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부동산 공습' 아파트 잡고 경제 죽이나
  • 왕성상 편집위원 ()
  • 승인 2007.01.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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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원가 공개 등 초강수 대택에 시장, 여론 '부글부글'

왕성상 편집위원

 

"부동산 시장 안정이 뚜렷해질 것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제고되고 고분양가·공급 부족 불안 심리도 사라질 것이다.”
“무슨 소리냐! 이번 대책은 사람으로 치면 ‘팔삭둥이’에 불과하다. 숙제가 수두룩하다. 잘못하면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진다.”
1·11 부동산 대책을 놓고 정부와 국민들 시각이 제각각이다. 잘된 ‘작품’이라며 큰소리치는 당국자와 지나친 조처로 허점투성이라는 일반인 및 건설·부동산 업계 사람들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집을 마련하려고 오래 준비해온 사람들과 중소 주택 건설사들의 불만이 높다. ‘1·11 대책’ 발표 후 빚어지고 있는 현상들과 명암이 엇갈린다는 얘기다.
한명숙 국무총리는 최근 “발표된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집을 갖고 있지 않은 실수요자에게 가장 큰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라며 ‘지금껏 나온 정책 중 최적의 대안’이라고까지 치켜세웠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이용섭 건설교통부장관도 ‘1·11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 안정이 기대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들의 말처럼 ‘1·11 대책’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말썽 많았던 서울 강남 지역 재건축 아파트 호가가 떨어지고 매급물 아파트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강남구·서초구, 분당, 일산 등 이른바 ‘버블 세븐지역’ 집값이 부분적으로나마 하락하는 추세이다. 과거 대책이 나올 때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부동산 시장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얼마나 갈지는 미지수다. 추이를 지켜보자며 관망세를 취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많다. ‘1·11 대책’에 부정적 시각을 갖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1월11일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당정 협의를 거쳐 확정 발표한 ‘1·11 대책’은 소나기성으로 무차별 융단 폭격을 가했다는 시각이 많다. 대책의 기본 방향은 주택공급 제도 개편, 서민주택 안정, 유동성 관리 효율화로 요약된다. 관련 세부 조처 사항은 크게 네 가지. △아파트 원가 공개 및 분양가 상한제 △주택담보대출 규제 △주택청약 제도 개편 △반값 아파트 시범 분양이 그것이다. 분양 주택에 대한 전매제한 기간 확대, 후분양제 시행 연기, 이사철에 대비한 수도권 전·월세 안정 대책 등도 있으나 이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내용들이 하도 초강수여서 웬만한 항목들은 큰 조처에 파묻혀 구체적 사항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잦은 정책 발표로 인해 믿음이 덜 간다는 반응들이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 현상으로 ‘약발’이 얼마나 갈지 두고 보자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대선 분위기에 휩쓸려 과연 정부가 기대하는 성과를 제대로 얻을 것이냐 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시장보다 유권자 겨냥한 정책” 비판도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쏟아진 부동산 정책은 굵직한 것만 따져도 10개나 된다. 작은 정책까지 합하면 30개가 넘는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투기 지역에 적용되는 양도소득세를 기준시가가 아닌 실거래가로 매긴다는 것 한 가지뿐이었다. 지금은 관련 규정이 10개에 달한다. 부동산 업무와 관련된 재정경제부·건설교통부 담당 국·과장들도 자료를 보지 않으면 자세한 내용을 모를 정도다. 그만큼 부동산 정책이 남발되었다는 얘기다. 겉으로는 부동산 시장이 숨을 죽이며 안정되어가는 것 같지만 정책 남발로 면역력이 생겨 일정 기간만 지나면 또다시 투기 세력이 활기를 친 과거 사례들이 이를 말해준다.
부동산 정책이 정치 논리에 휘둘려 국민들로부터 믿음을 얻지 못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고담일 대한주택건설협회장은 “1·11 대책은 정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라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사업을 하다 보면 일일이 밝힐 수 없는 기업 비밀이 있는데도 정부가 정치인들 말을 듣고 일방적으로 아파트 분양가를 공개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꼬집었다. ‘민간주택 분양원가 공개는 안 된다’던 정부가 여당의 계속된 압박에 굴복해 ‘양치기 소년’꼴이 됐다는 소리다. 내부 반발까지 무릅쓰고 강행한 여당에는 ‘허울뿐인 공개로 생색만 낸다’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도 “이 정도 수준의 분양원가 공개는 분양가 상한제와 다를 바가 없다. 당 부동산특별위원회나 지도부가 대선을 앞두고 실효성도 없으면서 국민들 입맛에만 맞는 정책을 밀고 가는 것은 우려스럽다”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당정 합작품인 ‘1·11 대책’이 시장보다는 유권자를 겨냥해 ‘정책 신뢰 회복’은 멀기만 하다는 소리다. 일각에서는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부동산 ‘올인 정책’에 한국 경제가 저당잡혔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업계의 심한 반발을 사고 있는 분양가 상한제의 경우 시비가 이만저만 아니다. ‘집값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정부 취지와 달리 집값을 올리는 부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서다. 집값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땅값을 감정평가액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지만 주택건설사들이 사들이는 택지비는 그보다 훨씬 높은 것이 현실이다. ‘알 박기’ 등 어쩔 수 없이 비싸게 사들인 땅과 양도소득세 부담 조건으로 매입한 택지비가 주로 해당된다. 이렇게 사들인 땅의 가격을 분양원가 계산 때 적법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매입가를 인정받지 못하면 집 공급이 줄고, 이것이 집값을 되레 올리는 모순이 생기는 셈이다. ‘1·11 대책’의 명암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목이다.
 
권오규 부총리가 ‘1·11 대책’ 발표 때 “공공 주택은 25% 이상, 민간 주택은 20% 이상 분양가 인하 효과가 있다”라고 한 말에 일반인들과 업계는 “글쎄요”라는 반응이다. 값싼 아파트에는 청약자들이 몰리지만 고분양가 아파트는 수요자들로부터 외면받는 현장 상황을 모른다는 지적이다. 지난 1월17일 있었던 서울 서초동 아트자이아파트 1순위 청약에서 대거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사상 최고 분양가(평당 3천3백95만원)로 유명세를 탔던 이 아파트는 1백64가구 모집에 49명이 접수해 경쟁률이 0.3 대 1에 그쳤다. 청약 시장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라는 것이다. 오는 9월 아파트 청약 가점제 시행을 앞두고 쓸모가 줄어든 청약부금 가입자가 최근 두 달 사이 5만명이나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는 점도 그렇다.


“지방까지 규제하는 것은 ‘단체 기합’ 주는 꼴”


아파트 전매 기간 확장을 두고도 두 시각이 부딪힌다. 분양가 상한제로 당첨자들이 시세 차익을 지나치게 챙길 수 있다며 취한 조처이지만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땅을 수용해 싼값에 공급하는 공공 택지는 전매 제한의 명분이 있으나 민간 택지는 거래를 제한할 하등의 명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전매 제한 기간을 늘리면 주택 유통 시장이 마비되어 공급 효과가 반감되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가 하나만 생각하지 둘은 모른다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제도 역시 명암이 갈린다. 투기 지역에서 2건 이상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고 있는 사람은 1건으로 줄여야 한다. 여러 건의 대출 가운데 만기가 돌아온 대출은 만기 시점부터 1년 안에 갚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연체 금리를 물리는 제재가 가해진다. 은행에 집을 맡겨 빌린 돈으로 또 다른 아파트를 사는 등 투기를 막는다는 목적이지만 기대 효과는 ‘별로’라는 여론이다.
게다가 금융 당국까지 부동산 대책에 가세해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16년 만에 예금준비율을 올리고 총액 대출 한도를 줄였다. 시중에 떠도는 5백30조원대의 부동 자금을 거둬들여 집값을 잡아보겠다는 뜻에서다. 지난해 ‘11·15 대책’으로 주택담보 인정률(LTV) 한도를 줄이면서 총부채 상환 비율(DTI) 규제도 강화했다.
그러나 금융 시장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시중금리가 오르고 자금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경기 위축으로 소득은 늘지 않는데 금리만 오르면 서민들 살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은 뻔하다.
전문가들은 “1·11 대책으로 집값이 갑자기 떨어지면 2백60조원이 넘는 주택담보대출이 금융 부실 사태를 불러온다”라며 지나친 부동산 규제로 경제가 거덜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에 국한시켜야 할 부동산 규제책을 투기와 거리가 먼 지방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단체 기합’을 받는 꼴”이라며 선의의 피해자를 구해주는 보완책도 나와야 한다는 견해이다. 정부가 부동산 강공책을 계속 내놓으면 일본식 ‘버블 붕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가계의 부동산 쏠림 현상에 대해 정부가 쏠림 대책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한다. 1·11 대책으로 인한 집값 급락은 가계 부채발 금융 위기와 경제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했다.    
오진모 대한부동산학회 명예회장(한국관광개발연구원장·법학박사)도 “지나친 주택담보대출 규제와 통화 긴축 정책으로 집값 급락→가계 부실→금융 위기→장기 경기침체를 부를 수 있다. 경기를 살리면서 투기도 잡는 정책이 펼쳐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부가 국토 균형 개발이라는 명분아래 행정도시, 행복도시 등 개발을 마구 추진해 부동산 값을 올릴 게 아니라 국내 산업의 18%를 차지하는 건설·부동산업을 살리는 보완 조처를 마련해  ‘1·11 대책’의 명암을 조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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