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연륜에 뒤처진 작품들
  • 김영태 (시인 · 무용평론가)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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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제 총평… 발레 정체성 못벗어, 한국무용 주제 · 안무 돋보여


올해는 춤의 해이기도 하지만 연중 행사 중에 서울무용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제14회 서울무용제(10월7~28일)는 절반 가까운 단체들이 예선에서 탈락하는 경쟁을 보여주었다.

금년에는 한국무용에 다섯, 현대무용에 둘, 발레에 세개 단체가 참가했다. 무용제 초청 공연은 박명숙의 고구려 건국신화 3부작 끝작품 <황조가>, 문일지가 단장인 국립국악원의 <벼>, 서울예술단 정재만 안무의 <광대의 꿈>이었다.

이정희 안무 <살풀이 아홉>은 80년 <살풀이 하나> 이후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인데 남북분단이 주제이다. 이정희는 그동안 살풀이 연작 무대에서 흙의 친화력, 비디오와 춤의 만남, 모차르트의 <모데토>(축음기와 우산이 나오는 바로크풍의 무대) 등 변주를 시도했다. 이번 <살풀이 아홉>에서 이건용의 창작음악은 매우 돋보였다. 남북분단의 비애는 열조각으로 조립된 형상 테이블에서 춤이 전개되었는데 즉물적인 움직임과 머리에 무스를 바른 화장, 출연자들의 무표정이 남북협상 교착상태를 의인화했다. <살풀이 아홉>은 테이블가를 맴돌던 이정희가 기다림을 끝내고 빗자루로 테이블을 쓰는 것으로 겨레의 비극을 표현했다. 이건용의 타악기 반주가 주효한, 무대 액자를 좁힌 메시지였다.

다채로운 기교가 주입된, 이른바 2인무 3인무의 고난도가 두드러진 작품은 김승근 안무 <나비, 장자(莊子)의 꿈>이었다. 남성 무용수 손관중과 유망주 이은경의 성장이 주목을 받았고,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주제가 다소 버겁다고나 할까 무거웠던 점에 비해, <나비, 장자의 꿈>은 개별 장면의 불연속성을 안무가가 무난하게 끌고 나갔다.

<회귀선> <보이지 않는 문> 수준급

한국무용에선 김말에 안무 <회귀선>, 윤덕경 안무 <보이지 않는 문>이 관객의 호응을 받았다. <회귀선>은 김말애의 독무, 3인무, 군무가 시사하듯 이 땅에 뿌리를 내리는 삶의 항해일지인데 이 작품이 범상치 않은 것은 추상적인 동선들, 문득 전개되며 다가오는 서경(敍景), 그러다가 구심점을 좁히는 춤 호흡(인간의 회기 본능을 표현한다)을 안무자가 능숙하게 다잡았다. <회귀선>이 김말애 춤의 가라앉은 내재율을 관객에게 전했다면, 윤덕경 무용단의 <보이지 않는 문>은 한국춤의 이른바 침채성과 답답함을 과감하게 변형시켰다. ‘문’에 대한 이미지는 관객이 경험한 면역적인 주제로서 양정현의 무대미술이 돋보였고 윤덕경 안무의 변신이 눈을 끌었다.

발레는 작품 모두 발레단의 정체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명희가 안무한 발레 블랑의 <쉴빌레의 입술>은 그리스 신화를 3장으로 다루었다. 조미송이 열연하고 김경철은 보조역에 그쳤지만, 1장 정원의 결혼식 장면부터 지하세계(죽음)의 요정이 출몽하듯 영적 교감이 묘미를 준다. 발레 블랑의 남성 무용수 빈곤에 비해 애지회는 황재원 심무섭 권혁구 등 차세대 재목감과 중견 손윤숙, 그리고 백연옥 같은 예비 스타가 포진한 단체인데, 틀을 못벗고 있다.

<진주>는 스타인벡 원작, 스트라빈스키 곡이다. 원작의 무대를 우리 현실(어촌)로 조명한 번안은 어색했다. 그러나 <진주>는 2인무보다 바닷가의 군무가 김정욱(연출)이 지향하는 고전 발레의 격식을 유지해 주었다.

김계숙이 주연으로 부상한 김종훈 안무 <황금꽃의 비밀>은 지극히 평면적인 무대였다. 표현주의 발레로 요즘의 작품 성향이 변모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김종훈의 안무는 뫼오로시 발레단의 개성을 굳히기 위해서도 수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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