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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출입제한조치에 죽어가는
이태원 텍사스 골목 르포

김범래 인턴기자 ㅣ 승인 2006.07.18(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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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향란
 
이태원 중심가의 화려한 불빛 뒤켠에는 묘한 적막감이 감도는 거리가 있다. 이태원 소방파출소 뒤편에 있는 이른바 ‘텍사스 골목’이다. 오르막길 길목에 적힌 ‘청소년 통행 제한구역’이라는 빨간 글씨 뒤로, 허름하고 작은 ‘일반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미군들로 북적였던 소형 클럽들이다. 흔히 말하는, 술 마시며 춤추는 ‘클럽’과는 다르다. 10여 평의 작은 공간에는 보통 테이블이 두세 개 있고, 한두 명의 종업원들이 지나가는 외국인들을 붙잡아 술과 안주를 판다.

그러나 예전의 번화함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골목엔 거의 사람이 없었다. 가끔씩 동남아인들이나 나이지리아인들 한두 명이 기웃기웃할 뿐 미군은 없었다. 업소 세 곳 가운데 두 곳은 문을 닫았다. 업주도 종업원도 체념한 듯 무표정한 얼굴로 빈 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텍사스골목에서 A 클럽을 운영하는 김순자씨(가명. 60)는 “미래는커녕 오늘 당장 밥 먹을 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관리비 내고 종업원 월급 줄 돈도 안 나오지만, 가게가 팔리지도 않고 따로 할 일도 없기 때문에 매일같이 문을 연다”며 긴 한숨을 토해냈다. 한 업소 당 평일 손님 수는 하루 평균 두세 명, 하루 매출이 1백 달러가 안 될 때도 많다.

이태원 미군클럽들이 영업에 타격을 입은 것은 2001년 9·11 테러 이후부터다. 지난 5년간 주한미군이 이라크 전쟁에 차출되거나 평택으로 재배치되면서 미군의 숫자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유는 미군의 ‘출입금지업소 지정(off-limits)’ 때문이었다. 테러 직후 미군 사령부는 신병안전을 이유로 사병들의 외출시간을 제한하면서 이태원 일부업소들에 미군출입금지령을 내렸다.

3년 전부터는 단속도 심해졌다. 미군 헌병인 MP(Military Police) 외에도 CP(Courtesy Patrol)가 새로 생겼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순찰을 돌며 출입금지업소를 수색해 술 먹는 미군이 있으면 붙잡아 간다. 구석구석 창고까지 뒤지기도 하고, 외국인 손님이 있으면 미군인지 신분을 확인한다. 분위기가 그러니 단골손님들도 발길이 뜸해졌다. 이태원에서 20년간 일했다는 B 클럽 주인 공선희 씨(가명. 55)는 “단속과정에서 업무방해가 일어나도 하소연할 데도 없다”고 한탄했다. 그래서 가끔씩 단골 사업가손님이 들어오면 문까지 걸어 잠그고 망보며 술을 판다고 한다. 실제 모든 업소엔 골목길을 비추는 CCTV가 있었다.

업소 사람들은 기자가 말을 걸면 처음엔 경계했다. 그러나 off-limits를 취재한다고 말하자 주인, 종업원 할 것 없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미군클럽 생활만 10년이 넘었다는 C클럽 종업원 조영선 씨(가명. 37)는 “미군출입금지 업소로 지정된 지도 벌써 5년이 되었다. 이제는 거의 포기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off-limits 문제를 물어오기는 5년 만에 처음이라며 반가워하던 그는 이제 희망이 없다고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출입금지조치를 풀어줄 기미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왜 지정됐는지, 무얼 바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라며 조 씨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업소 주인들은 미군 당국으로부터 납득할 만한 설명을 공식적으로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다른 업소 종업원으로 일하다 작년 11월 D클럽을 인수한 김자옥 씨(가명. 40대)는 미군 사령관에게 서면으로 진정도 해보았다. 사고로 다리를 다쳐 4급 장애인이었던 그는 종업원으로 일하기가 힘들어 빚을 내 클럽을 하나 인수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업소가 예전부터 off-limits 대상이었다. “영업 첫날 CP들이 들어와서 마구 뒤지는데 눈앞이 깜깜했다.”

그녀는 짧은 영어실력으로 항의 편지를 썼고 얼마 후에 답변이 왔다. 해제를 고려해 보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여태껏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하고 싶은 영어공부도 못하고 빚과 병만 얻었다”라는 그녀는 무슨 병인지 온몸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제대로 된 검진도 못 받고 있다 했다.

기자가 만난 CP들은 off-limits 지정이 대령급 이상의 권한이기 때문에 그 사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미군 2명, 카투사 사병 1명과 함께 4인1조로 단속을 하고 있던 한국계 미국군인 김모 대위(captain)는 “아마도 업소 내 성매매 문제와 종업원 강제노역 문제 등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B클럽 주인 공선희 씨는 CP의 말을 전하자 강력히 반발했다. 사실상 기지촌으로 시작된 이태원에서 성매매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제는 술만 파는 곳이 더 많다는 것이었다. C클럽 종업원 조영선 씨도 이태원 종업원들은 보통 강요가 없고 자유롭다며 비웃었다. 성매매를 없애는 건 미군들이 더 원하지 않는다며, 결국 홍대나 신촌에서 다른 형태로 성매매가 이뤄질 뿐이라고 덧붙였다.

off-limits 업소로 지정되지 않고 인근에서 30여 년간 유명 대형클럽을 운영해온 오영철 씨(가명. 50대)도 “미군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억울하게 출입금지로 지정된 업소도 있을 것이다”라며 “미군의 off-limits조치는 사실상 단속이 용이한 근처의 약자만 때려잡고 길들이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off-limits에서 해제되기 위해 왜 집단적으로 노력하지 않느냐고 묻자 주인들 대부분은 손사래를 쳤다. 초기엔 무분별한 조치를 재검토해 달라며 항의도 해보았지만 미군의 고압적인 벽을 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구청도 정부도 사정을 알지만 중재해 주거나 대변해 주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대화를 통해 미군의 우려를 해소하고 부당 조치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지만, 이제 ‘약자들’은 지쳐 있었다. 돈 많은 업주들은 이미 평택으로 옮겼고, 남은 사람들은 그저 하루 세 끼 먹기에만 급급했다.

한때 ‘달러벌이 전사’로 미화되었던 이태원 클럽 여성들. 그들은 미군의 일방적인 조처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었다. “미군들 평택 가기 전까지라도 밥 먹고 살게 off-limits 없애 달라.” 2시간 전에 인터뷰했던 조영선 씨가 지나가는 기자를 다시 붙잡았다. 그 때까지도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취재를 끝내고 나오는데 클럽 앞을 지나가는 미군이 한 명 있었다. ‘삐끼’ 종업원들 간에 한바탕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1970년대 강요되었던 ‘기지촌 정화운동’의 망령이 되살아난 이태원 뒷골목의 밤은 적막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이는 종업원들 몇 명만이 비오는 거리를 하염없이 내다보며 외국인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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