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그래픽만 1년 넘게 배웠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6.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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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인터뷰/“<괴물>은 인간의 ‘보호사슬’에 관한 영화”

 
영화 <괴물>이 기자시사회에서 완성된 모습을 드러낸 지 이틀 후인 7월6일, 서울 강남에 있는 청어람영화사 사무실에서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한국 영화계를 이끄는 감독 중 한 명이지만, 봉감독의 얼굴은 여전히 동안(童顔)이고, 질문에 답하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모범생처럼 또박또박했다.

세 번째 장편으로 ‘괴물 영화’를 택했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같은 전작과 전혀 다른 장르여서 이유가 궁금하다.
나는 기질적으로 남들이 안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살인의 추억>도 당시는 특이한 영화였다. 실화 사건이고, 범인도 안 잡힌 상황이었다. 주위에서 다큐멘터리 찍을 일 있느냐며 말렸는데, 그게 나한테는 자극이 되었다. 이번도 그렇다. 우리 영화계에 괴물 영화에 대한 편견이 의외로 심한데, 그게 자극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네시 호의 괴물 이야기 같은 것이 재미있었다. 그런 괴물이 일상의 공간인 한강에 나타난다면 어떨까. 영화 <괴물>은 그런 상상에서부터 출발했다.

3년 전 인터뷰를 봤더니 ‘도시 재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던데.   
괴물 영화 찍는다면 시작도 하기 전에 집중 포화를 당할 것 같아서 어느 정도 틀이 갖춰질 때까지는 숨겼다. 2004년 부산영화제 프리마켓(ppp)에 참가했을 때 처음으로 괴물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공개했다. 

그때 시나리오는 완성된 상태였나?
한창 쓰고 있었다. 2004년 가을에 초고가 나왔다. 괴물 디자인 작업하고, 한강 헌팅 다니는 일도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그림 솜씨가 상당한 것으로 아는데, 괴물 디자인에도 봉감독이 참여했나?
전체 디자인과 디테일 모두 장희철씨 작품이다. 괴물 디자인만 1년 넘게 걸렸다. 해부학적 근거를 갖춰 근육과 뼈를 갖춘 생명체를 만드는 작업이라 매우 어려웠다. 

괴물 제작 과정에서 봉감독이 한 역할은?
크기와 형태는 내가 정했다. 우리 영화는 고질라 같은 괴수가 나와 63빌딩을 부수는 영화가 아니다. 괴물이 클수록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우리가 실제 볼 수 있는 동물 중 큰 것, 코끼리 정도 크기여야 했다. 그리고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몬스터 느낌이 아니라 한강이 오염되었을 때 발견된 기형 물고기처럼 돌연변이 생물체 느낌이 들어야 했다. 또 송강호 같은 한국 배우들과 함께 등장할 때 어울려야 한다는 점도 중요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한 촬영이 연말에 모두 끝났는데, 7월 말 개봉까지 후반 작업이 매우 길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원래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는 후반 작업이 길다. 또 월드컵 때문에 배급 스케줄을 조정하면서 늦어졌다. 지난 5월 칸 영화제 때는 일단 ‘95% 버전’을 만들어 상영했다. 이후 컴퓨터 그래픽과 음악을 보완해 7월1일 영화를 완성했다.

봉감독 영화에는 늘 냉소적이고 이중적인 주인공이 등장했다. 그런데 <괴물>에는 그런 ‘봉준호식 캐릭터’가 눈에 띄지 않는다.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 때는 나 스스로 극중 캐릭터에 이중적인 감정을 느꼈다. 대학교수 되려고 타협하는 장면을 냉소적으로 그리면서도 먹고 살려다 보니 저렇다는 측은지심이 동시에 발동했다(<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때도 초반에는 형사들을 보는 시선이 냉소적이지만, 감정에 휩쓸리면서 후반부부터는 형사들한테 동조했다. 하지만 <괴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단순하다. 약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억울한 재앙을 맞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싸워나간다. 그게 이 영화의 주제다. 그래서 쓰면서도 주인공에 대한 동정심이 가득했다. 좋은 편과 나쁜 편의 구분이 뚜렷한 영화다. 

봉감독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괴물 이야기를 다뤄왔다. 그것이 부조리든, 사회 시스템이든, 지식인의 이중성이든···. 지금까지는 풍자만 해왔다면 <괴물>에서는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해법을 가족주의나 부성애 같은 원초적인 데서 찾은 것인가?
<괴물>이 가족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단순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전개를 잘 봐라. 가족주의 이전에 누가 누구를 보호하냐의 문제이다. 가족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 힘으로 딸을 구하려고 발버둥친다. 그런데 비좁은 하수구에 갇힌 딸은 자기보다 더 어린아이를 보호하려고 한다. 이런 단어가 있다면, 이 영화는 ‘보호 사슬’에 대한 거다. 시스템은 아무도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데 사람들끼리 서로 토스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한다.

질문 의도는, 영화 속에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데, 모순의 실체에 직접 맞서는 방식 대신 왜 하필 ‘가족들의 사투’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느냐는 거였다.
영화를 보면 미국에 대한 풍자도 있고 사회를 비판하는 대목도 있지만, 가족들은 거기에 관심도 없고 저항하지도 않는다. 풍자와 가족의 사투는 평행하게 그려진다. 가족들이 사회 모순을 인식하고 저항하는 것은 리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신 우리는 가족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소외되는지를 관객의 처지에서 영화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시나리오 쓰기 전 꼼꼼하게 취재하는 걸로 유명한데, 이번 영화는 어땠나?
<살인의 추억>은 실제 사건이 방대해서 취재하는 데만 6개월 정도 걸렸다. 나중에는 내가 범인을 잡을 수 있겠다는 과대망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한강 둔치에 가서 매점 등을 취재했지만 괴물이 워낙 거칠게 등장하기 때문에 디테일을 펼칠 만한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이 영화에서는 취재보다 비주얼 효과에 공력을 쏟았다. 컴퓨터 그래픽 공부만 1년 넘게 했다. 내가 알아야 세부적으로 주문할 수 있지, ‘실감 나게 해주세요’ 그런 말만 반복할 수는 없잖나.

시나리오 쓰기 전부터 배우 캐스팅이 되어 있었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비주얼 효과만으로도 머리가 부서질 테니까 배우만은 연기도 잘하면서 의사소통이 잘 되는 사람을 캐스팅하기로 마음먹었다. 변희봉·송강호·박해일·배두나 씨를 한 가족으로 정해놓고 배우 맞춤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모두 한 작품 이상씩 같이 해봐서 얼굴 표정이나 말투, 동작까지 잘 안다. 현서(고아성)만 오디션을 거쳐서 뽑았다.

7월1일부터 스크린쿼터가 축소 시행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같아서는 영화가 안 되도 큰일이고 잘 되도 큰일이다. <왕의 남자>가 대박을 터뜨렸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공길’ 역의 배우 이준기씨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왕의 남자>가 스크린쿼터 축소해도 될 영화는 된다는 홍보용으로 소모된 셈이다. 하지만 스크린쿼터 유지는 그의 공약이었다. 나쁜 사람이다. 한국 영화는 잘 되고 있으며 스크린쿼터를 유지하면 다른 경제 영역이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멕시코 사례를 보면 스크린쿼터 폐지 후 3~4년 만에 자국 영화 점유율이 10%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한국 영화가 잘 될 때 더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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