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업“게으름뱅이는 가라”
  • 북경 · 박승호 통신원 ()
  • 승인 199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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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제’ 폐기 ‘계약고용제’ 채택…주택 · 연금 · 의료제도 개혁

 중국은 86년부터 종래 국영기업 노동자들에게 보장해온 평생직장제도를 계약고용제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해왔다. 이에 따라 약 1천5백만명의 노동자들과 새로운 고용계약을 체결하였는데, 2000년까지는 총 1억여명에 달하는 국영기업 종사자들에 대한 평생고용제를 완전 폐기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국영기업은 노동자들에게 주택 · 의료비 · 장해 및 노후연금을 지급하고 노동자 자녀의 교육과 취직 그리고 오락시설을 제공하며 식품조달까지 지원해왔다. 따라서 국영기업 그 자체가 기업과 사회가 결합된 한덩어리의 생활공동체 역할을 담당했다.

 이처럼 과중한 부담으로 기업은 재투자나 기술개발을 못함은 물론 현상유지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고(최근 빚더미에 올라 앉은 기업이 많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노동자측에서는 낮은 집세 · 각종 가격보조금 · 연금 등의 혜택에 이끌려 외국인 회사 등 비교적 임금이 높은 기업으로 직장을 바꾸려 해도 성큼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제도가 노동자들을 현실에 안주하는 게으름뱅이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중국경제 낙후시킨 ‘쇠밥그릇’제도
 한편 이러한 사회보장은 국영기업 노동자들에게 국한된 혜택일 뿐, 8억 농민의 대부분과 개인사업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사회적위화감을 조성해온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평생 면직될 염려가 없는 직장, 과도한 사회보장의 상징처럼 쓰이던 이른바 ‘쇠밥그릇’제도는 혜택받는 집단의 방종으로 나타나 오늘날 중국경제가 낙후되고 멍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쇠밥그릇’의 폐지, 즉 고용계약제 도입으로 인해 주택 의료 연금 교육 상점운영 등 각부문의 연쇄적인 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또한 고용보장기금, 즉 실업보험문제가 새롭게 대두되었다.

 사회보장제도 개혁의 대체적인 윤곽은 지금까지 국가가 국영기업에 대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던 각종 복지제도를 바꾸어 운영주체를 국가 단독이 아닌 국가 기업 개인의 공동 부담으로 바꾸고, 시혜대상은 국영기업 종사자뿐 아니라 농민과 개인사업자에 이르기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중국정부는 금년 2월 국영기업에 대한 각종 보조금을 없애는 대신, 국영기업의 소득세를 55%에서 외자기업과 같은 수준인 33%로 끌어내리는 조처를 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업을 시시콜콜 간섭하는 게 아니라 거시통제권 내에 두게 되고, 기업은 좀더 자율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되며, 노동자들은 직장이동이 용이하게 되어 전체적으로 경직된 계획성에서 탈피하는 데 박차를 가하는 효과를 거두고자 하는 것이다.

 주택사정은 오늘날 중국인들이 가장 큰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난제다.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주택을 분배받는 중국에서는 주택제도가 사회보장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처럼 부동산투기로 전국이 난장판처럼 돼버린 사회에서 보면 ‘주택분배제도’가 요단강 건너편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상품주택제 도입에 주력
 그러나 북경의 1인당 거주면적은 7.7㎡에 불과하고 그것도 낡은 주택이 압도적으로 많다. 주택난이 극심하기로 유명한 상해의 경우 1인당 거주면적이 2.5㎡ 이하인 가구가 3만2천 가구를 넘는다. 81년 상해의 1인당 거주면적은 4.4㎡, 90년에는 6.6㎡로 개선되는 추세다. 그러나 91년말 현재 1인당 4㎡ 이하 거주가구가 30만, 위험한 낡은 슬럼이 1천5백만㎡에 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젊은이가 학교를 나와 기업을 배정받으면 우선 합숙소에 거주하게 되며, 결혼을 하면 방 한칸을 배정받게 되어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가 같은 도시에 살면 부모집의 남는 방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각 지방정부는 다른 지역 출신을 꺼리는 경향이 많다.

 다른 한편 고급간부들 중에는 가족이 2~3명인데도 연륜에 따라 방을 3~4개씩, 또는 집을 두세 채씩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취약성과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구상한 것이 수십년 묵은 주택분배제를 청산하고 상품주택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본래 상품주택제도는 80년대 중반에 그 추진을 서두르다 88년 9월 경제조정에 착수하면서 잠시 중단상태였다. 그러나 작년부터 다시 강조되고 있는데, 오는 3월20일 소집될 全人代에서 조정정책의 종료가 선포될 것으로 보여 금년은 상품주택제 도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경제전문가들이 현행 주택분배제도가 국고 낭비를 초래한다고 비난하는 이유는 턱없이 낮게 책정되어 있는 방세 때문이다. 1㎡당 월 0.1元(15원)인 현행 방세는 정상적인 주택관리비 2元을 크게 밑돈다. 이에 따른 정부손실은 연간 약 3백억元(4조5천억원)으로 추산된다. 실제 북경주민의 월간 주거비는 수도 전기 가스 방세를 포함해 6~7元 수준으로 가계총지출의 0.75%를 밑돈다.

 주택개혁의 주요 내용은 이처럼 낮은 방세를 지역사정에 알맞게 현실화하여(북경의 경우 우선 1㎡당 0.5元으로 인상계획) 이를 재원으로 정부가 집을 지어 상품주택으로 판매한다는 것이다. 주택판매 가격의 상당 부분은 근무하는 기업과 은행에서 보조한다는 것인데, 지원비율에 따라 판매 조건은 소유권의 즉시 이전으로부터 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북경의 쉔우취(宣武區)에는 1백년 이상된 낡고 위험한 주택이 많다.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티엔탄(天壇)의 인접지역인 이곳은 북경에서 가장 초라한 지역이다. 주택재개발 사업에 따라 4백일만인 금년 1월 하순 이곳의 새 아파트로 이사한 陳雲龍씨는 근처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장애자이다. 그는 부인 · 아들과 함께 5.5㎡의 허름한 방 한칸에서 살다가 두칸짜리 아파트를 배정받았다. 1만6천7백20元(2백50만원)짜리 새집을 3천元(45만원)은 본인의 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는 은행과 부부의 직장에서 조달하였다. 이 사업은 도시극빈자가 거주하는 ‘오래된 위험한 집 개조’(危舊房改選) 사업의 일환이었는데, 북경시 당국은 90년 말부터 시내 27개 지역에서 이같은 재개발사업을 전면적으로 착수하였다.

 중국정부는 장기적인 주택개혁의 재원확보를 위해 95년까지 도시주택에 대해 유지 관리비와 감가상각비를 충당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방세를 인상하고 2000년까지는 부동산세를 부과하며, 2000년 이후는 토지사용세 및 보험료 등을 거두어들일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이같은 주택제도 개혁은 앞서 말한 고용제도 개혁과 맞물려 국영기업의 종업원에 대한 주택제공부담이 점차 감소됨에 따라 시간이 흐를수록 확대될 전망이다.

 연금제도 역시 지난 수년간 개혁돼왔다. 종래 국가가 일방적으로 부담하던 연금지급방식을 국가 기업 개인이 공동부담하는 형식으로 전환한 것이 그 골자이다. 이미 각 지방에 연금기금을 설립하고 기업이 그 지방경제에서의 비중에 따라 기금을 출연하여 운영하고 있다. 현재 국영기업 종업원의 50%인 5천2백만명과 1천만명의 정년퇴직자들이 이 기금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 지난해 중국정부가 부담한 연금 총액은 3백70억元(5조5천5백억원)으로 정부재정의 15%를 차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90년대 연금대상자가 매년 2백만명씩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되어 기존 제도로는 정부부담이 갈수록 무거워질 형편이었다.

퇴직자 중 7백만명 재취업
 중국에서 정년은 남자 60세 여자는 50 또는 55세이며, 연금 액수는 대체로 현직 때 받던 봉급의 80~90% 정도이다. 최근 물가상승으로 퇴직자들의 생활이 곤란해지자 재취업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총 퇴직자 2천2백만명(이는 국영기업 퇴직자 수이다) 중 7백만명이 일자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의료제도개혁의 일환으로 의료비의 10%를 유료화하는 한편 의료혜택을 농민과 개인사업자에 이르기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요컨대 고용계약제 도입에 따른 각종 복지제도의 개혁은 그동안 중국기업의 특색인 ‘생할공동체로서의 기업’으로부터 기업을 오로지 ‘일터’로 분리해내는 일차적 직업에 해당된다. 이러한 작업이 저효율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중국기업들을 크게 변모시켜나갈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제 체제개혁은 인민생활과 직결된 복지 분야에까지 다가왔다. 90년대는 이른바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 건설’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시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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