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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한국가정법률상담소 李兌榮소장

“여성문제는 인권문제”

김춘옥 편집위원대우 ㅣ 승인 1989.12.24(Su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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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유사상가 루소가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평등하다”고 말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인간’속에 여자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남성이 루소가 지칭한 ‘인간’이라면 그 ‘인간’을 낳은 여성도 ‘인간’이며 따라서 당연히 여성도 ‘인간’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던 여성이 있었다. 올리베뜨 드 구즈. 프랑스 혁명을 유발시켰던 사건의 하나로 李兌榮여사(75세·한국가정법률상담소 이사장겸 소장·가족법 개정을 위한 여성연합회 회장·볂호사)가 즐겨 인용하는 여성이다.

 이여사는 구즈는 아니다. 비록 두 여성이 살던 사회의 분위기가 ‘여성문제가 즉 인권문제’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평안북도 영변 산골 광산마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한 똑똑한 규수. 스스로의 표현대로 ‘인권운동가로서 성공’했으니 단두대로 가야 했던 2백년 전의 프랑스보다 지금 한국의 인권상황이 훨씬 좋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1958년부터 추진해온 가족법개정이 이번에도 뜻대로는 안될 듯 싶어 무척이나 애가 탄다. 최초의 서울법대여학생, 주부대학생, 여성고시합격자, 여자변호사, 여자법대학장, 여자법학박사라는 화려한 경력에서 알 수 있듯 뜻을 세우면 이루고야 마는 이여사에게도 남녀평등을 법으로서 보장받는 일만은 평생을 바쳐도 힘겨운 일인가 보다.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된 가족법 개정법안이 통과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원래 지난번 대통령선거 때, 4당이 모두 가족법 개정을 여성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선거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평민당만 당론으로 정했을 뿐이예요. 朴英淑부총재가 앞장서고 있지요. 공화당 소속 의원들 중에는 이 개정법안지지 서명을 취소한 분들도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공화당이 儒林 주장에 가장 많이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합니다. 민정당은 가족법 개정원칙을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노태동령이 유럽4개국 순방을 떠나면서 법사위원장에게 가족법 개저에 관한 지침을 내렸다고 말하더군요. 단 동성동본금혼과 호주제 폐지와 같은 문제는 여론을 잘 참작해서 결정하라고 했대요.

●동성동본금혼과 호주제가 핵심인데 이 문제를 제외한 가족법 개정법안이 통과된다면 알맹이 없는 법안이 되지 않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우리가 제출한 개정법안은 여성이 친권행사를 할 때나 상속문제가 발생했을 때 남성과 동등하도록 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견이 다를 때, 지금은 아버지 의견을 따르도록 돼있으나, 개정안은 어머니 의견도 동등하게 존중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혹 바람이라도 피워 낳은 자식을 입적시킬 때 현행법에 따르면 아내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데 이것도 아내 동의를 받도록 법적으로 규정하도록 했습니다. 남편 사망시 미망인에 대한 상속제가 폐지되고 또 아들보다는 딸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은 상속세율도 동등한 수준으로 조절해 놓았습니다.

●동성동본혼인금지와 호주제가 이번의 개정법안 중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압니다. 이 문제에 대해 선생님의 의견을 다시 들어보고 싶습니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점은, 동성동본금혼법은 두차례에 걸쳐 1년간의 시한법이 실시됨으로써(1978, 1988년) 사실상 개정돼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호주제 역시 우리의 생활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호적에 기록만 돼 있을 뿐이지요. 실제로 다 없어진 것이므로 정리하자는 것뿐입니다. 생활은 앞서 있는데 그 잔재들만 갖고 몸을 벌벌 떨어가면서 유지를 하려는 걸 보니 망칙하기 짝이 없군요.

 우리가 동성동본금혼을 폐지하자는 것은 근친혼을 허락하자는 게 아닙니다. 세계적으로도 근친혼은 금지돼 있습니다. 단, 그 자체가 바로 남자 위주의 결혼관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同姓이라면 혈통상 남자피 중심으로만 돼 있기 때문에 결혼할 상대가 모계쪽으로는 사촌도 괜찮다는 말 아녜요? 同本이라면 地明上의 문제인데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니 아무도 결혼할 수 없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이 제도는 첫째로 지역차별을, 둘째로는 남녀차별사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유림측에서 주장하는 ‘우리의 미풍양속’이란 말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동성동본금혼제는 중국에서, 호주제는 일본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가족법연구가인 鄭光鉉교수의 말에 따르면 옛날 李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중국에 조공을 바치러 갔대요. 중국관리가 “이름이 뭐냐”고 해서 “李아무개입니다”라고 했더니 “상놈이군” 하더래요. 이런 일이 있은 다음에 돌아와서 성만 같아도 혼인을 못하게 하는 同姓異本금혼법이 생겼다는 거예요. (이여사는 2년전에 신장과 부신을 동시에 떼네는 수술을 받았다. 그후 조금이라도 무리를 하면 몸살·혈압으로 심장까지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기자가 찾아갔던 날도 이여사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누워있었다. 기자와 마주한 여사는 낮은 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따. 얘기가 가족법의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자 여사는 갑자기 원기를 되찾는 듯 유수처럼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가족법은 1952년에 제정된 후 세차례나 개정이 됐는데(1958, 1962, 1977년) 아직도 남녀를 차별하는 이같은 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같은 여성으로도 답답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한국의 남성은 물론 여성들도 인간차별의 문화인 가부장문화와 이조 때의 유교문화에 물들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와 복종의 인간관계만을 강조하는 식민지문화와 군사독재문화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위의 네가지 문화유산으로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집단이 여성입니다. 그런데 여성들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장본인인 지배층 남성들은 불편함과 억울함을 잘 모르므로 월등감에만 사로잡혀 있습니다. 진보적 성격을 가졌다. 혁신운동을 한다는 남성들도 다 여성차별을 합디다. 인간차원의 혁신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자신의 입장에서 정치적 민주화만 외치는 겁니다. 민주화란 의식과 제도 두가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니 결국 인간과 제도와의 싸움에서 지금 인간이 지고 있는거죠. 제도가 뭡니까? 여성문제가 인권문제라는 걸 여성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할 정도의 사회분위기가 지금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어요.

●성균관측에 따르면 유림이 1천만명 정도라고 하더군요. 86년에는 국회의사당앞에서 10만 유림이 모여 가족법 반대시위를 대대적으로 펼친 적이 있었죠. 유림측이 내세우는 “미풍양속을 해친다”라는 주장에 아직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꽤 많은 듯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도 유림시대에 태어나 유림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시대의 전통을 다 배척하자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영역에서 영원토록 가는 진리는 없습니다. 처음 유림측을 찾아갔을 때예요. 난 일부러 한복을 차려입고 갔는데 그 사람들은 상투도 안틀고 갓도 안쓴 채 양복입고 커피를 마시더군요. 전통을 지키자면서 스스로가 안지키고 있더군요. 그 이유는 불편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전통이란 지켜야할 가치가 있는가 따져본 후에 지켜야 합니다. 유림은 편의적 방식으로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는 착각과 모순을 저지르고 있는 겁니다.

●그동안 온 힘을 기울여 추진해온 가족법 개정안이 뜻대로 다 통과되지 못할 경우라도 이 일을 계속하시겠죠? 이여사께서는 전략구상과 실천에 탁월하다는 평을 듣고 계시는데 앞으로의 방법이 궁금합니다. 어떤 여성지에는 헌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선전포고문을 게재하셨던데요?

 나는 가족법(1952년부터 37년 동안)과 법률의 생활화(가정법률상담소가 생긴 1956년부터 33년 동안)에 내 인생을 바쳤습니다. 그 공으로 상도 많이 탔죠(1975 막사이사이상, 1978 세계법률부조상, 1989 브랜넌인권상 등 20회). 벌써 몇십년 전부터 필요하다 싶으면 3백여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에 우편함에 가족법에 관계된 자료들을 집어넣었습니다. 엽서도 수천통씩 준비해두었다가 국회의원 개개인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수십년간 이런 피나는 노력을 가정법률상담소가 중심이 되어 모두가 해왔지요. 헌법재판소 제소문제는 나 혼자만 갖고 있는 마지막 카드예요. 마음의 준비는 돼 있지만 아직까지 가정법률상담소 직원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어요. 지난번 헌법재판소 개소식 때 李圭光소장에게 그랬죠. “이소장이시여, 나 가족법, 위헌으로 심판받겠소.” 그랬더니 李소장이 “선생님 1번으로 갖고 오지는 마세요”하더군요. “내가 그렇게 할 사람은 아니지”했죠. 문 열자마자 여자가 문제를 갖고 가면 재수없다는 전통적 의식을 감안했죠.

●앞서 이여사께서는 가족법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남녀 평등문제를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한국여성들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가저에 있는 주부들을 보면 피부로 느끼는 안락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더군요. 돈많은 남편이면 다인 줄 알고 사는 여성들이 많아요. 일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참 우리직원들이 조심해서 말하라고 하던데… “선생님 말씀의 영향이 크니까 이런 얘기는 입 다물어달라”던데….

‘구별’과 ‘차별’을 구분해야 해요

●최근 프랑스나 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부인이 출산하면 신생아 육아를 위해 부부 중 한명이 몇 달 동안 휴가를 맡도록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도 보육과 출산 때문에 여성이 사회적으로 지장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듯합니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라는 거죠.

 남자 하는 일 여자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좋아요. 그러나 가정을 버리고 하겠다는 생각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가정을 택할 겁니다. 가정은 가장 아름다운 단위이고 가사노동은 흔히 하는 말처럼 신성합니다. 인류의 평화는 가정의 평화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여사께서는 남녀평등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남녀평등은 개별적 능력에 따릅니다. 원하는 사람, 의식있는 사람일수록 남녀평등은 더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평등이란 개념에는 제한점이 있습니다. 남녀구별이 그것이지요. 문제는 역사가 여성을 인간 이하로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출산이라는 우월한 기능을 안고 태어났으므로 열등감을 느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여사께서도 구별이 아닌 차별을 직접 느낀 적이 있습니까?

 고시에 합격한 다음(1952년) 판사를 지원했지요. 대개는 지원하는 대로 발령을 받는데 내 경우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명령으로 판사에 임명이 안됐어요. 그래서 바로 변호사로 나섰죠.

●가족법이 원하는 대로 개정된다면 남녀 차별문제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의식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겁니다. 역사가 만든 인간의 변형된 모습을 창조 때의 모습으로 하루속히 되돌려야 하는데….

●개인적인 문제로 좀 화제를 돌리겠습니다. 스스로를 여성운동가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야 되겠죠? 법률적 차원에서《여성운동사》를 썼고 ‘최초의 여성’이란 타이틀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요. 또 대통령이 탄압했어도 잘 살아남았다는 사실, 이대법대 교수(1963~1971년)로 있을 때도 여성운동사와 여성참정권사만 강의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겠어요. 제자들에게도 “천당으로는 못 데리고 가도 지옥으로는 안데려갈 테니 나를 따라오라”고 해서 가정법률상담소로 데리고 나왔죠. 제자들에게 “결혼하고도 공부할 수 있다”는 의식도 심어주었지요. 여성운동가로 자랑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시대를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라고 했다면 그때의 여성운동과 지금의 여성운동이 그 의식이나 양상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있어요. 요즈음 특히 많이 느껴요. 난 프랑스여성들의 의식을 좋아하는데 요즈음은 구별도 차별이라고 생각하더군요. “난 젖이 있다”고 자주 말합니다. 다르다는 것은 차별이 아녜요.

●차별을 받지 않으려면 굳이 구별을 내세울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차별이 의식적인 문제라면 구별 역시 정신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또 그런 식으로 몰고가자는 게 젊은 여성들의 의식인 듯하던데요.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구별과 차별이 모두 의식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가사노동과 육아라는 육체노동 때문에 자주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나는 그런 점에서도 가사노동을 더 신중하게 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사람이 하자고 합니다. 여자가 우선적으로 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훈련받았기 때문입니다. 내 개인적인 경우에도 정박사(82년에 작고한 남편 鄭一亭)가 많은 일을 도와줬어요. 방 한칸 얻어 하숙하면서 고시공부하고 있는 동안 정박사가 애를 봐주었죠.

●앞으로 한국 여성운동의 방향은 어때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늘 좋은 아내도 되고 좋은 사회인도 되라고 합니다. 뛰쳐나와 사회활동만 해도 안되고 또 배운사람이 안방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사회활동하는 여성들이 흔히 듣는 얘기가 “남자는 가족들 먹여살려야 하니 여성이 양보해야 한다”라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간에게는 먹고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 여성들 중에는 생활을 위해 직장에 다니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쨋거나 의식은 해낸 겁니다. 가정에서와 같이 내 몫을 해야 합니다. 여성이라고 해서 한정된 일에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시사저널》·갤럽공동조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선정된 소감은 어떻습니까?

 잘난 어른들이 다 세상을 떠나고 늙은이는 나 하나라서 뽑혔나 봅니다.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가족법 개정을 위한 노력, 법률부조운동, 가정법률상담소를 통한 운동, 법조계에서 약자를 위해 벌인 운동 등이 평가를 받은 것 같군요.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위한 강좌를 가정법률상담소에 개설하셨는데, 이여사께서는 시어머니와 또 지금의 며느리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나요?

 우리 시어머니는 공부 많이 했으면 나 정도는 되고도 남을 분이었습니다. 원래 이해도 잘했지만 정박사가 중간에서 지혜롭게 해서 문제가 없었어요. 검사시보로 일할 때 시어머니가 애를 안고 와서 보시더니 그러시더군요. “다른 며느리처럼 밥상들고 시어미한테 부채질 안해줬어도―섭섭하다는 뜻이죠―오늘 네가 한 일 보고 정씨가문이 큰일했다고 생각한다”고요. 우리 며느리에게도 절대 기대 안합니다. 요구도 안해요. 여성문제를 다루다 보니 저절로 이런 생각이 배더군요. 그애는 시어머니가 아무 말 안해도 어려워 할거예요.

●앞으로도 할 일이 많으시겠죠?

 그럼요. 우선 하는 일―만족할 정도로 가족법을 개정하고 상담소를 공익법인으로서 튼튼하게 기반을 쌓는 일―을 마무리하고 인생을 정리해야 해요. 내가 펴낸 책이 모두 17권입니다(《여성을 위한 법률상식》(1972) 《쪽박으로 한강물을》(1985) 등). 앞으로 6~7권의 책을 더 쓰려고 해요. 1958년부터 1961년까지의 가족법개정운동사부터 시작할 예정이지요. 내가 죽으면 이 운동의 전반부 10년은 역사에서 사라질 거 아녜요.

●몇년이면 이 일을 다 끝낼 수 있을까요?

 건강과 의논해야죠. 원래 건강하기로 소문이 나 별명이 황소였는데…. 10년은 더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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