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 ‘방향타’는 있는가
  • 이흥환 차장대우 ()
  • 승인 1995.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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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은 전력 증강 서두르는데 여전히 ‘연안 해군’… 새 해양전략 발등의 불

앞바다에 머물 것인가. 먼바다로 나갈 것인가. 연안 경비정인가, 항공모함인가.

21세기를 코앞에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까를 놓고 한국 해군의 해양 전략에 대한 논쟁이 불붙고 있다. 이제는 한국 해군이 연안 해군(Coastal Navy)에만 머물 것인지, 아니면 대양 해군(Blue Navy)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양 해군론을 지지하는 해군내 일부 전략가들은, 현재의 연안 해군 전략이 지속될 경우 국방은 물론 전반적인 국가 안보 정책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하루빨리 대륙 지향에서 벗어나 원양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학계 일부에서는 이런 주장을 ‘너무 이상적인 야망’이라고 몰아붙인다. 지역 안보 현실과 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주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두 그룹 모두 한국이 해양 안보 전략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냉전 종식 이후 해군력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비 증강 추세에 어떤 방식으로든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교안보연구원 백진현 교수는 “현재는 해양전략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라고 지적한다. 북한의 대간첩선 방어 전략에서부터 새로운 동북아 안보 환경에 대응하는 블루 네이비 전략 구상에 이르기까지 너무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시대 변화 못 따르는 ‘30마일 해군’

해양 전략은 군사적인 측면 외에 해상 운송의 전제 조건인 해로 안보에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특히 원자재나 상품 수출입 등 전체 해외 교역 물량의 99%가 해상을 통해 오가는 우리나라의 경우 해로 안보는 국가 안보 정책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과제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한국은 아직 ‘바다에는 관심이 없는’ 나라 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장 박춘호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해상 교통로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유사시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과 동시에 미국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교통로가 차단되거나 폐쇄될 경우는 준전시 상태나 마찬가지가 되는 셈이다. 유엔해양법이 발효되긴 했지만 평화시의 해양법이 전시에도 제구실을 할지는 의문이다”라고 지적한다.

한국 해군은 전형적인 연안 해군이다. 지상군 위주의 군사력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도 한국 육군의 지상 전략 제일주의와 해군력의 상대적 축소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은 소련과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의 해· 공군력을 필요로 했으며, 한국은 북한의 위협을 막는 지상 전력만 담당하면 된다는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한국국방연구원 전략발전연구부 군사전략실장 노계룡 대령(해군)은 “한국 해군은 항만이나 연안 방어 수준에서 북한의 기뢰와 잠수함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제한적인 대기뢰 전력이나 대잠수함 전력 정도만 갖추었다. 또 미국의 상륙 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소규모 상륙 수송 수단만을 보유하면 충분하다는 것이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의 기본 구도였다”고 말한다. 결국 한국 해군의 수중 전력은, 사정 거리가 긴 함대함 또는 함대지 유도 무기를 보유한다거나 원해(遠海)에서 기동 함대 작전을 할 필요가 없으며, 단지 연안 48㎞권 이내에서의 작전이면 충분하다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이런 탓에 한국 해군은 제한된 전력으로 이른바 ‘30마일 해군’ ‘간첩선 잡는 쾌속정 해군’에 머물러 왔다. 지금도 그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으나, 최근 들어 해양 안보 개념을 강조하고 무기 체계를 전환하려고 구상하는 등 전략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냉전이 끝난 후 나타난 동북아 지역 국가들의 해군력 증강이라는 새로운 변화가 한국으로 하여금 신 해양전략을 모색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동북아 국가 중 해군력 증강 추세가 가장 두드러진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대양 해군화 전략을 공식으로 밝혔다.

국방대학원 황병무 박사는 “중국 해군은 지상군의 연장이었을 뿐 독자성이 없었다.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는 지상군의 본토 방위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해군은 주로 연안 배치 해군으로서 쾌속정이나 잠수함도 연안에 붙어 활용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해군의 기술 및 첨단 무기 체계를 적극 도입할 경우 단기간에 기술 수준을 30년 정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중국 해군의 대양화 노력은 해군의 편제⌒· 훈련⌒· 무기체계의 변화에서도 엿보인다. 그들은 80년대부터 해군 장교들에게 항공모함 운용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한 일본 학자가 박힌 중국의 3단계 건함 계획을 보면 작전 능력의 원양화를 위한 중국 해군의 야심을 알 수 있다. 2040년까지는 옛 소련이나 미국의 해군력에 필적하는 능력을 갖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해군력 증강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시각도 있다. ‘해군은 기술이 필요하다. 중국 해군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블루 네이비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21세기 초에나 가능할 것이다. 항공모함을 소유한다 해도 2020년에야 실전 투입이 가능하다’(미국 해군분석연구소 폴 크라이스버그 박사)는 견해다. 한국국방연구원의 한 전문가는 “미국은 중국의 해군력 증강을 주시하고는 있지만 큰 위협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분석한다.

일본의 해군력 증강 역시 중국 못지 않게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다. 세계의 군사 전문가들은, 첨단 방공 체계를 갖춰 이른바 ‘바다의 전자 군단’이라고 불리는 최신예 이지스급 구축함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보유함으로써 대양해군화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일본이 앞으로도 7척의 이지스함을 더 가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의 해군 전력은 동북아 지역에 해군력 증강 추세가 나타나기 전에도 해양 국가라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방위 정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옛 소련 극동함대의 태평양 진출 통로인 쓰시마· 쓰가루· 소야 해협을 방어해야 했고, 해상 교통로의 안전 확보 등 주변 해역의 안보가 필수였던 것이다. 실제로 소련이라는 주적(主敵)의 위협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상 자위대의 전력은 계속 증강되고 있다.

중국· 일본의 해군력 증강은 미국의 새로운 동북아 군사 전력과 러시아의 군사력 감축이라는 주변 안보 상황의 변화와도 직결된다.

미국은 냉전이 끝난 후 국방 예산 삭감과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 등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군사력을 감축하는 단계이다. 군사 패권자에서 동북아 지역내 세력 균형을 위한 조정자로 역할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태평양 함대를 비롯한 미국의 해군력은 세계 최고의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노계룡 대령은 “미국은 자기네를 앞서는 해군력을 용납하지 않는다. 일본의 해군력이 아무리 커진다고 해도 미국 해군력을 앞지르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러시아는 국내의 불안한 정치 상황과 예산 부족으로 극동함대의 작전 활동 축소 등 전반적으로 군사력이 축소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극동함대를 중심으로 한 극동 해군력은 여전히 동북아 지역의 안보 상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주요국이 독자적으로 해군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역시 적정 수준의 해군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해군력 증강 현상은 비단 동북아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동북아를 포함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반에 걸쳐 해군력 증강이라는 군비 강화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미사일 장착 프리깃함 2척과 잠수함 4척을 영국에 발주했고, 싱가포르는 독일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콜베트함 5척을 건조하고 있으며, 대만은 프랑스와 미국에 각각 프리깃함 6척, 8척을 주문해 건조중이다.

 

해군력 증강 바람, 아· 태 지역 전체에 확산

지난해 5월 말 해군본부가 주최한 제3회 함상토론회에서 민족통일연구원 박영규 박사는 “아· 태 지역이 세계 최대의 무기 시장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 여섯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냉전이 끝난 후 아· 태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이 감소했고, 이에 따라 중국· 일본이 힘의 공백을 메우면서 패권주의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져 지역내 역학 관계가 변했다.

둘째, 지역내 국가들이 첨단 무기 구입 등 군비 증강을 뒷받침할 경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셋째, 남사 군도· 센가쿠 열도 등에서 영토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자국의 권리를 시위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군함을 파견하면서 군사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고려대 박춘호 교수는, 중국의 블루 네이비 전략의 1차 목표는 남사 군도라고 볼 수 있다고 해석한다. “74년 중국이 단 이틀 만에 서사 군도에서 남베트남을 몰아냈다. 당시 중국의 해· 공군력은 남사군도에까지 미치지 못했다. 센가쿠 열도 문제는 중국으로서는 부차적인 것이다. 중국 해군에 힘이 있더라도 남사 군도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다만 남사 군도의 영유권을 양보할 수 없다는 힘을 과시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현상 유지만 하려 해도 중국으로서는 큰 해군력이 필요하다.”

넷째,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등이 무기를 과잉 공급하고 있다.

다섯째, 조직화한 다자간 지역 협력체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여섯째, 냉전 종식으로 인해 아· 태 지역에 군비 증강 현상이 새롭게 나타났다.

동북아 지역에서의 군비 경쟁 열기는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중국· 일본의 항공모함 보유 계획과 아시아 각국의 해군력 증강은 한국의 해양 전략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전투함정 톤수 누계 및 해군 전력 등을 기초로 한 해군력 지수에서 한국 해군은 일본의 3분의 1, 중국의 4분의 1에 불과하며, 대만 해군에도 뒤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한국 해군은 어디로 가는가. 국가 안보 전략에 기초한 새로운 해양 전략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무엇인가. 과연 그런 목표가 있기는 한 것인가.

 

“바다는 지킬 대상이 아니라 지배할 대상”

황병무 박사는 중국 해군과 한국 해군의 연안방위 우선이라는 유사성을 지적하면서, 한국 해양 전략에는 뚜렷한 목표가 없다고 강조한다. “중국 해군은 임무와 기능 면에서 분명한 목표가 있다. 주변 해역 3백만㎢에 대한 권익과 주권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또한 핵 초강국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국가 전략 아래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뚜렷한 목표가 없다. 생존은 목표가 아니다. 최소한 동북아 안정에 기여하고 해양 주도권을 잡아야 하며, 주변 4강 사이에서 균형자 구실을 한다는 목표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2020년에서 2030년까지는 내다봐야 한다. 국방 정책이라는 것은 최소한 10~20년 단위로 기획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해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한 다음에 무기체계를 바꾼다든가 하는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황박사는 또 안보 공감대가 없음도 지적한다. “이제는 안보 협력 시대다. 특정국 단독으로는 안보를 논할 수 없으며, 안보 협력도 맨손만 가지고는 곤란하다.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 임무와 역할을 논할 때도 단독 안보냐 협력 안보냐 하는 방법론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

백진현 교수도 해양 전략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해군력이 증강되고 있기는 하지만 전략에 방향성이 없다. 전략을 세운 다음에야 구체적으로 무기체계라든가 전력 구조를 짤 수 있는 것이다. 해군력 증강에 관심을 기울이기는 하지만 전략이 없다 보니 무기 보강도 체계 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 해양 전략가는 “우리는 해군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바다를 철통같이 지킨다는 말을 해왔다. 도대체 바다를 지킨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발상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한다. 바다는 지킬 대상이 아니라 지배해야 하는 제해권의 대상이며 더구나 ‘철통같이’ 지킬 수도 없다는 것이다.

연안 해군이냐 대양 해군이냐를 선택하기 전에 국가 전략과 그에 따른 해양 전략 선택을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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