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제품 시비 ‘호미’로 막아라
  • 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 (noma@sisapress.com)
  • 승인 2006.10.27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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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들, 위기 관리 능력 떨어져 큰 손실 타이레놀 제조사, 신속히 대처해 전화위복
 
1982년 9월30일 미국 시카고에서 한 시민이 진통제 타이레놀을 복용한 후 사망했다. 이 사건은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타이레놀 제조회사의 주가는 폭락했고, 시장점유율도 급속히 낮아졌다.

회사는 재빨리 진상 조사에 착수해, 사망자가 먹다 남은 타이레놀 캡슐에 치사량을 초과하는 청산가리가 들어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타이레놀이 사망 사건과 연관되었음을 시인한 후 전량 회수하고, 정확한 원인 규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타이레놀을 복용하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더 나아가 타이레놀 무료 쿠폰을 시민들에게 제공하면서, 유통 과정에서 타이레놀에 다른 물질을 주입할 수 없도록 3중 포장 장치를 개발했다. 경찰 조사 결과, 타이레놀에서 발견된 청산가리는 제조 과정에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누군가 고의로 주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웰빙 바람과 함께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매섭다. 올봄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과자를 아토피의 주범으로 다룬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최근에는 플라스틱 용기, MSG 자장면, 한방 생리대까지 줄줄이 비판 도마에 올랐다.

소비자 불안 느끼면 변명보다 적극 해명 앞서야

 제품에 대한 위해성 시비가 일 때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국가에서 정한 기준에 맞추어 물건을 만들었는데, 왜 비난받아야 하는지 억울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파동을 일으킨 측에 법적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기업들의 이러한 대응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시비가 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면서 이에 대비한 위기 관리 매뉴얼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위기 관리 매뉴얼이란 과학적 검증을 통해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인을 사건 발생 전에 찾아내 제거하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해소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다. 식품 회사라면 자사 제품의 원료·제조·유통·보관·판매 등 모든 요소에서 인체 위해성을 점검해 유해 요인을 제거하고, 노력으로 해소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답안을 준비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간과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소비자의 심리다. 최근의 소비자들은 불확실성을 내포한 허용 기준에 빗대어 안전성을 따지기보다 소비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어린이와 임신부가 잠재적 피해자인 경우에 그렇다. 일부 민감한 사람들은 허용 기준 이하에서도 알레르기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음이 널리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우리 회사 제품은 아무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라’고만 말한다면 그들을 설득하기 힘들다. 명백한 잘못이 없더라도 소비자가 불안을 느낄 만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지름길이다.

 타이레놀 제조사가 위기 관리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사건이 터진 후 보여준 모습을 볼 때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타이레놀 제조사는 아무 잘못이 없었음에도 사건 발생 후 모든 정보를 공개했고, 소비자에게 사과하며 낮은 자세로 임했다. 회사가 망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더 두터운 신뢰를 쌓을 계기로 만들었다.

기업은 제품을 팔지만 소비자는 그 기업의 신뢰를 산다. 한국의 기업들도 건강과 안전에 관한 소비자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미래에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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