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정부 탄생이 곧 민주화는 아니다”
  • 정리·김 당 기자 ()
  • 승인 2006.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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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단체협의회 ‘대선 후 한국 사회’ 토론회



 
 진보적 소장학자들이 중심이 된 연구단체의 모임인 학술단체협의회(상임대표 안병욱 교수)는 지난 12월 28일 연세대에서 ‘대선 분석과 이후 한국 사회의 성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진보진영의 시각으로 반성과 대안 모색을 탐구하고 대선에 대한 평가를 내린 학계 모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토론회는 이종오 교수(계명대·사회학)의 사회로 △대선 투표행위 분석과 국민의식 및 한국 사회의 변화 동향(정영태 교수·인하대 정치학) △92년 대선과 그 구조적·현실적 의미(조희연 고수·성공회신학대 사회학) △새 정부의 정치체제적 구조와 성격(최장집 교수·고려대 정치학) △한국 경제의 현 단계와 변화의 전망(정운영·<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대선 이후 정치권 및 사회운동 진영의 조직적 변화의 전망(고성국·경희대 강사) 등의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그 중 특히 쟁점이 된 조희연·최장집 교수의 발제문을 요약한다. <편집자>

 

 조희연 “타협적 지도자가 수반인 민간정권”

   14대 대선은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부 탄생은 아니나, 분명 군부정권에서 ‘문민정부’ 혹은 ‘민간정권’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이러한 민간정권의 탄생은 70년대 이후 제3세계에서 전개되어온 민주화의 과정이 한국적 형태로 관철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제3세계에서의 민주화 과정은 군부 파시즘 아래에서 진전된 자본주의화를 통한 지배체제의 안정화 정도와 그 과정에서 성장한 민중진영의 힘의 정도에 따라 구체화된다. 이것을 넓은 의미의 계급적 역관계로 규정한다.

   92년 대선은 한국의 독특한 계급적 역관계를 매개로 하여 독특한 민주화의 과정이 실현된 것으로 파악된다. 즉 반파시즘 민주화운동에 동참하였던 타협적 야당이 지배 진영에 투항하여 그것에 포섭된 상태에서, 타협적인 야당 지도자를 수반으로 하는 민간정권이 수립되는 경우이다. 이는 제3세계 민주화의 일반적인 추세 속에서 민주화가 굴절된 형태로 관철된 것이라고 파악된다. 지배 블록의 입장에서 보면 6·29선언을 통한 ‘의사 민간정권’ 창출로 안정적인 부르주아 지배체제 구축의 제1관문을 통과한 데 이어, 지배 블록에 편입된 야당 출신 민간인을 대통령으로 하는 안정적인 부르주아 지배체제 구축의 제2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한편 제3세계 민주화의 한국적 굴절 형태의 실현 과정은 도시에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약화, 희석화 과정이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약화 과정은 역설적으로 민주·민중적 후보의 입지는 지배 진영의 새로운 대응 양식으로 협소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민주·진보 진영의 전반적인 계급적 역관계의 취약성을 전제할 때 민주당의 선거전략은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민주당 선거전략의 기본 축은 뉴DJ 플랜을 통하여 사회의 중산층 및 보수층의 표를 획득하는 것과 민자·국민당의 대립 결과로 나타날 여권표의 분산이었다. 그러나 뉴DJ 플랜이라고 하는 일종의 스마일 작전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보수적인 지배구조 및 계급적 역관계의 구조, 그것의 한 반영으로서 지역감정이라는 벽이 엄존한다는 점을 민주당은 간과했다.

   향후의 바른 대응은 기존의 ‘낭만적 순수주의’에서 ‘새로운 현실주의적 사고’로 전화함으로써 가능하다. 특히 이번 선거 결과는 기존의 여촌야도 구도가 해체되어가고 남한의 부르주아적 지배체제와 친화력을 갖는 도시 중산층이 두터워져 간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제 체제와 권력이 혁명적으로 변화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거시적이고 종말론적이고 궁극적인 담론’만으로는 ‘잠재적인 보수층’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향후 김영삼 체제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균열 요인들은 보수적 잠재력을 갖는 중산층의 의식을 두드리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멀지 않아 김영삼 체제는 자신이 표방하는 개혁적 측면과 자신을 끌어안은 지배세력의 기득권이 요구하는 안정과 보수 사이에서 벌어지는 많은 충돌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구체적인 사건으로 터져나올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균열 요인을 담는 다양한 그릇을 예비해야 한다. 그것은 변혁운동의 기본인 기층 민중운동의 강화라는 명제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분화되어가는 현실에 맞추어 운동역량을 각계에 분산 배치하는 데서 출발한다.

 

 최장집 “권력 블록의 교체에 실패한 선거”

   이번 대선은 해방 이후부터 김영삼 민자당 체제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변한 바 없는 반공보수주의 집권 세력, 즉 군부와 재벌, 관료, 보수적 직업 정치인을 중핵으로 하며 경상도라는 한 특정지역에 강고한 지리적 기반을 둔 지배권력 블록이 민주개혁을 지지하는 세력에 의해 교체되어 선거혁명을 실현할 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권력 블록의 교체에 실패했다.

   이른바 문민정치, 즉 민선 민간정부가 바로 민주화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국가, 생산의 지배적구조, 과두적 엘리트 지배 구조가 옛 체제와의 긴밀한 연장선상에 상존하는 상태에서 옛 체제와는 상이한 민간인 정치 엘리트집단이 선거를 통해 국가 기구의 정점을 장악했다는 사실만으로 민주화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럴 경우 민주주의는 그 내용에 있어서가 아니라 언술(discourse)과 헤게모니 수준에서만 현실화된 것을 의미한다. 내용적으로, 선거는 경상도에 기반을 둔 과두적 지배 블록내에서의 정권 교체를 정당화하고 사회에 대한 이들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도구의 구실을 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번 체제의 성격은 군부 권위주의를 승계하는 ‘제한적 민주주의(democradura)를 통한 지역 분할 지배 체제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대선이 변화가 아니라 지배 구조의 연속성을 제도화한 결과로 나타난 까닭은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보수성과 취약성의 결과이다. 옛 체제 아래에서 시민사회는 ‘국가에 반하는 시민사회’, 즉 민주화의 기반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87년 이후 시민사회는 지역감정과 중산층의 보수화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보수적 지배 블록의 강고한 지지기반으로 변화했다. 지역감정은 지배 블록에 의한 분할 통치를 가능케 하는 핵심 이데올로기로서 정착되었으며 중산층의 보수화는 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통한 물적 토대 위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감정은 사회의 다른 균열을 아우르는 가장 강력한 중층결정(cover determination)적 요인으로 기능했다. 호남 문제는 계급 문제에 우선하여 이번 선거는 물론 향후 한국 민주화의 중심 쟁점으로 작용하리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87년과 비교하여 지역감정의 표출에서 변화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직접적인 폭력성으로부터 감정의 통제를 통한 내면화라는 형태상의 변화일 뿐, 내면적으로는 훨씬 더 깊어졌다는 점이다. 지역감정이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이유는 호남 문제와 계급·계층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지배 블록의 권력을 유지시키는 지배 블록의 이데올로기이며 그 물질적·사회적 기반인 것이다. 이것이 왜 지역감정을 진정으로 해소할 수 있는 정치세력에 의한 권력 교체가 도덕적이고 진정한 민주화였던가 하는 이유이며, 왜 김영삼 정권 아래에서는 해소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인가 하는 이유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선거의 결과는 한국사회의 도덕적 황폐화의 정치적 표현이다. 우선 지배 권력이 80년대 민주화의 보루인 호남을 고립화시켜 지배를 유지하려는 시도였던 3당 통합의 부도덕성을 지적할 수 있다. 둘째로 여당의 공공연한 거짓말에 의한 말의 타락과 부도덕성이다. 색깔론과 부산 관계기관대책회의에 대한 언명이 대표적이다. 세 번째는 위의 두가지를 표로서 응징하지 않는 중산층의 윤리 부재에서 발원되는 시민사회의 도덕 의식의 마비이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천민성과 부르주아 윤리 부재의 산물이다. 곧 도덕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가진 자들의 이기주의와 물질적 탐욕이 표로써 나타난 것이다. 네 번째는 망국적 지역감정은 자기 이익 추구 외에는 아무런 가치와 윤리도 존중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인 것이다. 만약 이것이 민주주의라면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의 衆愚性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김영삼 체제의 등장은 87년 민주항쟁 이후 위기에 처한 지배 블록의 안정성을 복원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김영삼 체제의 안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김영삼 체제는 지배 블록 내의 권력 쟁투를 해결해야 하며, 그들이 일정하게 개혁을 시도할 때 국가기구 내에 강고히 자리잡은 기득권 세력 및 재벌의 저항을 극복해야 하는 등 체제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노정권에서와 다를 바 없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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