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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선정 ‘89년 올해의 인물’

도덕적 용기, 李會昌씨

김동선 편집위원·김당 기자 ㅣ 승인 1989.12.31(Su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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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파사’의 준법의지로 유명무실햇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위상과 신뢰도 높여


‘대꼬챙이 판사’로 널리 알려진 이회창 대법관은 88년 7월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금년 東海시 재선거 때 “비록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 격이 되더라도 법을 지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다짐하며 선거사상 최초로 선관위가 직접 불법선거운동을 고발조치토록하여 선관위의 위상과 신뢰도를 높이는 동시에 불법·타락선거에 경종을 울렸다. 더욱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선거법을 위반한 후보자와 선거사무장 전원을 고발한 그의 준법의지와 대통령의 서신도 선거법에 위배된다고 경고한 그의 도덕적 용기는 우리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비록 지난 10월14일 불법·타락선거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선관위원장직을 사퇴했지만, 선관위원장 재직 시 그가 보여준 공명선거 의지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선거풍토를 개선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시사저널》은 타협없는 그의 ‘준법정신’과 ‘도덕적 용기’가 89년에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고 판단,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흔히, 법관은 판결로 말하고,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고 한다. 이것은 직업의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시사저널》‘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李會昌대법관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법관은 정말로 판결로만 말하는 구나’하는 것이었다.
 李대법관은 기자와의 면담 자체도 거부했고, 백방으로 움직여 간신히 면담이 이루어졌을 때 기자는 ‘인터뷰가 가능하겠구나’하고 기대했으나 그는 “나를 뽑아주신 데에 대해서는 고마운 말씀을 드려야겠지만, 그 선정 자체를 취소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더 이상 말문을 열지 않았다 기자는 어쩔 수 없는 임무임을 가조하며, 李대법관의 일을 열려고 했으나, 그는 침묵을 일관했다. 기자는 온화한 것 같으면서 어떤 차가움이 숨어 있는 그의 표정을 보며 ‘소신판사’라는 그에 대한 세간의 평이 과장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이 집무실을 물러나왔다. 그는 정중하게 배웅했고, 악수를 하며 조용하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기자는 李대법관 주변을 맴돌며 취재할 수밖에 없었고, 더욱이 사진 촬영은 그의 자택 앞에서 출근을 기다리고 있다가 ‘무례를 무릅쓰고’ 기습 촬영했다.

“사마귀가 수레바퀴 막는 격 돼도 법지킨다”
 자료에 나타난 그의 경력은 1935년 서울생. 경기고·서울법대졸, 대학 4학년 때 고등고시사법과에 합격(8회)한 뒤 60년부터 법관생활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81년 3월 45세의 나이로 최연소 대법관(당시는 대법원판사)이 돼 86년 4월 50세로 역시 최연소 임기만료 퇴임을 했다.

 대법관 재임 5년간 대법원의 전체 합의체 판결 46건 중 16건의 주심을 맡아 이중 10건이나 소수의견을 내 법이론에 관한 한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정평이 났었고, 이때부터 ‘소신판사’라는 별호가 붙었다. 또 그의 진취적 법률 이론으로 하급심 사건을 가장 많이 파기해 후배 법관들로부터 두려움과 함께 존경받는 선배가 되었다는 것이 법조계 주변의 평이다.

 그는 변호사 개업 2년3개월만인 지난해 7월 다시 대법관으로 발탁돼 金德柱대법관과 함께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다시 대법관이 되는 기록을 세웠고, 나중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소신판사 또는 대쪽판사라는 평을 들으며 ‘판결로만 말하던’ 그가 뉴스의 화재 속에 떠오른 것은 지난 4월에 실시된 동해시 국회의원 재선거 때부터였다.

 ‘1盧3金의 대리전’ 또는 중간평가성격을 띤 선거라 해서 동해시가 선거 열풍에 휘말렸을 때 언론은 연일 이 선거를 ‘탈법극치’라는 표현으로 선거타락상을 고발했다.

 이러한 탈법선거에 대해 李會昌선관위원장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선과위라면 여당 편이나 드는 기구로 인식될 정도로 ‘있으나 마나’한 정부기구처럼 되어있던 선관위 위원장에 ‘소신판사’가 앉아 있는데 ‘탈법의 극치'를 보며 이전의 선관위처럼 그저 방과만 하고 있었을까.

 아니다, 그가 위원장으로 있던 선관위는 예전의 선관위가 아니었다. 선관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동해시 재선거가 불법·타락의 아수라장이 되어가자 4월7일 李선관위원장은 강원도 선관위로 하여금 洪熙杓(민정), 金淑元(평민), 李官炯(민주), 李洪燮(공화), 池一雄(무소속) 등 5명의 후보와 그들의 선거사무장 전원을 불법선전물 부착·게시·불법가두 방송실시·유사선거운동기관설치 등의 이유로 춘천지검에 고발했다. 이 고발조치는 선관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어서 매스컴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언론들은 ‘동해 재선거 또 무효화 위기’하는 제목으로 해설기사를 썼고, 그와의 인터뷰 기사도 많이 실었다. 이 인터뷰 기사에 나타난 李선관위원장의 주목할만한 발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선거를 몇번 해서 입는 손실보다 그런 선거가 민주주의 의 발전에 주는 피해가 더 큽니다.” “제가 선관위원장으로 있는 한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 격이 되더라도 법을 지키는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신문사 기자가 “전임자 중 그 어느 누구도 않던 일을 하셨는데 ‘정치에 대한 법의 도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질문하자 李선관위원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과거에 위법도 문제 삼지 않았다면 과거 풍토의 잘못입니다. 저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풍조에 강한 반발을 느끼고 있습니다. 선거로 치면 과정이야 어지되든 당선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지요. 이런 생각은 유능한 영도자라면 통치권 취득 과정이 어떻든 정당화된다는 논리와 통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을 더디게 한 나쁜 풍조입니다. 선거과정이 잘못됐다면 설령 가장 나은 후보가 당선됐다 하더라도 무효가 돼야 합니다.”

 그이 단호한 준법의지는 이 인터뷰 직후에 4당 총재들에게 보낸 공한에 더 잘나타나 있다. 자신이 직접 쓴 공한에서 그는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짓밟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며, 또 법관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하는 뜻은 법을 엄격히 지켜 선거를 관리하라는 데 있지 현실에 순응하여 위법에도 눈 감으라는 데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라고 말해 준법에 관한 그 소신을 다시 피력했다. 이 공한은 민정당 총재인 盧泰愚 대통령에게도 발송됐다.

 

불법감시에 성역은 없다는 것 보여줘

 李선관위장의 단호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동해시 선거는 후보매수파동까지 일으키며 민저당 洪熙杓 후보 승리로 끝났다.

 지난 8월18일 실시됐던 영등포 을구 국회의원 재선거 때도 李위원장이 지휘하는 선관위는 과거와 다른 면모를 보였다.

 중앙선거위는 6월12일부터 불법선거운동 단속반을 편성, 사전 선거운동 단속을 강화했고, 이 결과 불법현수막이나 벽보부착 등 가시적인 불법사례들의 범람은 어느 정도 제동을 걸었다.

 그런데 선거 막바지에 盧대통령이 유권자들에게 민정당의 羅雄培후보를 지지해달라는 편지를 발송하여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이때 선관위는 盧대통형의 서한이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집권당을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이 유권해석으로 선관위는 불법감시에 “聖域이 없다”는 면모를 보여줘 국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선거에서도 선관위는 민정당 후보를 포함해 4명의 후보를 고발조치했는데, 언론은 선관위의 이러한 활동에 대해 ‘외로운 불법감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확실히, 이 시기에 李會昌선관위원장은 외로운 입장이었다. 선관위의 한 직원은 李위원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판단력, 업무추진력이 뛰어났고 강직한 성품이었지요.외모로 보면 얼핏 차가운 인상이나 부하직원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자상한 면도 있습니다. 책임감도 철저하였고, 지금 생각해도 잠도 자지 않고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집에 가서도 선관위에 전화를 걸어 일을 챙기셨고요.”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 격이 되더라고 법을 지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던 李위원장은 영등포을구 선거 타락상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10월14일 돌연 선관위원장직을 사퇴했다. 그는 사퇴이유서에서 “선관위는 재선거에서 불법선거운동을 규제하기 위해 마지막 수단인 후보자 고발조치까지 단행했으나, 정당활동을 빙자한 탈법운동, 불법집회 개최, 향응·금품제공 등 불법 선거운동이 자행되는 등 과거 선거보다 더 과열되고 타락된 선거라는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며 “선거관리를 총괄 지휘한 책임자로서 송구스런 마을을 금할 수 없다”고 사퇴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그는 선거질서의 확립은 선관위의 업무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중요한 국정문제의 하나로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李위원장의 사퇴는 선거와 정치권 전반에 대해 풍토개선을 촉구하는 그의 마지막 소신피력이었다. 그의 사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충격과 함께 애석함을 나타냈다.

 

대쪽같은 성격은 대 물림

 李대법관의 이러한 대쪽같은 성격은 알고보면 내력이 있다. 그의 부친 李弘圭(85)옹은 현역에서 은퇴한 지 오래지만, 지금도 검찰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배로 평가받고 있다. 李옹의 별호는 ‘대꼬챙이 검사’ 별호가 시사하듯 이옹은 공무원 비리사건과 정치적 사건을 수사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는 용기로써 숱한 화제를 남겼다.

 지난 48년 법조계에 첫발을 디딘 이옹이 대꼬챙이 검사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사건은, 초년 검사이면서도 당시 한민당 전남지부장을 뇌물공여혐의(증여죄)로 구속한 사건이었다. 당시 사법부장(지금의 대법원장)은 가인 金炯魯씨로 그때는 사법부장이 검찰과 법원을 통괄하던 시절이었다. 또한 한민당과 가인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이런 판국에 한민당 전남 지부장을 구속했으니 중앙당이 발칵 뒤집힐 수 밖에 없었고, 한민당의 압려글 받은 가인은 광주지검으로 “즉시 석방하라”는 전보를 보내냈다. 이옹은 이 전보를 받고 기소를 만류하는 차장검사에게 “내가 검사 그만두면 될 거 아니냐”는 말로 버티면서 끝내 유죄판결을 따냈다.

 그 뒤로 ‘한지에서 반성하라’는 뜻에서 청주로 전보발령이 났지만 얼마 안가 그곳에서 또 사건을 터뜨렸다. 당시 이승만대통령과 가까운 충청북도 도지사를 미국 구호물자를 유용한 혐의로 구속해버린 것이다. 그러자 이대통령은 노발대발해 법무장관 李仁씨를 통해 수사중단지시를 내렸지만 이 압력을 끝내 물리쳤다.

 이러한 일 때문에 이옹은 국회프락치 사건 등으로 매카시선풍이 휩쓸 때 검찰내에서도 좌익 검사 색출작업이 벌어지자 ‘빨갱이 전문’반공 검사에게 구속되었다. 입회서기가 고문 못이겨 이옹이 남로당원이라고 거짓 자백했기 때문이었다. 이옹도 자백을 강요하는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끝내 버텨냈고, 결국 1차공판(주심 梁會卿 전대법원판사)에서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다가 6·25가 터졌고, 부산에서 검사가 공소를 취하해 다시 검찰로 복귀했다.

 이옹은 서울고검 검사 시절에 이승만대통령의 압력으로 수사가 중단되었던 張勉부통령 저격사건을 4·19뒤에 다시 파헤쳐 그사건 관련자들인 당시 내무장관과 치안국장을 구속·기소해 유죄판결을 따냈다. 그래서 법조계에서는 이홍규검사가 사건을 맡으면 누구도 ‘작용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또 검찰에서는 이 검사를 그 유명한 김바오로(홍섭)판사에 견주어 비교하기도 한다. 김홍섭판사가 사건을 맡으면 항소가 없고 이검사가 사건을 맡으면 무죄판결이 없다는 평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부전자전이랄까, 李會昌대법관의 소신과 도덕적 용기는 그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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