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의 고결함
  • 공병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1994.12.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유시장경제 이론서 〈시카고학파의 경제학〉

현대의 주류 경제학은 두 학파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하나는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미국 동부 지역대학을 중심으로 한 동부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와 법학과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시카고 학파이다.  이들은 현대 경제학의 저류라고 일컬어지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양대 산맥으로, 치열한 논쟁을 거듭하면서 발전해 왔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시카고 경제학은 너무나 생소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미국에서 경제학을 배운 경제학자 대부분이 동부 대학의 전통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내에 나와 있는 경제학 교과서나 서적들은 거의가 이 학파의 원리 원칙과 방법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시카고 학파의 사상이나 방법론을 소개하는 책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시카고 학파의 경제학을 이해할 수 있는 전문적인 학술 문헌을 찾아보기는 더욱 어렵다.  그 결과 한국에서 경제학은 곧 동부 학파의 경제학이란 인식이 깊이 심어졌고, 이것이 주는 폐해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가 늘 만나는 경제 문제들, 예컨대 시장 개방, 시장 진입 문제, 규제 완화, 민영화 문제 따위를 보는 동부 학파와 시카고 학파의 시각과 처방전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 증진을 추구하는 경제 이론
 〈시카고학파의 경제학〉(민음사)의 가장 큰 가치는 시카고 학파의 경제학을 국내 처음으로 체계 있게 정리하여 소개하고, 그것이 오늘의 한국 경제에 어떤 점을 시사하는지 다루었다는 점이다.  대구대 전용덕 교수와 전남대 김영용 교수가 중심이 된 경제학 교수 8명은 자유주의경제학회라는 이름으로 2년 넘게 연구를 계속해 왔다.  92년 8월까지의 연구 결과를 중간 발표한 적이 있고, 그 뒤에도 비정기적인 연구회나 E메일 등을 통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연구를 계속해 왔다고 한다.

 이 연구를 주도한 전용덕 · 김영용 두 교수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이미 〈자유와 시장〉(91년)이란 책에 담아 낸 적이 있다.  우리가 일상사에서 접하는 다양한 경제 문제가 시장 메커니즘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평이한 문체로 소개한 책이었다.  당시 이 책은 관심 있는 사람들 사시에서 잔잔한 화제를 불러모았다.  이번 책은 그때와는 달리 일반인과 전문가 모두를 대상으로 자유시장 경제를 주장하는 시카고 경제학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시카고 경제학은 가격이론이 사람들의 경제 행위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도구라는 믿음과, 자유시장 경제가 자원 배분과 소득 분배를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정부의 시장 개입이 최소에 그쳐야 한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상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면서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보수주의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자유주의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시카고 경제학은 이렇게 자유 경쟁을 강조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매우 냉정한 학풍으로 느껴진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학파는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가장 고귀한 자유의 증진을 추구하는 경제 이론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단히 인간적이고 부드러운 이론이다.

 시카고 경제학은 인간의 행위를 자기의 기호에 따라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볼 수 있는 분석틀을 제공한다.  이같이 사물을 보는 분석틀은 우리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효율적으로 제시해 줄 수 있다.  특히 우리가 고민하는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 시카고 경제학은 일찍부터 동부학파와 다른 독특한 처방을 제시해 왔다.

 그렇다고 시카고 경제학이 만능이란 말은 결코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특유의 오만함으로 주변 학문을 외면해 왔다.  개인의 합리성이라는 가정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는 시카고 경제학 역시, 인간의 본질을 과연 합리성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기 성찰을 좀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진화생물학 · 문화인류학 · 인지과학 등이 제공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지식을 포괄할 수 있을 때 경제학은 현실을 더 정확히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 책의 1 · 2부는 시카고 경제학 일반에 대한 개관과 각론에 해당한다.  3부는 시장과 정부에 대한 시카고 경제학의 철학을 다루었는데, 특히 3부의 끄트머리에는 시카고 경제학이 오늘날 한국 경제에 던지는 시사점과 교훈을 얘기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가지 경제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작은 정부, 경제력 집중, 시장 개방 등 어느것 하나 만만한 문제가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잘못은, 철저한 논리에 근거하기보다는 자기의 이익이나 기호에 따라 사안 별로 판단하고 잇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국민적 정서 ’화 같은 지극히 비경제적인 논리가 문제를 푸는 핵심적인 방식으로 채택되기까지 한다.  이른바 여론을 형성해 가는 경제 전문가나 언론인들조차도 종종 이런 오류를 범하는데, 그 부작용은 엄청나게 크다.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은 공공선택 이론이나 법경제학, 기업 이론 등 시카고 경제학에 포함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분야까지 다루고 있어 독자들에게 약간 혼란을 주는 느낌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젊은 교수들이 시카고 경제학을 재해석한 것은,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