니다. 문생은 황송하옵게도 천황의 御名의 讀法을 본받아 가야마 미쓰오(香山光郎)라고 창씨개명하여 오늘 호적계에 신고했습니다. 이로써 문생의 심회를 살펴보셨을 줄 압니다. 재판 진행을 거스르기(항소) 어렵고 아울러 아직 병이 낫지 아니했을 뿐만 아니라 刑期를 남겨두고 있는 만큼 이 생명 이제부터 문장보국에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문예상(춘원의 창작집 《가실》이 모던닛퐁사가 제정한 예술상을 수상했다. 도쿠토미가 이를 격려하는 편지를 보내와 춘원이 답장하는 것으로 보인다)은 기쁘기는 하오나 부끄럽사옵니다. 더욱 건강하게 지내시고 朝鮮靑年 讀本 부디 敎示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草草不宣(충분히 다 말하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한문투의 편지를 끝에 덧붙이는 말). 소화15년(1940년) 2월12일 가야마 미쓰오(李光洙) 再拜 蘇峰선생 賜鑑

“일본인과 조선인은 본시 같은 뿌리”
 “일본인과 조선인은 본시 같은 뿌리의 민족이다. 소아를 저버리고 대의를 위해 죽는다면 어찌 흔쾌하지 않으리오”라고 (도쿠토미 소호가) 하신 말씀을 공손한 마음으로 받고 곧 책상 앞, 고개를 들면 바로 보이는 벽에 걸어놓았습니다.

 수년 전에는 “하늘이 나와 같은 재목을 낳았으니 반드시 쓰임이 있으리라”(天生我才 必有用)라는 글귀를 주셨는데 이 글과 함께 문생은 이를(일본인과 조선인은…) 일생의 보배로 간직하려 합니다. 귀하의 恩誼 오직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어떤 날인들 잊으리오라고밖에는 다른 드릴 말이 없습니다.

 3월 중 상경(東京)하게 되면 찾아가 뵙고 다시 깊은 감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다시 뵈올 때까지 건강히 계십시오. 초초불선. 소화 15년 2월19일 가야마 미쓰오 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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