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과 상생’ 그토록 외치더니…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11.0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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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재단 설립해 지원 앞장…현장에서는 볼멘소리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에 공을 많이 들였다. 대기업 손목 비틀기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기업 회장들을 불러 대ㆍ중소기업상생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2005년 5월과 12월, 2006년 5월에 걸쳐 회의를 세 번이나 했다. 회의의 산물로 지난 6월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8월에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상생협력위원회’가 출범했다. 산업자원부에는 상생협력 사업을 주관할 상생협력팀이 설치되어, 다양한 상생협력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

노대통령의 상생 정책에 가장 적극적으로 발을 맞추고 있는 기업이 삼성이다. 상생 정책과 국민소득 2만 달러 정책이 삼성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 될 만큼 삼성은 적극적이다.
유난히 낯을 가리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05년 5월과 2006년 6월 상생 회의에 참석했다. 지난해 12월에는 ‘X파일’ 사건 여파로 해외에 나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5월 상생 회의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인력, 시설과 장비, 복지 제도 등에 격차가 커 중소기업 자체가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2006년 2월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과 사장단은 협력사 대표들과 함께 ‘삼성 서플라이어스 데이 2006(SAMSUNG Suppliers’ Day 2006)’ 행사를 열었다. 윤부회장은 “협력회사와 삼성전자가 동반 성장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초일류의 대열에 함께 하자”라고 말했다. 지난 7월 윤부회장은 한 최고경영자(CEO) 모임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없으면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의 경쟁력이 없는 것인 만큼 서로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삼성은 ‘상생’이라는 말이 낯설던 2004년 12월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설립을 주도했다. 재단 이사장은 윤종용 부회장이 맡았다. 정부가 2년간 20억원을 지원하면서 재단은 대·중소기업 협력의 중추적 추진 기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중소기업을 위해 풀어놓은 돈 보따리만도 어마어마하다. 삼성전자는 2010년까지 협력회사에 1조2천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의 협력업체 지원 상황 및 계획서(2004~2008년)에 의하면, 공장 선진화 분야에 4천억원, 부품·설비 국산화 부분에 2천7백50억원, 기술력 확보 부분에 2천억원, 현장 지도 및 컨설팅에 7백억원, 전문 인력 지원에 2백억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한다.

2010년까지 협력회사에 1조2천억 지원 계획도

삼성은 2백70억원을 중소기업 교육 지원용 예산으로 따로 배정해두었다. 우선 한국기술교육대학교와 공동으로 첨단기술교육센터를 세워 70개 중소 협력업체 직원들을 교육하는 데 나선다. 첨단기술교육센터는 여섯 개 실습장을 갖추고 있으며, PLC(프로그래밍 로직 컨트롤러) 제어·모터 제어·센서 제어·로봇 제어·전기회로 제어 등 12개 과정을 운영한다. 또 삼성전자는 협력사 대표 자녀들을 대상으로 미래 경영자 과정을 열었다. 협력 회사의 차세대 CEO들에게 기업 문화를 전수함으로써 협력 회사와 동반자적 관계를 지속 발전시켜나가는 게 그 취지라고 한다.
2006년 6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삼성전자를 기술 개발 및 교류 부문에서 상생의 모범 사례로 뽑았다.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체인 쉘라인은 삼성전자와의 신기술 개발을 통해 5백40억원의 원가 절감을 실현했다고 발표했다.

 
노대통령과 삼성이 중소기업을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달가워하는 기색이 아니다. 기대도 없다고 한다. 재벌의 불법 하도급 행태를 외면한 상생은 ‘립 서비스’일 뿐이라는 것이 중소 기업인들의 생각이다.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중소기업 사장 ㄱ씨의 말이다. “최근 부품업체의 납품 단가를 50%나 깎았다. 5~10%도 아니고 말이 되는가. 중국 부품업체의 견적서를 들이밀고서는 이 단가에 맞추지 못하면 거래를 끊겠다고 한다. 중소기업청에서는 대기업의 횡포가 있으면 말하라고 하는데 애로 사항을 말할 분위기가 아니다.”
과거에 삼성전자와 거래했다는 ㄴ씨의 말이다.

“2004년과 2005년 삼성전자 계열사에서 반도체 장비 부품업체들에게 납품 단가를 50% 넘게 깎기도 했다. 몇 개 업체에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는데 그냥 없던 일로 덮어버렸다. 결국 신고한 업체만 피해를 보았다. 정부가 삼성 편인데 누구한테 하소연을 해야 하나? 삼성에 문제를 제기하면 ‘감히 어디에 대항하느냐’며 고압적인 자세를 취한다. 소송을 해도 막강한 변호인들이 즉각 투입되어 재판조차 열리지 않게 된다. 삼성이 지면 바로 항소해 시간을 끈다. 그 과정에서 회사는 고사되어 망할 수밖에 없다. 오토폴더를 개발한 슈버와 몇몇 회사가 꼭 그렇게 망했다.”

삼성전자의 액정표시장치(LCD) 관련 협력회사 사장 ㄷ씨의 말이다. “기름 값과 원자재 값이 올라 생산비가 10~20% 더 든다. 그런데 삼성의 납품 단가 인하 요구는 예년보다 세졌다. 대기업들이 부품 거래선을 외국으로 돌리면서 2, 3차 협력업체들의 사정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가 1조원이 넘는 돈을 중소기업에 쓴다고 하는데 삼성가와 특수 관계에 있는 몇 개 중소기업이 특혜를 볼 뿐이다. 중소기업에 싼 이자로 돈이나 빌려줬으면 좋겠다.”

삼성의 한 금융 계열사 하청업체 사장 ㄹ씨의 말이다. “삼성의 담당 직원 가운데 막내 동생뻘 되는 직원들이 술만 먹으면 불러내서 접대를 받는다. 심지어 친구들 모임까지도 불러낸다. 술을 못 먹기 때문에 여간 고역이 아니다. 한 번 싫은 기색을 했더니 다음날 당장 트집을 잡더라. 하지만 삼성과 거래하는 것은 이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여서 참을 수밖에 없다.” ㄹ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회장이 ‘삼성이랑 사업하다 망한 중소기업 많다. 삼성은 중소기업과 상생, 그런 것 안 한다’라고 말했는데, 삼성의 협력회사 사장 가운데 상당수가 ‘말 잘했다’라고 시원해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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