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몫’하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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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의원’ 제조하며 세력 형성 … 뿌리 깊지 못하고 재야의 비판 높아

13대 국회가 후반기로 접어들었다. 13대 국회에는 소위 운동권 출신 인사의 제도 정치권 참여가 두드러졌던 만큼 이들이 정치현실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민자당은 물론이고 야당에 들어간 친구들조차 정치권의 힘에 밀려 운동할 때 가졌던 대의를 지키지 못하고 대중운동에 대한 지원을 조직적으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야권통합을 통한 ‘문민정부’ 수립에 몰두하고 있는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 金民錫(27)씨의 평이다.

 그러나 86년 5ㆍ3인천사태 학생총책으로 구속된 경력을 갖고 있으며 현재 金大中 평민당 총재의 비서관인 ?聖旼(26)씨의 견해는 다르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는 집권세력의 장식물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각 정당이나 의원이 자신의 색깔을 갖지 못하고는 정치권에서 견디기 힘든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이룩하는 데 운동권 출신 의원보좌관들이 많이 기여했다”고 말한다. 국회가 청문회나 국정감사를 통해 국회 본래의 기능을 어느 정도 회복한 데는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이다.

 87년 이후 운동권은 대중노선을 채택, 제도정치를 이용한 재야의 정치세력화에 폭넓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현실 정치권에 뛰어드는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광범위한 ‘전선의 형성’을 목표로 각계각층으로 진출해 자기변신을 꾀하겠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그중 비중있게 다루어진 부문이 정치운동. 정쟁만 일삼던 기존 야당이 정치여건의 변화에 맞춰 정책정당으로 변신을 시도한 것도 운동권이 정치권에 대거 진입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운동권의 정계진출은 크게 두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우선 조직적 입당의 경우이다. 88년2월 대통령선거의 패배로 침체해 있던 평민당에 활력을 불어넣은 98명의 재야인사가 그들이다. 이들은 대통령선거 당시 김대중 후보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낸 사람들이다. 현재 평민연을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개별적으로 입당한 경우이다. 합당 전의 민주당에는 인맥을 통해 개별적으로 정치에 입문한 운동권 출신이 상당수 있었다. 지난 1월 3당합당으로 옛 민주당에서 민자당으로 ‘고구마 줄기에 딸려가듯’ 들어간 이들이 한때 타도의 대상이던 민정계 사람들과 한솥밥을 먹고 있는 것이다.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의원보좌관으로 활동하거나 당의 실무를 맡고 정당의 지역조직을 이용해 청년운동조직을 만들려는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국회 사무처에 등록된 운동권 출신 의원 보좌관은 줄잡아 30여명. 비공식 보좌관까지 합치면 상당한 인원이 현역 의원을 도와 국정에 임하고 있다. 학교별로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출신이 많고 정당별로는 평민당과 민주당에 분포해 있다.

 이들의 활동이 정치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5공청산 청문회에서 ‘스타’로 등장한 의원들의 뒤에 학생운동 출신 비서진용이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이들은 ‘운동경험’을 통해 축적한 현실분석력과 잘 훈련된 정치감각, 발로 뛰는 자세로 의원들의 성실한 의정활동에 단단히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운동권 출신들이 성과를 올리자 민주당은 지난 8월초 70여명의 운동권 출신을 공채해 의원보좌관과 당무 전반에 관한 업무를 이들에게 맡겼다.

 

‘개혁의 목소리’ 계속 높일 듯

 이처럼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내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며 ‘일군의 세’를 형성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뿌리를 깊숙이 내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념운동과 현실 정치운동이 서로 다른 차원의 자세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념운동은 원칙을 중시하지만 정치운동은 개별 사안에 대한 ‘전투적 감각’이 필요하다. 따라서 ‘비합법 운동’을 하는 운동권 동료들로부터 원칙을 잃고 정치에 매몰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실의 부국장대우 부장인 李性憲씨(33ㆍ전 연세대 총학생회장)는 옛 민주당 당원 시절에는 연세대 민주동문회 정치권 지부 실행위원이었지만 민자당으로 옮긴 후 회원의 권리를 박탈당해 후배들과 어색한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씨는 “여권의 생리상 스스로 곪은 상처에 칼을 대지 못하기 때문에 개혁의지가 있는 후배들이 많이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국회가 제기능을 찾고 정치권의 정치적 행태가 좀더 민주화돼야 운동권 출신들이 의회내의 합법적 활동공간을 활용해 ‘개혁의 목소리’를 높여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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