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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는 인종 '화약고'인가

로드니 킹 판결 앞두고 갱단 중무장‥‥유죄판결만이 폭동 재발 방지

로스앤젤레스·이석렬 (재미언론인) ㅣ 승인 2006.05.16(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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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끔찍한 악몽이 되살아나는가. 로스앤젤레스가 또 다시 불타는가. 모두가 가슴을 조이고 있다. 두 달 가까이 진행된 로드니 킹에 대한 연방 민권재판은 불안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53명이 목숨을 잃고 2천4백명이 부상한 4·29 로스앤젤레스 폭동 한 돌을 맞는 현지 표정은 뒤숭숭하다. 이 폭동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점포 2천4백여개가 불타버린 한국인. 1년이 지난 지금 겨우 5백20여 점포가 다시 문을 열었을 뿐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한인은 그 날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불안에 휩싸여 있다.

  굳이 4·29 한 돌이나 재판이 아니더라도 흑인들은 아무 때건 거리를 점령하고 소란을 피울 만한 구실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흑인들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서 밑바닥생활을 하고 있다. 미국 평균 실업률이 7%안팎인데 흑인 실업률은 무려 50%에 달한다.

4·29 폭동의 진원지인 사우스 센트럴에서 지난 10년동안 실직한 흑인은 7만명이나 된다. 전문가들은 이 지역 군수산업체가 계속 문을 닫게 되면 2~3년 안에 20만명의 실업자가 더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우스 센트럴 흑인들의 생활 상태는 지난 65년 와트 폭동 때보다도 더 나쁘다고 한다. 와트 지역은 사우스 센트럴 남쪽에 붙어 있는 흑인 지역인데 그때 폭동으로 34명이 죽었다. 당시 존슨 행정부는 와트 지역 개발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고 민간 기업의 진출을 장려하여 한동안 몇몇 대기업이 공장을 세우고 주민들을 고용했지만 치안 상 불안을 느껴 하나씩 빠져나가는 바람에 이 지역은 2차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 상태에 빠져 있다.

 

총기 2만여정에 경찰 제복도 훔쳐

  사우스 센트럴과 와트 지역은 갱들의 온상이 되어 매일 두세명이 갱들의 패싸움으로 희생된다. 경찰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갱 16만여명의 대부분이 이 두 지역에 밀집해있다고 본다. 4·29 폭동의 주범도 갱단인데 이들은 작년에 약탈한 총기류 2만여정으로 무장한 상태여서 그 세력이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최근 경찰 제복 2백벌이 세탁소에서 도난당한 사건을 갱단의 소행으로 보고있는 경찰은 폭동이 일어나면 경찰복을 입은 갱들이 거리에 나올까 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갱들은 이번에는 백인 부자동네를 습격하겠다고 공공연히 떠벌이고 있다. 그들은 이른바 '3B 목표 달성'을 장담하고 있다. 베버리힐스, 브렌트우드, 벨 에어 같은 백인 부자 동네를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톰 브래들리 시장과 윌리 윌리엄스 경찰국장은 거듭 텔레비전에 나와 로스앤젤레스시 일원에 유사시 통행금지를 실시하는 조례를 만들고 경찰병력7천과 주방위군 6백명에 대한 동원 계획을 세워 물샐 틈 없는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고 시민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피트 윌슨 주지사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방위군 증원을 명령하겠다며 작년과 같은 불행한 일은 결코 되풀이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난해 악몽을 잊지 못하는 한인들은 대비책을 서둘러 마련했다. 재향군인회·청년단 등 다섯 단체가 자경단을 조직하여 코리아타운 순찰을 시작했고, 한인회 청소년회관에는 비상 전화가 설치되었다. 총영사관에도 대책반이 만들어져 정부간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제대로 전달 안된 성금

  걱정 말라는 당국자 말에도 불구하고 못내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당국자들이 내놓은 대비책들은 긴급 사태에 대비한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이 못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폭동 한 돌을 맞은 시점에서 연방 정부의 손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처음에는 뜻이 있는 것처럼 보인 대기업들은 몸을 사리면서 재해복구 사업을 영세 상인들에게만 떠넘기고 있다.

  약탈당한 한인과 약탈을 한 흑인·히스패닉계 간에는 아직도 미움의 앙금이 그대로남아 있다. 킹을 때려눕힌 경찰관들과 그의 동료들은 추호도 참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인종간의 두터운 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한 석유 회사가 2천만달러를 내재해 지구에 직업 훈련소를 세우고 영세 상인들에게 저리로 융자를 해주기로 한 것이 재건위원회가 한 일의 전부이다. 

  한인 사회는 정치력 확대에 새삼 눈을 뜨고 있다. 우선 4·29 폭동 한인피해자협의회를 만들어 공동으로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이 모임에 가입한 피해자는 1천9백80명에 이른다. 협의회 이 정 회장은 아직도 회원의 4분의 3 정도가 자금 조달이 어렵고 보험금 지급이 안돼 영업을 못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회원 대부분이 재기를 포기한 상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저기서 모아 보내온 성금을 피해자 한사람당 2천5백~3천5백달러씩 받았지만 회원 가운데는 은행빚을 못 갚아 집을 차압당한 사람이 8백명이나 된다"고 밝했다.

  이회장은 협의회가 폭동 직후 로스앤젤레스시와 경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최근에야 기각되었다는 통지를 받았지만 이달 말까지 연방정부를 상대로 다시 소송하려고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승산이 별로 없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피해자 돕기 운동으로 모아진 7백여만 달러는 피해자들 손에 다 전해지지 않고 2백20만달러 가량이 여기저기 분산 보관되어 있다. 이에 대해 이회장은 "관련 없는 제3자들이 이런저런 구실로 돈을 건네주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제3자란 한미구호기금재단(이사장 하기환)과 성금을 거둔 이 지역 언론 기관을 말한다. 그는 또 한국 정부가 보내주기로 한 돈도 줄고, 엉뚱한 명목으로 둔갑해 영사관에 송금된 일로 크게 실망하고 있다. 민주당이 폭동 피해자지원금으로 당초 4백억원을 국회에 제안했던 것인데, 겨우 10억원으로 깎인 이 돈의 명목은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 영사활동비'다.

  한인 피해자들은 영업을 재개하는 게 자금이 없어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제도적인 벽때문에 어렵게 된 경우도 있다. 술을 파는 리커 스토어나 마켓 같은 식품점을 다시 열려면 기존 업소라 하더라도 주정부로부터 다시허가를 받도록 법이 정하고 있다. 새로 허가를 받으려면 주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행정 재판을 거쳐 판사의 재가를 받게끔 돼 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가게를 연 사람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사우스 센트럴 한복판에서 12년을 하루같이 리커 스토어를 경영해온 유효동씨 내외는 불탄 가게 터에 12평짜리 이동식 가건물을 세워 작년말 주류판매 재허가를 얻어 다시 장사를 시작한 첫 기록을 세웠다. 유씨는 불탄 자리에 새로 건물이 세워져 멀지않아 입주할 계획이다. 이처럼 겨우 일어선 상인들을 킹의 연방 민권재판이 또다시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이다.

  작년 4·29 폭동 당시 일부 미국 언론 보도는 폭동이 한국 사람과 흑인간의 갈등이 심화하여 터진 난동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또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한 한인 상점 주인들이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들고 가게를 지키는 장면만을 확대 보도함으로써 한인들이 과잉 방어를 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미국 일부 언론들의 잘못은 올해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미국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하나인 ABC방송의 '나인트 라인'에 출연한 한미청소년회관 김봉환 관장은 앵커맨 테드 카플에게 왜 미국의 언론은 어느 한 면만 부추겨서 전체 흐름을 왜곡시키려 하는가고 점잖게 나무랐다. 그는 한 보기로 코리아 타운 내 총포상에서 총기류를 사는 한인들이 더러 있는 것을 마치 모든 한인들이 무장을 서두르고 있는 것 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요즘 라디오 토크쇼 같은 프로에서는 매일같이 폭동 재발 가능성을 놓고 떠들고 있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 사람들 가운데 새로 총기를 구입한 사람은 4%뿐이라는 한 조사결과가 말하듯이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한인들은무장은커녕 권총 한자루도 없는 사람이 태반이다.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말할것도 없고 최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같은 품위있다는 신문들도 킹의 연방 민권재판과 관련해 한인상점 주인들이 서둘러 무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언론이 과장·편향 보도를 일삼자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 나온 단체가 마침내 생겼다. 한미봉사단체연합회와 아시아태평양법률센터가 모태가 되어 긴급정보센터를 만들었다. 한인 1.5세와 2세들이 중심이 된 이 긴급정보센터는 만약 비상사태가나면 시청 경찰국 주방위군 적십자사 등에서 수집한 정보를 한데 모아 언론사에 제공할 방침이다. 그러나 자유분방하게 취재하는 미국 언론들이 비상정보센터에서 받는 보도자료만을 쓸지 의문이다.

  하버드대학 부설 언론과 정치문제연구소가 4·29 폭동 한 돌에 맞춰 펴낸 〈언론의 통제-들리지 않는 목소리, 보이지 않는 이미지〉 라는 보고서는 미국의 3대 네트워크 방송을 비롯해 많은 텔레비전 방송국이 로스앤젤레스폭동을 보도하면서 한인들의 피해가 마치 한·흑간의 갈등으로 생긴 것인 양 분석한 것은 치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폭동 2주간에 걸쳐서 방영된 주요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을 분석하여 도출해낸 결론은, 경제적인 요인으로 인종간의 갈등이 심화한 사실을 도외시함으로써 실상을 잘못 이해했다고 돼 있다. 이 보고서는 또 언론이 "한인은 흑인을 멸시하고, 흑인은 한인을 무례한 이민자요 성공한 사람들로 보고 질투심을 품고있다"는 피상적인 면만을 들고 나와 오히려 인종간의 대립을 증폭시켰다고 밝혔다.


킹목사 기념행사와 맞물려 긴장 고조

  로드니 킹에 대한 연방 민권재판은 공교롭게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25주기 기념 행사와 맞물려 진행되는 바람에 흑인 입장에서 볼 때 더욱 큰 관심사로 떠 올랐을 것이다.

  흑인들의 좌절감은 킹목사 암살 25주기에〈뉴욕타임스〉와 CBS 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도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흑백 간의 인종 문제가 개선되었다고 답한사람(37%)보다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사람(56%)이 더 많았다. 킹목사 25주기를 기념하려고 마련된'인종간 화합을 위한 단합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온 흑인 민권운동가제시 잭슨 목사는"불안한 것은 정부의 도시재건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못사는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기회를 터주는 근본 정책이 아쉽다"고 주장했다. 그는 "작년 사건으로 사우스 센트럴 지역 주민 1만4천명이 직장을 잃었는데 그간 5천명만이 일자리를 다시 찾았다"고 밝히면서, 단 한개의 공장도 이 지역에 세워지지 않았는데 클린턴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경제 원조를 약속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비난했다.

  최근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한 로널드 브라운 상무장관은 "도시빈민의 생활 개선이 선행되지 않으면 치안 불안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소감을 말했다. 폭동 피해 지역과 한인 지역을 두루 살펴보고 한인 지도자들과도 만난 브라운 장관은 인종화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바로 경제 불균형에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4·29 폭동 이후 한인들 사이에는 흑인들이 한인만 골라 약탈을 자행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미국 일부 언론의 왜곡 보도에도 원인이 있다. 

  최근〈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흑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인이 동네에 들어와 장사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응답한 흑인이 73%나 되는 것으로 보아 한인에 대한적대 감정은 그다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킹의 연방 민권재판과 함께 진행 중이던 백인 트럭 운전사 레지날드 대니 구타사건의 흑인 용의자 3명에 대한 심리가 7월로 연기됐다. 폭동 한 돌을 앞두고 대조적인 두사건의 재판 결과가 상승하여 불안을 증폭시킬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는 이래저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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