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도읍지 찾는 일본
  • 도쿄 ·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5.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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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후 “도쿄는 위험하다” 의식 확산…부처 이기주의가 ‘천도’ 걸림돌

지금으로부터 72년 전, 일본의 간토(關東) 지방을 강타한 이른바 ‘1차 간토 대지진’은 순식간에 14만2천여 인명을 앗아갔다. 이때 재일 조선인도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에 휩쓸려 6천여 명이 희생됐다.

 당시의 오사카<아사히 신문>은 이 참극이 일어난 직후 ‘제도(帝都) 부흥과 천도론, 국민 다수의 희망을 수용하라’는 글을 실었다. 골자는 ‘현재의 수도를 천재지변 가능성이 적은 교토(京都)로 이전하자’는 것이었다. 또 다른 신문은 ‘도쿄 근교 하치오지(八王子)시 남방의 언덕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주장했다.

 

일제 때 서울 용산으로 수도 옮길 계획 검토

 천도론 논의가 들끓자 당시의 육군 참모본부는 이마무라 킨(今材均) 소좌에게 극비리에 수도 이전 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했다. 히라모토 가쓰오(平本一雄)씨가 90년에 펴낸<초국토의 발상>이란 책에 의하면, 이마무라 소좌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첫째, 도쿄는 지진 및 방공 대책상 수도로서는 부적격이다. 둘째, 수도로서 가장 적당한 장소는 서울 용산 지역이다. 일본은 인구 증가분을 대륙(중국)으로 분산시켜야 하나 강제 이주는 어렵다. 대륙과 일본 열도 사이에 수도를 이전하게 되면 인구 분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때문에 지진 위험도 없고 지리적으로 중간인 서울 용산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

 이마무라 소좌는 이같은 결론을 참모본부에 제출해 육군 참모차장을 비롯한 수뇌부의 승인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지진으로 인심이 흉흉한 터에 천도 계획을 발표하면 혼란만 가중된다는 반대에 부딪혀 이 안은 결국 햇빛을 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안전지대로 수도를 옮기자는 천도론은 그 뒤에도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목소리를 높여 왔다. 5천4백여 인명을 앗아간 이번 간사이 대지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지진 발생으로부터 한달 가량이 지난 지난달 15일, 도쿄 중의원 회관 근처에서는 ‘국회를 지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국회 이전 결의에 따라 93년 3월에 발족한 정부 산하 단체다.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 날 모임의 화제는 주로 지진 문제였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도쿄에 만약 지진이 엄습할 경우 어떻게 이에 대처할 것이냐는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이 조사회의 야소지마 기노스케(八十島義之助)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한신(阪神 · 오사카와 고베) 대지진의 교훈으로서 국회 이전 문제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공유 의식이 형성된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전제하고, 다음 모임에서는 국회를 이전할 대상지를 구체적으로 거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 행정부 이전비용 14조엔

 도쿄는 에도(江戶) 시대에 이미 1백30만 인구를 기록해 세계 최대 도시로 등장했다. 이후 바다를 매립해 거주 지역을 넓혀야 할 정도로 인구가 급팽창해 현재의 상주 인구는 1천2백만 명에 이른다. 여기에 가나가와 · 지바 · 사이타마 등 인근 세 현의 인구를 합하면 수도권 전체 인구는 3천만 명이다. 전국토의 3.6%에 전인구의 25%가 밀집돼 있는 셈이다.

 사람뿐이 아니다. 한 민간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자본금 10억엔 이상의 상장 기업 중 약60%가 본사 기능을 수도권에 설치해 놓고 있다. 이에 따라 수도권의 취업 인구는 전체의 약 30%에 이른다. 부(富) 또한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예를 들어 전국 은행예금 잔고의 85%, 주식 거래 대금의 67%, 은행 대출금의 절반 가량을 수도권이 차지한다.

 일본 국회는 이같은 인구 · 경제 집중 현상을 시정하고, 전국토의 균형 발전을 꾀한다는 뜻에서 스스로 이전을 결의한 상태이나, 당시 이전 시기나 장소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국토청이 91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회의사당과 중앙 부처 청사 등을 이전하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14조엔으로, 일본 연간 예산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국회와 행정부를 옮길 경우 전체 이주 인구는 공무원과 그 가족, 상공업자를 포함해 6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학원 도시 쓰쿠바 시의 3배에 달하는 9천㏊의 면적이 필요하다.

 이전 장소를 둘러싼 대립도 천도 계획에 큰 장애이다. 예를 들어 70년 전 용산 천도 계획을 세울 당시의 육군 참모부는 용산 다음 후보지로 효고 현의 가고가와 평야와 도쿄 근교의 하치오지시를 추천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대지진이 일어난 곳이 바로 가고가와 평야 근처이다. 또 하치오지 시는 도쿄와 너무 가까울 뿐 아니라 인구가 방대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따라 동북 지방의 센다이, 중부 지방의 나고야, 스와 시 등이 대체 후보지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모두 현재의 수도 도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전문가들은 수도를 이전할 경우 도쿄에서 백~3백㎞ 이내가 적당하며, 신칸센이나 리니어 모터카 등 고속 교통시설이 정비된 지역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쿄에 지진 일어나면 총리 관저 ‘통제 불능’

 대지진 이후 새로 나온 안은 ‘3단계 분산론’이다. 도쿄해상연구소 시모가베 쥰(下河邊淳) 이사장에 따르면, 국회나 행정부가 이전하게 되는 것은 빨라야 21세기 초다. 그러므로 언제 실현될지 모를 천도 계획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선 가능한 방법으로 대지진의 위험을 분산해 놓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먼저 총리 관저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무라야마 총리가 집무하고 있는 총리관저는 66년 전에 지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일본 정부는 87년 이 낡은 건물 옆에 새로운 관저를 건설키로 결정했으나, 건설 예정지에 있는 정부 기관의 이전이 늦어져 아직 착공도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도쿄 지역에 대지진이 엄습할 경우 사후 대책을 지휘해야 할 총리 관저가 통제 불능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83년부터 도쿄 근교 다치가와(立川) 시 미군 기지 터에 광역 재해 기지라는 ‘제2 관저’ 건설을 추진해 왔다.

 총면적 1백15㏊에 금년말 완공을 목표로 건설하고 있는 이 기지에는, 총리 집무실을 비롯해 경시청 · 도쿄소방청 · 해상보안청 · 식량 비축 창고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이 기지 수백m 근방에 20㎞에 달하는 활단층이 존재하고 있음을 밝혀져 이곳 역시 대지진이 엄습할 경우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모가베 이사장은 대지진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다음 단계로 재해 지역을 후원하기 위한 ‘제3 센터’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도쿄에서 비교적 가까운 지진 안전지대에 국회나 행정부의 일부 업무를 분산해 놓을 수 있는 제3의 행정 센터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 정부의 한신 · 아와지시마 부흥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그는 내일이라도 수도권에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을 강조하며, 지금 당장 제3의 행정 센터를 건설하자고 촉구한다. 그는 장차 국회의사당을 이 센터로 이전한다면 천도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내다본다.

 대지진의 사후 대책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일본 관료들의 다테와리 행정, 즉 부처 이기주의였다. 국회 이전이나 수도 기능 분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관료들의 부처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수도권 지역에 대지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일본 관료들이 자기 부처의 실속 차리기에만 급급한다면 ‘천재’는 또다시 더 큰 ‘인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도쿄 · 蔡明錫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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