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건너 ‘대세론’을 잡다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6.10.2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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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명박 전 시장 대권 행진 ‘가속’…손학규, 박근혜 제치고 급상승

 
지난해 조사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당시에는 현직 시장)이 ‘차기 대통령감 1위’로 치고 올라오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청계천 특수’라고 분석했다. 그즈음 청계천 복원 공사가 끝나고 이 전 시장이 한창 ‘뉴스’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차기 대선의 핵심 쟁점이 한반도 평화나 사회 통합 같은 쪽으로 옮아가면 그때는 지지도 순위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 더 이상 ‘청계천 약발’을 운운할 처지가 아니고, 북한의 핵실험으로 ‘안보 이슈’가 첨예한 현안으로 떠올랐는데도 여전히 이명박 전 시장이 ‘차기 대통령감 1위’를 차지했다(30.2%). 그것도 다른 주자들과 훨씬 더 차이를 벌리면서 말이다. 2위인 고건 전 총리(12.1%)에게는 두 배 이상 앞서고, 일반인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8.9%)보다는 무려 세 배 이상 앞서는 수치다.

전문가 조사에서 이처럼 ‘이명박 대세론’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정가에서는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북핵 사태’가 터졌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차기 대선의 핵심 화두가 ‘경제’가 되리라는 점에 유념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각종 매체가 전하는 민심의 요체는 한마디로 ‘먹고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집값은 너무 올랐다”라는 식의 민생 관련 하소연은 결국 ‘차기 대선의 핵심 화두는 경제가 될 것’이라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로 집약된다. 그런 마당에 이 전 시장이 현재 거론되고 있는 차기 대권 주자군에서는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그 후광 효과가 지지도에 반영되고 있다는 얘기다.

둘째, ‘북핵 사태’가 터지면서 오히려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더 세졌다.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한 정치학자는 “사람들은 안보 이슈가 터지면 박근혜 전 대표가 유리하리라고 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국가 위기 사태 때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상대적으로 여자인 박 전 대표보다 남자인 이 전 시장에게 더 유리한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셋째, 일반적으로 이 전 시장 지지층이 ‘고학력 고소득층’이라는 데서 비롯되는 특수성이다. 지금까지 나온 각종 일반인 여론조사를 분석해보면 ‘이명박 지지층’과 ‘박근혜 지지층’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이 전 시장은 수도권, 40대와 50대, 고학력 고소득층에서 지지율이 높고, 박 전 대표는 영남과 60대 이상, 저학력 저소득층에서 지지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번 조사의 모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외적 조건으로만 보면 대부분 ‘이명박 지지층’과 겹치기 때문에, ‘이명박 대세론’이 더 강화된 양상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박 전 대표측도 인정한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심지어 대구·경북에서도 여론 주도층은 박 전 대표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보수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해내느냐가 관건이다”라고 고민했다.

 
전문가 집단의 ‘이명박 대세론’은 당선 가능성에서 더 도드라진다. ‘개인의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리라고 보느나’는 질문에 전문가의 54.5%가 이 전 시장을 지목했다.

지지층 이탈 부른 ‘고건 본색’

이 전 시장측은 이런 결과에 대해 짐짓 무덤덤한 표정을 짓는다. 올해 초 ‘황제 테니스 파동’과 지자체 선거 등을 거치며 지지도 순위가 크게 출렁거렸듯이, 언제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캠프 내부는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이 전 시장의 한 참모는 “한나라당 사람들은 이번에는 무조건 본선에서 이길 사람을 뽑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따라서 지지율 조사에서 격차를 10% 포인트 이상 꾸준하게 벌릴 경우 한나라당 내부 분위기도 이명박 대세론으로 바뀔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전문가 조사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온 고건 전 총리는 이번 조사에서도 역시 ‘약한 모습’을 보였다. 순위는 2등이지만, 1위와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 고 전 총리는 범여권에 대한 지지도가 전반적으로 낮은 측면도 있지만, 이번 북핵 파동을 거치며 ‘보수 성향’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 지지율 하락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평이다. 고 전 총리의 지지층이 ‘호남+개혁’이라는 범여권 지지층과 겹쳐 있는데, ‘북핵 해법’과 관련해 고 전 총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고건 지지층’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열린우리당 의원은 “고건 본색이 드러나면서 고 전 총리를 범여권 통합 후보로 내세우는 데 회의적인 사람들이 늘어났다. 문제는 여권에 그를 대체할 만한 유력 주자가 없다는 점이다. 그마나 고 전 총리에게 머무르고 있던 여당 지지표가 떨어져 나가면서 여권 지지층은 더욱 엷어지고 있다”라고 걱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조사에서 다른 여권 주자들은 모두 바닥을 헤맸다. 집권 여당의 수장을 맡고 있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4.3%를 얻어 겨우 체면치레를 했고, 불과 2년 전에 1위를 차지했던 정동영 전 의장은 1.1%로 추락했다. 그에 비하면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이 정 전 의장과 어깨를 겨룬 것이 그나마 눈에 띈다.

하지만 이명박 1위와 함께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급상승이다. 손 전 지사는 전통적으로 전문가 집단에서 지지율이 높게 나타났지만 지난해 <시사저널> 전문가 조사에서는 1.8%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11.2%의 지지를 얻어 고 전 총리와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벌이는 3위에 오른 것이다. 무엇보다 올해의 정치권 히트 상품으로 꼽히는 100일 민심 대장정이 도약의 발판이 된 것으로 보인다.

매년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기사를 마무리할 때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인물이 순위에 오를까”를 되뇌게 된다. 그런데 내년에는 정말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그때쯤이면 여야의 대권 후보가 이미 결정되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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