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 광주 진상 규명 결단 내리는 가
  • 광주 · 남문희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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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 정부가 맞는 첫 5월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은 또 다시 중대한 결단의 순간에 서게 됐다. 새 정부출범 이후 광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현지 여론 수렴 과정이 광주 지역 대표들과 대통령의 면담이라는 마지막 절차만 남겨놓은 상태에서 중대한 정치적 판단의 기로에선 것이다. 현재로서는 김대통령이 선택할 범위가 지난3월18일 광주방문 때보다 훨씬 좁아진 것으로 보인다. 3·18 당시에는 문민대통령의 첫 광주 방문인 만큼 기념 사업·부상자 치료 망월동 묘역 성역화 등 우선해결이 가능한 문제들부터 해나가자고 했던 광주 지역의 여론이, 최근에는 책임자 처벌은 다음으로 미루더라도 진상 규명만큼은 반드시 이번 5월에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 현지의 분위기 반전으로 그동안 비교적 낙관하는 입장이던 청와대나 민자당 관계자들은 최근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의 전망에 대해 대부분 "복잡하고 미묘해서 뭐라고 얘기하기 곤란하다"며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자제하거나 아예 "그 문제는 우리 담당이 아니다"라며 대답을 회피하기도 한다. 민자당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미묘한 분위기에  대해 "명예 회복을 포함한 여타 요구사항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현재 진상 규명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김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광주문제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면서 다양한 통로를 통해 현지 여론을 수렴해 왔다. 김대통령의 광주 채널은 현재로서는 여러 성격의 창구를 동시 가동하는 형태이다. 광주 현지 단체들 또한 올해 들어 적극적으로 대화 창구를 탐색해왔다.

  5월 관련 단체들의 대화 통로 모색에서 주목할 것은, 지난 2월13일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 열린 광주·전남지역 재야단체 및 5·18관련 단체들의 '광주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이다. 다음날 새벽까지 진행된 약 여섯 시간 마라톤 회의에서 관련 단체들은 그동안의 이견을 조정하고 '광주문제 해결을 위한 15개 원칙'에 합의했다.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군사재판 원심 파기·부상자영구 치료·상무대 터 무상공여 등 광주 문제의 크고 작은 현안이 망라된 이 15개 원칙의 마지막 항이 바로 "대표단을 구성해 이러한 사항을 김영삼 차기 대통령에게 건의한다"는 내용이었다. 광주에 대한 가해자인 전두환 정권, 그리고 노태우 정권 아래에서 지난 13년간 대화를 통한 해결은 엄두도 못낸 채 비타협적 투쟁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던 데 비해, 대화를 통한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인 입장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정부와의 대화 방침에 따라 '5·18광주민중항쟁운동연합'(이하 5민련)정동년 상임의장이 민주당 광주시지부장 조홍규 의원에게 청와대쪽 대화 상대자를 주선해 달라고 의뢰한 것은 지난2월말. 조의원은 지난 3월11일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김덕룡 정무 제1장관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청와대쪽 대화 창구가 될 용의가 있는지 의사를 타진했다. 숙고하던 김장관이 적임자로 추천한 인물이 김정남 당시 청와대 사회문화수석이다. 공교롭게도 정동년 의장 조홍규 의원 김덕룡 장관·김정남 수석은 모두 6·3세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청와대측에서는 김정남 교육문화수석이 주로 광주 지역의 재야 및 5월 단체들의 입장을 타진해 왔다

  또 하나의 청와대쪽 대화 창구는 광주시장출신인 김양배 청와대 행정수석이다. 김정남수석을 통한 통로가 비공식적 성격을 띠고있다면 김양배 수석은 강영기 광주시장을 중간 다리로 한 공식 통로이다.  광주 대표들과 대통령의 면담이 남총련(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 연합) 학생들의 망월묘역 점거 시위로 무산된 뒤에도 강영기 시장과 5·18관련 단체들과의 면담이 한차례 있었고, 3월22일 정동년 의장과 김정남 수석이 서울에서 만나는 등 서로의 접촉 시도는 계속돼 왔다.

 

실무진 '광주 해결 방안'마무리 단계

  최근 여권의 한 소식통은 "김정남 수석이3월 말께 광주에 내려가 현지 인사들과 폭넓게 접촉했고, 이 과정을 통해 현지 단체들의 의견 수렴을 거의 끝낸 상태"라고 말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활발한 움직임 외에도 민자당에서는 광주시지부장인 이환의 의원이 지난4월16일 지역 여론을 수렴한 보고서를 김종필 대표와 당3역을 거쳐 김덕룡 장관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최근 청와대쪽 움직임은 이와 같은 실무진의 안이 일단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 가장 중요한 근거는 지난4월 14일 강영기 광주시장이 안성례 광주시의회 5월특위 위원장·정동년 5민련 상임의장·강신석 5추위(5·18광주민중항쟁기넘사업추진위) 회장 등을 불러 대통령 면담 재추진 의사를 타진한 뒤, 빠른 시일 안에 면담대표를 구성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민자당 고위 관계자는 "5·18 직전에 김대통령이 자신의 복안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면담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대표 면담은 청와대 실무진의 안이 확정된 상태에서 마지막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처럼 문민 정부 들어 첫 번째 맞는 5월을 앞두고 지난 13년 동안 표류해온 '광주'를 해 결하려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가운데, 현재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한 것은 청와대측에 서 강구하는 해결 방안과 광주 지역 대표들의 입장이 서로 상충할 경우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각각의 실무진이 작성한 안들에 대해 알려진 바는 전혀 없다. 그러나 최근 민자당 고위 관계자는 "부상자 치료·상무대 터 무상공여 각종 기념사업등 행정 실무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요구 사항들과 군사재판 원심 파기, 보상법을 배상법으로 고치는 일 5·18기념일 지정 등 명예 회복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이전 정권들에 비해 훨씬 폭넓고 적극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대화를 통해 문제가 잘 풀리면 5·18기념식 때 김영삼 대통령이 망월동묘역을 다시 방문할 수도 있을것"이라며 다소 낙관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광주 현지에서 최근 높아지고 있는 진상 규명 요구가 현재로서는 최대의 걸림돌이기 때문에, 김대통령에게 보고될 해결안의 내용 중에 진상 규명 문제는 포함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가 광주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에 대해 "새 정부는 과거 정부와 다르다는 점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현재는 이런 차이를 바탕 삼아 커다란 원칙만 정한 상태고, 근본적으로 어떻게 풀어나 갈지는 계속 논의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청와대도 정치적인 제스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뭔가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여건 조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해결 방식이 일괄타결 방식이 될지 점진적 방식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여건만 만들어지면 김대통령의 결단 폭이 상당히 넓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말이다.

  청와대측이 강구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이 될지에 대해서는 대화 상대자인 광주지역 단체 대표들에게도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략 어느 정도의 선이 될 것인지에 대한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정동년의장은 "청와대측의 방안이 전혀 알려지지 않아 정말 해결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광주 현지에서는 지난 4월16일 이후 광주시의회·5민련·5민추·광주전남연합 등 관련 단체들이 연이어 모임을 갖고, 대통령과의 면담에 나갈 대표 17명을 확정하는 한편, 면담 내용에 대한 협의도 끝마친 상태다.

 

"학살 주역들 사과 뒤 광주의 용서가 순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최근 면담에 참여 할 각 단체의 입장이 그동안의 방법론적인 차이에서 벗어나 즘더 원칙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정동년 의장은 "면담에서 요구할 사항은 15개항 그 자체이다. 이중 가장 핵심적 요구 사항은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에 관련된 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안성례 특위 위원장도 "면담시간 대부분이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 문제에 소요될 것"이라 고 말한다. 3·18당시만 해도 진상 규명 요구 는 가능한 한 표면화하지 않고 기념사업 부상자 문제·상무대 터 무상 공여 등 해결 가능한 문제를 중심으로 대화에 응하겠다는 입장이었던 데 비해, 이번에는 광주 문제의 본질적 사안이 집중 거론 될 것이라는 얘기다.  정동년 의장은 이처럼 최근 광주지역 단체들의 분위기가 원칙적인 수준으로 복귀하게 된데 대해, "3·18면담 무산 이후 한때 망월묘역을 점거했던 남총련 학생들에 대해 비판 여론이 쏟아지기도 했으나,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데 어쩡쩡한 입장으로 임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일반 시민이나 5월 단 체들 사이에서 강하게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번이 마지막기회라는 얘기는 일반적으로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15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진상 규명을 위해 남은 기간은 2년밖에 없으므로, 그나마 새 정부의 개혁의지가 가장 왕성한 이번 5월을 그냥 지나치면 앞으로 광주 문제 진상 규명은 영원히 역사 속에 묻힐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인식에 기인한 것이다.

  지난 80년5월 신군부 세력에 항거해 일어난 광주항쟁은, 4·19보다 더 최근에 일어났으며, 더 극명하게 '반군부독재 문민정부 수립'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투쟁한 시민항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인 전두환 정권과 그 맥을 이은 노태우 정권은 광주 문제의 본질 규명 및 정신 계승은 고사하고 행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문제들조차 은폐와 호도를 일삼아 상처의 골을 깊게 해왔다. 지난 88년 국회 광주청문회가 열려 진상에 어느 정도 접근한 것은 사실이나, 끝내 발포 책임자 사망자수 암매장 장소 등은 밝혀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어 3당 합당 이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광주보상법에 의해 피해자에 대한 일괄적인 보상이 행해지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광주 문제에 대한 5 ·6공 정부의 입장은 "당시 계엄군의 진압 행위는 정당했으나 진압과정에서 일어난 불상사로 인해 일부시민이 죽거나 다친것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보상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광주시민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특별법을 제정해 군사재판의 원심 파기및 보상법을 배상법으로 전환하는 것을 분명히하고, 특별검사제를 도입해 당시 광주 문제가 어떠한 배경에서 누구의 명령에 의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발포 명령자는 누구며 미국은 당시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 등 진상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게 광주 시민의정서이다. 정동년 의장은 "화해를 한다 해도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주역들이 먼저 사과를 하고, 그 다음에 광주 시민이 용서하는 방식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현재 광주 지역의 5월 관련 단체나 재야단체 등은 대통령 면담과는 별도로 이번 5·18기념식에서 광주 정신 계승이라는 주제 아래진상 규명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있다. 특히 재야단체인 광주전남연합측은 5·18진상을 담은 백서를 소책자 형식으로 대량 제작해 전국 시민단체 등에 무료로 배포하고, 전국연합측과 연대해 여태까지 광주를 중심으로 치렀던 5·18행사를 전국에서 동시에 치를 계획이다.

  이 같은 광주 지역 분위기로 보아 올해의 5·18행사에서는 어느 때보다 평화적인 방식으로, 그러나 더 구체적이고도 강력한 방식으로 광주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5·18기념식에 앞서 이러한 분위기는 곧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통령 면담에서 김대통령에게 전달될 것이다.

 

해결책은 세가지‥‥ 대통령의 선택은?

  결국 5월을 앞두고 김대통령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수밖에 없다. 그가 선택할 방안을 놓고 몇 가지 상황이 예상된다. 첫째,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은 도덕적 단죄를 통해서 하고, 주로 광주 정신 계승과 명예 회복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여기서 핵심은 최근 4·19에 대한 김대통령의 새로운 해석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듯이 5·18정신을 4·19정신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문민 정부의 정통성의 기반으로 삼는 것이다. 최근 몇몇 민주계 의원은 이러한 방식을 주장한다.

   또 하나의 방식은 광주 지역의 여론을 그대로 수용해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실질적 조처를 취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현재 집권 세력의 상당수를 구성하고 있는 5·6공 세력과의 정치적 단절을 의미하는 것 이므로 상당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반대 측면에서는 호남 지역의 정서를 끌어안음으로써 지역 갈등을 해소하고 진정한 민족 화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큰 의미가 있다.

  세번째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현재 광주 지역 재야단체 등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본질문제는 회피한 채 5·6공에서처럼 행정력이나 돈을 동원해 해결 가능한 문제들만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김영삼 정부는 문민 정부이기 때문에 과거 정권보다 더욱 큰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그는 과연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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