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소비자들의 끊임없는 ‘변심’
  • 표정훈(출판 평론가) ()
  • 승인 2006.11.03 20: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주일의 책]<청중의 탄생>/음악 문화의 역사 정리

 
18세기 이후 오늘날에 이르는 음악 문화의 변화 과정을 청중, 즉 수용자의 맥락에서 분석하고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도쿄대 대학원에서 미학과 예술학을 가르치는 와타나베 히로시. 클래식 음악 연주회장에 개를 끌고 와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며 카드놀이를 하고 크게 떠드는 관객이 있다면? 개를 끌고 온 사람을 입장시켜 줄 턱도 없지만, 어찌해서 입장했다 해도 금방 내쫓길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유럽의 연주회장 풍경이 바로 그러했다. 담배 연기 자욱한 속에서 손님들이 떠드는 탓에 가사를 들을 수 없어 가사가 인쇄된 종이를 나누어주기도 했고, 딱히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은 카드놀이까지 했다.

오늘날과 달리 객석도 어둡지 않고 무대만큼 밝았다. 그러니 ‘여자는 보여주기 위해, 남자는 여자를 보기 위해 연주회에 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다면 엄숙한 의례에 참석하듯 연주회장에 가는 건 언제부터 생긴 풍습일까? 19세기부터다. 경제적 부와 정치적 권력을 획득한 부르주아 계급은 이제 문화 소비에서도 주류로 떠오르고자 했다. 음악가 입장에서는 귀족이나 교회에 의지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의 청중이 지불하는 입장료 수입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은 진지한 고급 음악과 오락적인 저급 음악을 분명하게 나누는 이분법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다. 지성과 감성을 분명히 나누어 지성에 우위를 두는 근대적 사유 체계 속에서 음악 예술도 진지한 음악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신흥 계층인 부르주아 청중은 자신들이 소비하는 음악이 진정한 예술로 평가받기를 원했고, 그러자면 아무래도 진지한 음악으로 기울지 않을 수 없었다. 바흐를 ‘교회 음악에 일생을 바친 경건한 음악가’로, 베토벤을 ‘가혹한 운명에 도전한 불굴의 악성(樂聖)’으로 떠받들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19세기 이전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귀족의 저택이나 궁정에서 연주되는 소규모 편성의 음악을 많이 작곡했다. 그러나 후기 모차르트나 베토벤 시대가 되면 돈과 명예는 있는데 그에 맞는 문화는 아직 갖지 못한 수많은 부르주아들이 음악 소비자가 됐다. 바로 청중의 탄생이다. 다수 소비자에 부응하자면 음악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 많은 연주자가 필요한 교향곡이 클래식 음악의 주류를 차지하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세기 이후에는 축음기와 레코드의 발명으로 음악은 연주회장에서 풀려나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복제 예술의 출현이다. 연주회 음악의 유일무이한 일회성과 어떤 아우라가 레코드판에 갇혀 버렸다고 할까. 사람들과 음악의 관계가 일상적인 게 되면서 통일성과 의미를 추구하는 음악은 부담스러워졌다. 이에 따라 의미 대신 음 그 자체의 놀이에 주안점을 두는 음악이 인기를 끈다.

명곡과 거장 음악가를 둘러 싼 신화도 무너지고 있다. 다양한 음악이 가치 위계 없이 병존하고 있는데다가, 얼마든지 복제하고 반복해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자주 듣는 명곡에 사람들은 싫증을 느낀다. 많은 학교 음악실에 그 초상화가 걸려 있던 베토벤의 부릅뜬 두 눈, 역시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의 방에 걸려 있던 포스터 속 카라얀의 카리스마. 이것도 역시 예전 같지 않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