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합류시켜 불법 해고 엄단”
  • 문정우 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1998.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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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제2기 노사정위원장

1937년 전북 정읍출생, 연새대 정치외교학과.<동아일보>기자. 10·11·13·14대 국회의원. 국민통합추진회의 상임대표. 국민회의 상임고문.

김원기 제2기 노사정위원장은 ‘준비된’ 협상가이다. 그는 13대 국회 때 평민당 원내총무로서 여당과의 5공 청산 협상을 원만히 마무리했고, 14대 국회 때는 꼬마 민주당과의 야권 통합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김대중 대통령도 그를 노사정위원장에 임명하면서 ‘협상의 명수’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붙여 주었다. 하지만 그는 요즘 좀처럼 이맛살을 펴지 못한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불참 의지 재천명에 이은 파업 강행 움직임, 공공 부문 노조의 시위 격화 조짐, 실업자 1백43만명 돌파 등등 2기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하기도 전에 그에게 날아드는 예보는 불길하기만 하다. ‘폭풍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그에게 협상 구상을 물어 보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 6월6일 이전에 2기 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킬 것이란 보도가 있던데, 대통령의 방미와 노사정위원회 출범을 굳이 연결할 필요가 있습니까?
  대통령 방미와 노사정위운회 출범이 한묶음은 아닙니다. 워낙 경제 상황이 급박하니까 늦어도 5월 말이나 6월 초까지는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당정간에 있었어요.

대통령이 미국에 가져갈 카드를 마련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 출범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정부측 논리던데요. 그 연장선상에서 민주노총을 배제한다는 얘기도 나오고요.
 대통령 방미 전에 출범시킨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 때문에 무리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1기 노사정위원회와 달리 2기는 대통령령에 의해 만들어진 법적 기구입니다. 중요한 단체들이 모두 참여하는 것이 좋겠지만, 가령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경총이 어떤 문제가 있어 참여하지 못한다고 해도 가동을 미룰 수는 없습니다. 몰론 민주노총이 꼭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막바지 협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갈 수도 있다는 얘기 아닙니까?
 이런 얘기를 언론에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민주노총의 현 지도부는 지난번 내부 선거 때 이런 저런 것이 고쳐지지 않으면 노사정위원회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자승자박 상태입니다. 거기에서 풀려날 계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사정위원회를 가동하지 않고 모두 열중 쉬어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민주노총도 움직이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오히려 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켜 놓는 것이 민주노총과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론이 움직이고, 내부에서도 불참을 재고하자는 목소리가 나와야 민주노총도 움직일 것 아니겠습니까? 노·사·정이 협상한다고 하면서 누가 가장 중요하고 힘있는 민주노총을 제외하고 싶겠습니까.

민주노총은 참여 전제 조건으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 재협상,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재협상까지 거론하고 있습니다.
 참여하는 조건으로 그런 것을 약속하기는 어렵지요. 하지만 실업을 예방하고 그 부작용을 최대한 줄일 방안에 대해서는 논의를 활짝 열것입니다. 노·사·정 3자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실업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들도 참여시켜서 가능한 모든 장치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민주노총을 계속 설득할 것이고, 참여하지 않는 동안에는 다른 기구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길도 열 것입니다.

다른 기구란 무엇입니까?
부당 노동 행위를 철저히 조사하고 해결할 특별위원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양대 노총이 사측의 부당 노동 행위를 고발했는데 그것이 제대로 처리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노측의 가장 큰불만 아닙니까. 노사정위원회 안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 기구를 두겠다는 겁니다. 양대 노총이 고발하고 제기한 문제니까 특위 활동에는 당연히 참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밖에 다른 노사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소위를 구성할 예정입니다.

실업자가 폭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당 노동 행위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특위를 둔다고 해서 해결되겠습니까?
노조가 초구하는 것과 대통령령에 의해서 노·사·정 3자가 모인 법적 기구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 효과가 크게 다르리라고 봅니다. 정리 해고를 결정하면서 회사가 노동자와 충분히 논의했느냐 안했느냐 하는 문제는 이해 당사자인 한쪽이 문제를 제기해 봐야 논의만 길어질 뿐이잖아요. 노·사·정 합의에 따라 문제를 제기하면 갈등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고 봅니다. 검찰도 특위 활동에 적극 참여하거나 협력할 것입니다. 사측이 끝까지 중재안을 거부하면 사법 처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노측은 노동자에게만 고통이 전담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그런 주장에 동의하십니까?
충분히 이해합니다. 기업을 줄이는 고통도 크겠지만 직장을 잃고 생존권을 위협받는 것과 같겠습니까. 잘못은 엉뚱한 사람들이 저질렀는데 왜 우리만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는 노동자들의 주장을 전폭 수용하고 어루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마도 제2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기를 꺼릴 쪽은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측이라고 봅니다. 노동자측도 이유야 어떻든 고통스런 절차를 밟지 않으면 더 혹독한 상황에 직면하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공교롭게도 정부는 제1기 노사정위원회 춤범 때와 마찬가지로 2기 결성을 앞두고 부실 기업 사용주의 재산을 몰수할 것이란 얘기를 흘리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상투적인 제스처가 아닙니까?
그 과정은 제가 잘 아는데. 노사정위원회 출범과 부실 기업 사용주의 재산 환수 조처와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재산 환수는 지난번 경제대책회의에서 금융기관 구조 조정을 논의하면서 결정된 것입니다. 금융기관을 정리하려면 채권을 자그마치 50조원어치 매입해 충당해야 하는데 결국 국민 부담이 아닙니까. 아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온 것입니다. 노사정위원회 출범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또 사탕발림을 한다고 노동자들이 쉽게 넘어가겠습니까.

노사정위원회를 중립적으로 운영하겠다고 거듭 강조하셨는데, 지난번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도 여러 가지 개혁 조처를 내놓았지만 정치 논리에 밀려 대부분 관철하지 못했습니다. 중립적인 위치에서 중재안을 내놓고 관철할 자신이 있습니까?
저는 요즘 노동운동 선배나 재야의 지인 들에게 이런 얘기를 합니다. 자문위원이든 지도위원이든 맡아 달라고, 노든정이든 사든 어느 한쪽만 유리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무시할 수 없는 세력과 논리를 갖춘 개인이나 집단이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이 얼마나 참여하느냐에 노사정위원회가 힘있는 기구가 되는 못되는지 여부가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 김원기 한 사람이 고집을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거든요. 다행히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제가 접촉한 많은 분들이 노사정위원회 활동에 국운이 걸려 있다는 데 동의하고 혼쾌히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주변에선 위원장직을 맡는 것을 많이 말렸다고 하던데요.
이런 자리에서 할 수 없는 얘기를 하면서 막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치적 희생양이 될 거란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하지만 저보다 더 보호받아야 할 사람의 방패막이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겠어요? 무슨 큰 정치를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 다 버리고, 지금까지 제가 해온 어떤 일보다 이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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