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천국과 지옥 사이 가파른 비탈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12.1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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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은 급격한 가 격 폭등으로 올 한 해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을 뒤흔들며 서민들의 가슴을 죄게 만들었던 ‘아파트’를 2006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나는 58년생 개띠랍니다. 설 쇠고 나면 우리 나이로 쉰 살이 되는 셈이죠. 고려대 인근 종암동에서 4층짜리 건물 4동 형태로 태어난 나(종암아파트)를 두고 사람들은 ‘한국 최초의 아파트’라고 부르곤 합니다. 아, 가끔 호사가 중 내 호적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어요. 나보다 2년 앞선 1956년에도 아파트라는 이름을 붙인 중앙아파트가 등장했다는 거죠. 하지만 그건 한 동짜리 사원 주택용 아파트였으니까 진정한 아파트의 원조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각설하고, 이 나이에 ‘올해의 인물’로 꼽혔다니 의외군요. 과분하다거나 쑥스럽다는 것은 아니에요. 사실 나야 이미 대한민국이 알아주는 부동의 스타 아닙니까? 나만큼 오랜 기간 변함없이 열렬한 사랑을 받아온 스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재수 없다고요? 상관없답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거대한 침묵의 조형물’(이경자)이라는 둥 ‘잔뜩 발기한 것처럼 여기저기 솟아 있는 거대한 난수표’(한수영)라는 둥 안티 팬들이 나를 틈만 나면 헐뜯어도 이놈의 인기는 도무지 식을 줄을 모른다니까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 올해는 내 인기에 나 자신도 좀 겁이 날 정도이더군요. 올 초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어요. 이때쯤이면 경제 연구소라는 데서 일제히 경제 전망이라는 걸 내놓잖아요. 그런데 이 연구소들이 모두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2006년에는 아파트 값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했어요. 한 부동산 전문지는 제목을 이렇게 뽑아놓았더군요. “부동산 가격은 하향 안정, 시장은 침체 심화.” 그럴 만도 한 것이, 정부 서슬이 웬만했어야죠. 2005년에 8·31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그랬지요.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라고. 그러면서 부총리께서 덧붙이시기를 앞으로 아파트 값이 20~30% 가까이 내릴 것이라고 했어요. 내가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서울 지역 아파트, 평균 27.5% 상승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웬걸요. 판교 신도시 분양(3월)을 즈음해 집값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어요. 정부가 3·30 대책을 새로 내놓고 ‘버블 세븐’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며(5월) 내 인기를 꺾으려 별렀지만 소용없었어요. 반전의 기회는 곧 왔지요. 8~9월 전세값이 폭등한 데다 판교 신도시·은평 뉴타운 고분양가 논란이 터지면서 다시 나를 찾는 사람들이 봇물 터진 듯 늘어난 거예요. 때마침 발표된 검단 신도시 계획까지 인기 상승을 뒷받침해주었죠.

내 인기가 끝간 데 없이 치솟으니까 이제껏 팔짱 끼고 방관하던 사람들도 달라지더군요. 이 기회에 나를 잡지 않으면 영영 주류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다는 양 내게 목숨 걸고 달려들기 시작했어요. 연봉 3천만원짜리 월급쟁이도 은행 빚 1억~2억원쯤은 우습게 져가며 내게 구애를 해대는데, 이쯤 되니 솔직히 나 자신도 겁이 더럭 나는 겁니다. 경국지색도 죄라면 죄니까요. ‘버블 붕괴’ 어쩌구 하면서 나 때문에 조만간 나라가 거덜날 것이라는 엄포가 들려오는데 내가 강심장이라 한들 버텨내기가 쉽지는 않더군요.    

여기서 살짝, 올해 제 몸값을 공개해 드릴까요? 올 초에 비해 내 몸값은 평당 6백35만원에서 7백68만원으로 20% 넘게 뛰었답니다(부동산뱅크 아파트 매매가 조사 통계). ‘생각보다 별로’라고요? 이거야 전국 통계이고 서울만 놓고 보면 얘기가 또 다르죠. 평균 상승률이 27.5%에, 서울시 25개구 중 상승 폭이 가장 컸다는 양천구 같은 데서는 제 몸값이 무려 46.6%나 올랐으니까요.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2단지 같은 경우 올 초 2천1백만원대였던 평당가가 3천8백만원(10월말 기준) 수준까지 올라갔다죠? 

이쯤 해서 안티 팬들은 또 나한테 돌팔매질을 해대겠죠? 하지만 나도 그 사람들한테 할 말이 많아요. 그 사람들은 내가 투기 세력을 등에 업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생력이라곤 일절 없이 말이에요. 그렇지만 스타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랍니다. 하물며 반짝 스타도 아니고 몇 십년간 변함없는 인기를 지속해 온 슈퍼스타라면 더욱 그렇죠. 

나도 한때 눈물 젖은 빵을 먹던 무명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꽤 있더군요. ‘빈민 주택’ 취급받던 내가 중산층이 선망하는 일급 거주지로 올라선 건 1970년대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부터예요(상자 기사 참조). 

강남은 나의 화려한 성공 무대가 되어주었죠. 무엇보다 강남은 나에게 ‘돈’이라는 황금 날개를 달아주었어요. 나를 ‘주거’ 아닌 ‘투자’, 아니 ‘투기’의 공간으로 믿게끔 만드는 기적을 실현시켰다고나 할까요?

1963~1979년 강북 땅값이 25배 오르는 동안 강남 땅값은 무려 8백~1천3백 배가 올랐다니 말 다했죠. 그 뒤로도 강남은 늘 집값 상승을 선도하는 선봉에 있었습니다. 급기야 참여정부 들어서는 ‘강남 불패’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죠. 

전국에 산재해 있는 5백70만 아파트 가구 중에서도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는 아이파크(강남구 삼성동)를 한번 볼까요? 아이파크 55평의 현재 평당가는 5천8백만원에 달합니다. 2001년 분양 때만 해도 1천2백만원이었던 평당가가 참여정부 들어 2천만원, 3천만원대로 치솟더니 급기야 설마설마하던 5천만원대를 넘어서버린 것이지요. 이대로라면 1억원대를 돌파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강남 팬클럽 회원들이 쑥덕대는 판입니다.

IT산업 발달 ‘일등 공신’으로 꼽히기도

강준만 교수는 올해 펴낸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에서 아예 이렇게 못박더군요. “강남은 아파트다”라고요. 그런데 강교수는 나를 치도곤만 하려 들지 않았어요. 강교수는 말합니다. 아파트의 기적은 곧 강남의 기적이요, 강남의 기적은 곧 한국의 기적이라고요. 성장 만능주의, 빨리빨리 문화 따위 고도 압축 성장에 따른 부작용을 너덜너덜 드러낸다는 점에서 아파트와 강남과 한국은 모두 닮은꼴이죠. 그런데 이게 ‘저주’의 대상인 한편 ‘축복’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전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나라. 어찌 보면 참 한심하지요. 그런데 <포천>은 한국의 정보통신(IT) 산업이 앞선 배경에 이런 아파트 문화가 있음을 지목했답니다. 아파트라는 고밀도 주거지에 사람들이 모여 살고, 전화국 반경 4km 이내에 거주하는 인구가 전체의 93%에 달하다 보니 인터넷 통신망을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싼값에, 훨씬 빨리 보급할 수 있었다는 거죠. 그뿐인가요. 이렇게 몰려 살다 보니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이것이 때로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떼로 몰려다니며 쉽게 달아올랐다 쉽게 식는 집단 냄비 근성에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월드컵 거리 응원이나 촛불 집회가 가능했던 것도 이런 고밀도 환경이 가져다준 축복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이겁니다. 투기 세력만 욕하지 말라는 거죠. 강준만 교수 말마따나 나는 결국 여러분의 욕망이 키워낸 한국형 괴물입니다. 근대 및 탈근대를 향한 욕망, 신분 상승을 향한 욕망, 부를 향한 욕망. 이런 것들이 나를 더 높고 화려하고 고독한 자리로 밀어올리고 있습니다(최근에는 극단적인 고밀도를 자랑하는 4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가 또 아파트 문화를 선도하고 있죠).

물론 내가 다 잘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올해의 부동산 광풍이 남긴 후유증은 실로 심각했지요. 현대경제연구소는 지역별·유형별·규모별로 집값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부동산 대책의 본질과 접근 전략>). 이 보고서에 따르면 올 한 해 지역별로는 서울 집값 상승률(24.0%)이 전국 평균(13.9%)보다 1.7배 높고, 서울 내에서도 강남 집값 상승률(36.1%)이 강북(11.8%)보다 2~3배 높았다는군요. 유형별로는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23.0%)이 단독 주택(0.8%)보다 무려 28배 높았고, 규모별로는 대형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43.0%)이 중형(23.6%)과 소형(16.2%)을 크게 앞질렀다고요. 

이런 얘기 나오면 짜증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환경 좋은 데, 아이들 교육시키기 좋은 데 살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 그런데 이런 곳에 원하는 만큼 집을 지어주지 않으니 집값이 치솟는 것이라고요. 그렇지만 수요·공급의 법칙으로만 해석하기에는 “이미 비정상적일 만큼 이들 지역 집값이 폭등했다”(지규현 주택도시연구원 책임연구원)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런데도 내게 도박하듯 ‘올인’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시중 은행의 한 프라이빗 뱅커는 “위험성을 경고해도 소용없다. 부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경험칙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들 거개가 부동산 불패 신화를 여전히 철석같이 믿고 있다”라고 말하더군요. 

집값 하락, 내년 4대 경제 리스크로 지목돼

건축가들이 “아파트에 대한 냉소를 이제는 거둬들이고 ‘더불어 사는 문화의 결정체’로 바로세우자(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라며 문화 운동을 벌이면 뭐합니까. 임석재 교수(이화여대·건축학) 말마따나, 문제는 나를 옭아맨 여러 사회·경제·문화 코드 중에서도 사람들이 오직 ‘투기’라는 목적 하나에 집착한다는 것일 텐데요.

여기에다 5백조원이 넘는 거대한 유동 자금, 몇 년째 지속된 저금리 기조, 전국에서 수십조원 단위로 풀린 토지 보상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아파트 분양가, 엉성한 정부 대책…. 이런 것들이 맞물리면서 올해는 특히나 전국민이 편집증적으로 내게 몰두한 비극적인 한 해가 되어버렸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내년에도 이런 문제들이 쉽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네요. 

사실 아파트 투기가 일고, 내 몸값이 뛰어올랐던 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른바 부동산 10년 주기설이라는 게 있다지요. 1977~1979년(1차 폭등기), 1988년~1991년(2차 폭등기)에 내 몸값은 올해보다 더 많이 치솟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올해는 집값 폭등이 우리 사회를 피폐하게 만든 것은 물론 경제 공황 우려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심상치가 않군요. 

전문가 일부는 내년에 집값이 실제로 급격히 떨어질 경우 ‘제2의 외환 위기 못지않은 경제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실련 정책위원장)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미국 경제 경착륙 △세계 금융시장 불안 △노사분규 악화와 더불어 ‘집값 하락’을 2007년 경제 리스크 4대 요인 중 하나로 지목했군요. 

대선이 있는 해에는 예기치 않은 상황 변화에 따라 경제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만큼 리스크 관리를 잘하지 않으면 큰 위기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인데요. 외환위기(1997년)나 카드 사태(2002)가 모두 대선이 있던 해에 발생했음을 상기하면 꽤 모골이 송연한 지적이죠? 한국 경제가 나로 인해 또다시 전면적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은 아닌지, ‘올해의 인물’로 꼽히는 영광을 안고도 잠이 잘 오지 않는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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