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만 잘하면 선거비용쯤이야”
  • 강철규 (서울 시?대 교수 · 경제학) ()
  • 승인 1992.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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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과 대선 등으로 선거비용이 많이 들 것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그러한 논리의 대부분은 선거 비용 혹은 부작용만을 강조하여 마치 선거는 나쁜 것이 아니면 필요악인 것처럼 몰고가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우선 입후보자들이 쓸 비용을 합계해 보면 추정기관에 따라 3조원에서 20조원까지 들 것이라고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소비성 지출이기 때문에 국민저축이 그만큼 줄어들고, 그 결과 투자재원이 부족하여 기업활동이 위축되기 때문이다. 자금압박을 받는 기업의 금융비용이 늘어나고 그것은 생산비 면에서 물가상승 요인이 된다. 기업이 통화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면 이는 통화증발 압력이 되어 수요 면에서 물가상승 요인이 된다. 전국민이 선거열품에 휩싸이게 되면 향응과 소비성 지출이 늘어 선거 과소비가 발생한다. 당선자는 선거비용을 보상하려 할 것이므로 선거후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기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돈 안쓰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실제로 과거 경험을 보면 선거 전 2개월 동안 1% 포인트 안팎의 총통화 증가율 상승이 잇었고 그 결과 물가가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심상달 연구원이 분석한 <선거의 거시경제효과>에 의하면 올해 2/4분기와 4/4분기의 본원통화 증가율이 다른 분기에 비해 3%포인트 정도씩 높아질 예상이고, 그 결과 소비자물가가 선거가 없었을 때에 비하여 금년 중에 3.6%가 더 오르고 내년에는 3.7%가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였다. 투자는 금년 선거로 3.4%가 둔화, 생산은 0.3%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선거 비용은 그뿐만이 아니다. 선거에 동원되는 인력이 수십만명에 이를 것이고, 그 때문에 기업의 생산직 근로자 인력난은 더욱 가중되고 임금상승 압력도 거세어질 것이다.

정치가 제구실하면 효과는 선거비용의 몇배
선거는 나쁜 것인가. 위의 비용만 생각하면 선거는 백해무익하다고 보인다. 그러나 나는 선거를 위하여 필요한 만큼의 비용이 드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제값을 하여 국민경제에 이익을 가져다 주면 비용이 들어도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용이 없는 개선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는가. 정치가 제값을 못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선거로 선출된 대표들이 일정한 정치적 기능을 하게 되면 그것이 경제에 큰 이익을 가져다 준다.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는 바른 정치는 첫째 국가장래에 관한 설득력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이에 부응하여 잠재력을 배양, 발휘시키는 일이다. 한국 또는 한국경제의 미래상을 제시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희망을 가지고 생업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약간의 경제적 부담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둘째는 자유경쟁에 의한 기업활동 여건을 마련하여 장기투자가에게 신뢰성을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정치인은 공정거래 질서확립을 위한 규칙을 마련하고 이에 의한 엄정한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해주며 이해집단의 요구를 조정하는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는 행정부와의 협조로 합리적인 경제정책을 펼쳐 국민생활을 안정시키고 사회복지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금융실명제로 깨끗한 풍토를
정치가 잘 되면 이런 이익이 국민경제에 주어진다. 그 효과는 앞에서 열거한 선거비용을 몇배 능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선거나 공천 제도, 정치자금법 등이 이와 같은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낡은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잇다.

현재의 공천제도로는 정당이 국회를 지배하며 공천권을 가진 보스가 의회를 지배하는 ‘정당독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 예비선거에 의한 후보자 선출이 아니기 때문에 밀실공천 내지는 계파안배형식의 타락한 공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문가를 영입하기 위한 전국구제도는 돈을 주고 의원직을 사는 ‘매직’으로 전락했다. 정치자금도 어떻게 조달되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전혀 밝혀지지 않기 때문에 당선을 위해서는 돈을 많이 쓸수록 유리하다는 풍토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 아래에서 선출된 대표들은 공익보다는 자신들을 후원해준 이익집단을 위하여 정치를 하게 되므로 국민을 안정시키기보다는 혼란으로 몰고 간다.

이러한 것들은 금융실명제 유보와 무관하지 않다. 타락한 공천제도나 선거제도, 정치자금 수수 등은 모두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지 않아 살아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깨끗한 정치, 국민경제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정치의 발전기반도 형성되지 못하고 정치현대화가 늦어지고 있다. 따라서 선거비용의 많고 적음을 논하기에 앞서 정치제도 개혁, 금융실명제 실시를 거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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